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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Aug 21. 2024

행복은 선택하기 나름

Day14 Camino de Santiago

 부르고스에서 하루 더 머무르기로 한다. 알베르게에서 나오며 짐을 맡겨두고 카페로 향한다. 바게트와 카페라테,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커스터드 크림이 올라간 페스츄리도 하나 고른다. 아침햇살이 아름답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그리도 기분이 좋다.


 근처에 시장이 있다기에 구경하러 다녀왔다. 정육점과 과일가게가 많았는데 알베르게에서 요리가 불가능해 짧게만 구경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서 이쁜 거리의 벤치에 앉아 글을 쓰다 알베르게로 향한다.


 샐러드 한 팩과 라자냐를 사 와서 점심으로 먹었다. 순례길 첫날 머무른 숙소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던 이탈리아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북쪽길에 다녀온 터라 프랑스길의 친구들을 만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마주하게 돼서 반가웠다.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걷는 게 취미라는 그녀의 나이를 듣고는 크게 놀랐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과 10년은 차이가 났다.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그녀가 가진 에너지가 멋있었다. 누나는 미래의 본인이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후에 부르고스 대성당에 들어가 보았다. 1221년에 짓기 시작해 1567년에 완공되고서 몇몇 부분이 증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수백 년 전에 이런 건물을 지어냈다는 걸 감히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조차 송구스러웠다. 디테일하다고 평가하는 게 무례하게 느껴졌다. 신은 믿지 않고 순례길은 여행처럼 걸으며 종교는 가져볼 생각도 공부해 볼 생각도 없다. 다만 그 순간에 존재하던 나의 자아는 가히 큰 충격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누나에게 교육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내게 이런 건물을 지어내라고 한다면 불가능할 거다. 무언갈 시도해 보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걸 배워낸 사람들이 다음 세대에게 그것을 전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이 체계화되면서 교육을 받은 이들이 그것을 더 발전시키고 그것을 또다시 전달하는 과정은 그 힘이 대단하다.


 스페인에선 5시가 넘으면서부터 술을 마시는 이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다만 한국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종종 타파스 같은 간단한 안주를 두고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안주도 없이 맥주나 와인을 먹는다. 게다가 거리에 서서 먹는다. 우리는 오늘 여러 가게를 다니며 맥주를 마셔보자고 했다.


첫 가게에서 맥주 두 잔과 핀초스 두 개를 주문했다. 마트에서 몇 번 마주쳤던 흥미를 돋우는 작은 생선 같은 재료가 들어가 있는 핀초 하나, 치즈가 올라가 있는 핀초 하나. 맥주를 먼저 들이켠다. 한국에서 생맥주는 대부분 500ml인데 이곳에서 그냥 맥주 두 잔 주문하니 작은 잔에 받아 들었다. 단숨에 크게 들이켠다. 거품이 뽀송뽀송하고 끝 맛이 깔끔한 게 신선하게 느껴진다. 생선 같은 재료를 호박으로 감싸 튀겨낸 것을 올려낸 핀초는 흥미로웠다. 그 재료의 특별한 향이나 식감은 없었고 튀겨냈기에 기본 이상 충분히 맛있었다.


두 번째 가게에서는 츄러스와 맥주를 두 잔 주문했다. 이번엔 큰 잔에 받아 들었다. 그래 맥주는 이래야지 하며 묵직한 잔을 들고서 크게 들이켠다. 맥주를 받아 들면 첫 입에 숨이 차고 목이 따가울 때까지 들이키는 게 가장 맛있다. 츄러스는 특별하지 않았지만 따듯하게 튀겨낸 것이 맛있었다. 데바에서 먹었던 츄러스는 오래된 기름맛이 느껴져서 아쉬웠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함께 나온 초코 소스는 단맛이 적었다. 꽤나 묽고 가벼운 것이 크림도 많이 섞지 않은 것 같았다. 카카오의 쌉쌀한 맛도 적당해 맛있었다.


세 번째 가게에서 파테가 올라간 핀초와 크로켓을 하나 주문했다. 파테는 한국의 저렴한 햄 같은 맛이 났다. 크로켓 위에 올려진 소스는 떡볶이 같은 맛이 나서 누나와 신기해했다.


마지막으로 피자가게에 들렀다. 길을 지나다 큰 화덕에서 피자를 굽는 모습이 보이기에 흥미로워 보여 들어섰다. 마르게리타 하나와 맥주 두 잔. 아주 심플해 보이는 마르게리타는 비주얼만큼 평범한 맛이었다. 마음에 드는 피자가게를 찾으면 가장 기본이 되는 피자를 먹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피자가 맛있으면 토마토소스와 도우가 맛있다는 거고 그러면 대부분의 다른 메뉴들이 맛있을 확률이 높다. 이곳은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대신에 다크 하다고 추천받은 맥주가 꽤 괜찮았다.


 스페인에서 시끌벅적한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시원한 저녁공기 맞으며 들이켜던 맥주는 환상적이었다. 행복은 선택하기 나름.


14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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