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조개탕을 끓여 먹은 그 밤에 몸에 힘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피곤한 것이겠지 하며 일찍 몸을 뉘었다. 배가 아프고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렸다. 소화가 잘 안 되나 보다 생각했다. 길을 떠나기로 한 7시에 몸을 일으켰다. 배가 계속 아팠다. 전날 먹은 조개가 탈을 낸 것 같았다. 걷기는 고사하고 이런 컨디션으로 무언갈 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고통스러웠다. 어제 호스트가 퇴근하며 급한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일러두고 간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Emergency한 상황이었다. 몸 상태가 나빠서 하루를 더 머무르고 싶다고 말하니 호스트는 흔쾌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마트에 들러 쌀과 달걀과 채소를 구매해 왔다. 간을 거의 하지 않고 달걀죽을 끓였다. 누나는 그마저 거의 먹지 못했다. 그렇게 그 하루를 채로 침대 위에서 보냈다. 나는 종종 신음했다.
다음 날 아침은 날씨가 화창했다. 걸을 컨디션은 아닌 것 같아 어김없이 주인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또 흔쾌히 하루 더 머무를 수 있게 해 주었다.
잠시 밖으로 나섰다. 카페에서 카페 콘 레체를 한 잔씩 주문하고 단 것이 먹고 싶어 페스트리도 하나씩 골랐다. 초코 드리즐이 올려진 빵은 아릴 만큼 달았다. 설탕 시럽에 절여서 만든 것 같아 보였는데 도저히 한 입 그 이상 먹기 힘들었다.
저녁으로는 덮밥을 해 먹었다. 며칠 전 쌀국수를 해 먹고 남겨온 소스에 삼겹살과 양파, 버섯, 달걀을 조리했다. 우리는 종종 밥을 그리워했다. 한국의 그것에 비해 전분기가 적은 쌀은 그 갈증을 완벽하게 채워내지는 못했다. 다만 간장소스가 모든 걸 이겨내 주었다. 아시안소스가 주는 익숙함과 만족감이 좋았다.
저녁 먹고서 짧은 산책을 나섰다. 짧다는 말이 참 적절할 만큼 짧은 산책이었다. 알베르게 앞의 카페에서 기르는 개의 뒷모습이 참 귀여웠다. 귀를 쫑긋 세우고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게 아무래도 무언갈 기다리는 것만 같아 보였다.
호스트는 자판기를 채우다가 배가 아프다는 우리에게 수돗물 마시지 말라며 생수를 챙겨주었다. 세심하게 걱정해 주는 모습이 참 고마웠다. 이리 괜찮은 알베르게에 머물 때 아픈 것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60km 남짓 남은 산티아고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그렇지 않아도 sarria 이후로 걸은 순례길에서 그 이전과 달라진 분위기에 아쉬움을 느끼던 터라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웃음이 났다. 길을 걸으며 아쉬운 포인트가 보일 때마다 버스타자는 뜻으로 "잠깐 졸아볼까?" 하며 농담했다. 그러곤 정말로 잠깐 졸았더니 산티아고에 도착해 버렸다. 기분이 째진다고 표현했다. 그 누구도 이렇게 순례길을 걷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프랑스길에서 출발해 바다보고 싶어 북쪽길로 향하고, 일주일 걷고서 그것이 기대와 달라 프랑스길로 돌아왔다. 몸이 힘들면 쉬어갔고, 숙소가 마음에 들면 더 머물렀다. 걷는 그 길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버스를 타고서 그 구간을 지나쳐버렸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온전히 우리의 시간과 경험을 담아낸 그 길의 끝에서 스스로 기특하다고 말해주었다. 우린 계획하지 않았으므로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자주 마주했다. 그곳엔 빈 구멍이 많았다. 흥미와 행복으로 채워낼 공백이 충분했다. 우리는 그 빈 구멍을 이쁘게 완벽하게 좋은 것들로 잘 메워냈다는 생각이 든다.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향한 곳은 성당도 순례자 사무소도 그 어느 곳도 아닌 츄러스 가게였다. 기분이 째진다고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바로 튀겨낸 츄러스는 맛있었다. 다만 길을 걷던 어느 주말아침에 장이 열린 마을에서 우연히 발견한 츄러스 트럭의 그것이 충격적으로 맛있었던 탓에 이후로 츄러스를 먹을 때면 그것과 비교하게 되는데, 여전히 그것을 뛰어넘는 츄러스는 없었다.
성당을 둘러보고 순례자 증명서를 받았다. 길의 끝에 무언가가 기다릴 것이란 기대를 하지 않았던 덕에 허탈감은 느끼지 않았다. 다른 말로는 그 끝에 대단한 성취감 내지 만족감이 있지는 않았다는 거다. 그걸 끝냈다는 상징성으로서 얻고 싶은 무엇이 내겐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얻은 것은 내가 길에서 보낸 시간과 걸어낸 걸음에 온전히 존재했다. 그마저 참 마음에 들었다.
산티아고에서 나의 즐거움은 대성당보다 아시안마트에 기다리고 있었다. 라면을 신명 나게 6봉이나 집어 들고 야무지게 김치도 사 왔다. 한국에서 캔김치를 먹을 일이 있던가 생각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저 캔에 담긴 짜고 시고 맵고 감칠맛 나는 채소조각이 주는 행복이 있었다.
내일 피스테라로 향하는 길에 챙겨갈 요량으로 라면을 4봉이나 더 챙겨둔 탓에, 오늘 먹은 김치가 행복을 안겨준 덕에 김치를 더 사야겠다 싶었다. 덕분에 마트로 가는 길을 산책할 수 있었다. 길의 끝에서 부둥켜안고 감동을 나누는 이들, 웃고 떠들며 맥주를 곁들이고 하루의 끝을 어쩌면 3-40일가량 되는 길의 끝을 만끽하는 이들을 보고 있는 건 웃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 그 곁에 존재한다는 건 참 멋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