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웬일이야?"
밖에서 나는 시끌시끌한 소리에 보검은 진료실을 나와 병원 로비로 향했다. 간호사 한 명이 다른 간호사와 미용사에게 호들갑을 떨며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검을 보고는 이내 쪼르르 달려와 말을 이었다.
"이선생님, 저번에 병원에 술 먹고 병원 와서 소리 지르고 진상 떨던 그 남자 보호자 기억나세요? 왜 자기 개 수술비 돌려달라고 난리 쳤었는데."
"네. 기억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왜요?"
보검은 태연함을 유지하며 물었다.
"며칠 전에 저쪽에 있는 시민 운동장밑에서 시체가 발견됐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그 아저씨래요. 그 아저씨 부인이 장례식 준비한다고 시장에서 얘기하는 거 들었거든요. 술 먹고 계단에서 구른 것 같다는데, 그리고 들개 같은 야생동물이 물어 뜯기도 했나 봐요. 온몸에 물린 자국이 있대요. "
보검은 그녀의 얘기를 들어며 그때의 흥분이 떠오르며 몸속의 피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목을 조를 때 느껴지면 짜릿함, 누군가의 생명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우월감.
그는 그때 개의 두개골 모형을 같이 가져가서 일이 끝난 후 여기저기 이빨 자국을 남겨놓았다. 만취해서 계단에서 구른 남자가 목에 손자국이 나 있다면 당연히 범죄에 대한 의심이 생길 테니 말이다.
특히 그의 목을 뜯어내서 목 주변의 피부와 연골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게 만들어 놓았다.
마지막 수술 세미나가 끝나고 하빈과 오석은 병원을 나섰다. 어느새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 마지막 날인데 다 같이 야식이나 먹으러 가는 건 어때요?"
뒤를 돌아보니 기분이 좋아 보이는 보검이 있었고, 그 뒤에 수아가 따라 나왔다.
키가 작은 수아는 보검의 옆에서 어린아이 같이 보였다. 하빈은 보검에게서 느껴지는 흥분과 행복감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항상 그를 볼 때면 어두운 암흑같이 어두운 느낌만 들었었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아주 기분 좋은 감정만이 느껴졌다.
"그럴까요?"
오석은 흔쾌히 보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자연스럽게 네 명은 근처 고깃집으로 향했다.
아주 오래된 친구들처럼 넷은 같이 고기를 먹으며 수술 세미나와 병원일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평소 술을 잘 먹지 않는 하빈도 모처럼 맥주 두어 잔을 마셨고, 사람들의 유쾌한 기분에 동요되고 있었다. 보검은 오석이 있는 앞에서도 하빈에게 눈에 띄는 관심을 보였고, 보검을 맘에 두고 있던 수아는 새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다 하빈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아가 그녀를 따라 나왔다.
"하빈이 넌 여전하네. 관심 없는 척하면서 주변의 관심을 받는 건"
하빈은 말없이 수아를 바라보며 수아의 질투심과 알 수 없는 분노심을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수아가 무슨 자격으로 하빈에게 분노심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다. 하빈의 생각을 읽은 듯 수아는 말을 이었다.
"너는 너만 피해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땐 나도 정말 힘들었어. 그때도 넌 승훈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잖아. 난 정말로 걔 좋아했었어. 근데 친구 애인 뺏은 파렴치한 인간이 돼서 애들한테 욕먹은 것도 나고."
수아는 자진해서 지난 일을 꺼내 자신이 피해자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하빈은 진심으로 억울해하는 수아의 감정에 점점 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수아는 전에도 그 일이 있은 후 하빈에게 사과하기보다는 하빈이 그녀를 이해해 주길 바랐다. 그랬던 그녀와 다시 개인적인 자리를 만든 것이 하빈의 잘못이라면 잘못일 것이다.
" 니 감정이 어땟었든 네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었다면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조금은 있지 않을까 되돌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이제는 너와 다시 친구 비슷한 관계가 될 수 있었을지도.
이런 사적인 시간을 갖기에는 너라는 사람이 너무 가볍다."
수아가 무슨 말을 꺼내기 전에 하빈을 돌아서 자리로 돌아왔다.
잠시 후 오석과 하빈은 커피숍에 같이 앉아 있었다.
"수아랑 무슨 일 있었어?"
하빈은 오석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석은 하빈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아마 상황을 짐작하는 듯했고, 굳이 다시 그 상황을 설명하면서 더 이상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너도 알잖아. 수아 걔 외동딸이라 항상 자기 위주인 거."
오석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하빈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근데 오석아. 나 요즘 이상한 일이 생겼어."
하빈의 말에 오석은 하빈을 쳐다보았다.
"한 달 전쯤에 병원에서 진짜 착했던 리트리버가 원장님을 보고 달려들어서 말리다가 물린 적이 있거든. 그러고 나서 내가 몸살처럼 열도 나고 몸이 며칠 안 좋아서 앓아누웠다가 괜찮아졌는데. 뭐 물린 상처 때문에 염증이 생긴 거겠지 생각했지. 그런데 그 후부터 뭔가 이상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기분이나 감정이 확연히 구분이 돼. 뭐 냄새는 원래 잘 맡았지만 그것도 더 강해졌고. 그냥 내 몸의 모든 감각이 엄청나게 발달되어진 느낌이랄까."
"네가 원래 냄새도 잘 맡고 사람에 대한 감도 좋긴 했는데. 그래도 그건 좀 이상하네."
오석은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그래 알아. 내 말이 이상하다는 거. 그래서 나도 바로 너한테 얘기하기 좀 그래서 그냥 좀 두고 봤는데. 진짜 그래.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의 기분이나 감정이 냄새처럼 나한테 전달이 돼. 물론 그게 정말 냄새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독특한 향이 느껴져. 그래서 그게 무슨 느낌인지 내가 알게 된다고나 할까."
"하하. 진짜 그렇다면 정말 신기하겠다. "
오석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아까 우리 같이 밥 먹을 때도 수아가 그 수의사 좋아하는 것도 알겠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질투를 느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어."
"나도 수아가 그 사람한테 호감 있는 건 알겠던데. 솔직히 그 사람 진짜 잘생겼잖아. 그런 남자를 보고 그렇게 느끼지 않기가 어렵지 않을까?"
"그래. 뭐 수아의 태도에서도 그런 호감은 보이니깐. 하지만 단순한 호감이 아니야. 수아는 그 사람에 대한 집착이 생겼어. 꼭 갖고 싶은 물건을 손에 넣고 싶을 때처럼. "
" 그래서 그 남자는 수아 좋아하는 것 같아? "
오석은 얘기에 흥미를 보이면 하빈을 다그쳤다.
"그 보검이라는 사람은 일반 사람과 많이 달라. 처음에는 위험해 보였고, 오늘은 무엇 때문인지 승리감에 들떠있었어. 그리고 수아한테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
하지만, 하빈은 보검이 그녀에게 보이는 호감에 대해서는 오석에게 말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보검은 하빈에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겉으로 보이는 아주 예의 바르고 친절한 태도와 반대되는 강한 어두운 기운이 그녀를 멈칫하게 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 그는 그 어둠을 억누르는 즐거운 에너지로 그는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런 모순이 느껴지는 사람을 하빈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