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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혈동물

여느 아침과 다름없이 알람소리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출근길,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 지하철 안의 사람들, 평소와 같은 일상적인 풍경인데 하빈만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들, 그들의 감정, 느낌.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을 보는 게 아니라 느낌으로 그 사람들을 알게 되는 것 같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하빈을 알 수 없었다. 세상이 모두 일어나 하빈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많은 정보에 하빈은 황급히 지하철을 내려 걷기 시작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아무도 만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면서.


병원에 도착하자 실장님의 친근한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병원문을 열고 들어가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하빈의 목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평소와 같은 미소,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걱정스러운 느낌.

"아 채 선생님. 이제 몸은 좀 괜찮아? 며칠 동안 앓을 정도면 아주 지독한 감기였나 보다."

"네.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하빈은 실장님과 얘기를 하면 병원 안으로 들어가면서, 실장님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무얼까 생각했다.

"실장님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하빈의 말에 실장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이내 말을 이었다.

"많이 티나? 아니 군대 있는 우리 아들이 어제 전화 와서 훈련 중에 다리가 좀 다쳤다고 하는데, 뭐 심각한 건 아니고. 뼈에 약간 금이 가서, 다리 깁스하고 군 병원에 몇 주 있다고. 다음 주에 면회 가기로 했는데 맘이 좀 그러네. 옆에 있으면 아무 일 아닐 수도 있는데 멀리 떨어져 있으니 더 짠하고 그렇지 뭐."

"걱정 많이 되시겠네요. 그래도 큰 부상이 아니라 다행이에요."


그날은 하루 종일 바쁜 날이었다. 며칠 병원에 나오지 못해 밀린 진료와 수술이 있었고, 기존의 검사결과들을 보호자들에 전달해야 했다.

진료시간이 끝날 무렵 한 사람이 한 작은 강아지를 안고 진료실을 들어섰다.

"우리 아이가 밥을 안 먹어요."

보호자는 강아지를 진료대에 올려놓았다. 6살 정도인 암컷 강아지는 크게 미동 없이 진료대 위에 앉아 있었다. 그냥 보기에도 복부가 살짝 팽대되어 있었고 불편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볍게 신체검사를 하자 강아지의 증상은 복부팽만이 동반된 미열과 가벼운 빈혈증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애기가 중성화가 되어 있지 않은 데다. 밥을 안 먹었는데 배가 불러있고 촉진 시에 복통을 보여요. 일단은 혈액검사와 방사선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자궁에 농이 차는 자궁 축농증일 가능성이 있어요. 만약에 그게 맞다면, 염증이 생긴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해야 될 수도 있어요. "

보호자는 수술이라는 말에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검사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검사는 예상한 대로 자궁 축농증으로 진단되었고, 이후 응급 수술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보호자가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고, 수술비의 절반을 지불해야 수술과 2-3일의 입원이 진행된다.

"제가 신용카드가 없어서 지금 은행에 가서 돈을 뽑아 올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보호자는 집에서 급히 나오느라 신용카드를 두고 나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눈빛과 태도는 그녀의 말과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하빈은 그녀가 돈을 지불할 생각도 다시 개를 찾으러 돌아올 생각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빈은 원장님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잠시 보호자와 강아지를 진료실에 두고 나와 정석선배의 진료실로 향했다.


"원장님. 어떡하죠? 자궁 축농증을 해야 할 강아지 보호자가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가겠다고 하는데 가면 안 올 것 같은데 어떡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뭐 이상한 거 있어?"

원장의 말에 하빈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있었지만 결국 그녀의 느낌을 설명할 말이 없었다.

"뭐라 설명하기는 어려운 데 좀 느낌이 그래요. 그렇다고 그 사람을 못 가게 막을 수도 없고, 수술 안 하면 죽을 수도 있는 애를 수술을 안 할 수도 없고."

하빈은 자신의 의견에 확신이 있지만 그렇다고 수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환자를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냥 한번 믿어보자. 채 선생. 사람은 모르는 거니깐. 그리고 채 선생 말대로 그 개는 수술이 꼭 필요하기도 하고."

"네. 원장님. 그럼 진행할게요."

하빈은 보호자가 돌아오지 않을 걸 알지만, 그래도 그녀의 환자를 살리고 싶었다.

간호사에게 부탁해 보호자의 운전면허나 주민번호로 주소를 확인해 달라고 했고, 보호자의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보검은 매일 병원이 끝나면 그때의 그 진상손님의 소재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의 집 주변의 술집들을 돌고 그가 자주 가는 술집을 알아내서 그가 얼마나 거기에 머무는지 집에는 언제 들어가는지 어떤 길을 이용하는지 알아냈다.

그를 잡으려면 그의 노선 중에 인적이 드물고 CCTV나 주변의 차가 없는 곳을 찾아야 했다.

매일 일을 하고 야간에 그를 쫓아다니는 건 육체적으로 지칠 법도 했지만, 보검은 사냥감을 쫓아다니는 사냥꾼처럼 흥분된 감정이 충만했다.


보검에게는 정말 다행인 것이, 그 손님의 집은 동네 사람들이 이용하는 운동장 주변의 여러 개의 빌라 촌이 끝에 위치해서 앞쪽에 주차공간이 없어 블랙박스를 염려할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바로 밑에 운동장이 주변의 계단에 둘러싸여 있어 밑에서 무슨 일을 하던 주변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었다.


보통 밤 11시나 12 정도면 술을 거하게 걸친 남성이 집으로 귀가하는 걸 알기에, 운동장 안쪽 계단에서 그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 시간이면 운동장에서 조깅이나 가벼운 족구를 하던 사람들도 모두 집에 가고, 가로등도 꺼져 보검에게는 완벽한 환경을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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