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빈의 목을 조르는 보검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가자 죽음에 공포감이 하빈의 전신에 퍼졌다. 숨을 쉬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폐에 남아있던 공기마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목에 있는 보검의 손을 뿌리치려고 애쓰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하빈은 눈을 뜨고 헐떡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목을 조르던 보검이 사라졌다.
어두운 방안에 혼자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나서야 또 다른 악몽을 꾸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빈은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며 아직도 생생한 느낌을 떨쳐버리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아직도 악몽을 꾸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보검의 집에서 그와 시간을 보내고 나온 이후, 하빈은 지속적으로 악몽을 꾸었다. 항상 같은 꿈.
그가 하빈의 목의 조르는 꿈이다. 서울을 떠나 새로운 곳에 일자리를 찾고 적응해보려 했지만 마음속에 남아있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보검이 그녀를 다시 찾아 무슨 짓을 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에게서 느낀 강한 살기가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그의 분노가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어도, 그것이 주는 공포감에서 벋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뉴질랜드로의 워킹 홀리데이.
한국처럼 길게 생긴 섬나라인 뉴질랜드의 남쪽에서 그녀가 지내면서 농장일을 할만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일자리를 외곽에서 구해도 시내에 있는 아파트에 같은 곳을 셰어 하며 지내며 외국생활을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하빈의 목적은 가능한 조용히 혼자 지내고 싶어 일자리 근처의 작은 플랫을 빌려 생활하고 있었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들어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지도 어느덧 6개월이 지나갔다.
한국에서라면 어디에서 일을 하던지 완전히 혼자가 되기는 어렵다.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던가 회식이라고 같이 어울리는 것이 일반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원한다면 완벽하게 혼자만의 생활이 가능하다. 가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나 한국 사람들이 주말에 같이 어울리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평소에서 말이 없는 하빈이 응하지 않자 그들은 이제 그녀를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일을 마치고 오후 4시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오랜만에 이메일이라도 확인할 겸 노트불을 펼쳤다. 그리고 눈에 띄는 한통의 이메일이 보였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우린 같이 완벽할 수 있었는데 네가 다 망쳤어.'
하빈은 몸속의 모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느끼면 이메일을 보낸 사람의 아이디를 보았다.
'BOG100@hotmail.com'
갑자기 섬뜩한 생각이 들어 하빈은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시작된 실종사건 미궁 속으로'
'실종자들 간의 관련성 없어'
'실종자 한강변에서 변사체로 발견'
'실종자들, 동성애 성향 보여, 동성애 증오범죄로 인식'
지난 6개월간 한국에서 발생한 의문의 실종사건들과 그들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기사들을 확인하면서, 하빈이 보검이 이 사건들과 관련이 있다는 확신을 들었다. 그녀에게 보낸 이메일은 그의 분노가 폭주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나에 대한 분노가 왜 동성애자들로 향하는 거지?'
하빈은 한국 시간대가 아침인 걸 확인하고 카톡으로 오석에 전화를 걸었다.
"하빈! 야 잘 지내? 뉴질랜드는 천국이야? 하하"
장난스러운 오석의 목소리에 하빈은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오석아 잘 지냈지? 별일 없어?"
"뭐 나야 늘 그렇지. 이제 영어시험 패스하고 요즘은 미국 수의사 이론 시험 준비 중이야. 언제까지 시험준비하며 사는 인생을 살아야 하나 싶다. 하하"
"잘됐네. 힘들어도 하다 보면 끝이 보이겠지. 그런데 너 혹시 요즘은 그 보검수의사 안 만나지? 그리고, 내가 한 말 안 잊었지?"
" 보자고 몇 번 연락 왔는데 어차피 나도 바쁘기도 하고 해서 최근에 본 적은 없어. 근데 얼마 전에 연락 와서 니 전화번호로 연락이 안 된다고 무슨 일 있나고 물어서 너 외국에 나가있다고 얘기했어. 그랬더니 니 이메일 주소 알려달라고 연락 와서 그건 알려줬는데. 괜찮지 그건? 어디 갔다고는 얘기 안 했어."
"알았어. 근데 너 그 사람 절대로 만나지 말고 조심해."
한국을 떠나기 전 하빈은 오석을 만나 보검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오석은 첨에는 반신반의했지만, 하빈의 진지한 부탁에 그러겠다고 했다.
"알았어. 네가 타지에서 몸 조심하고. 나 이제 진료 들어가야 돼서 나중에 통화하자. 잘 지내고"
오석과의 통화를 마친 하빈은 곰곰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보검이 지금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면, 한국처럼 방범 카메라와 차량 블랙박스가 많은 나라에서 그가 잡히는 건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무고한 사람들을 몇 명이나 더 죽이고 잡힐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에게 카톡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도 지금은 후회하고 있어. 너처럼 완벽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 다 내 잘못이야.
하지만 네가 이룬 일을 보고 나니 확실해졌어. 너에게로 돌아가고 싶어. '
그녀의 말이 잠시라고 그를 멈출 수 있길 바라면서 그의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