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미래

by 온혈동물

어색하게 하빈은 보검의 집 현관문을 들어섰다.

'니야아옹'

한걸음에 하빈의 고양이 솜이가 달려와 하빈의 다리에 비비기 시작했다. 솜이를 보자 반가운 마음에 하빈은 자리에 주저앉아 한동안 솜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뒤에 들어온 보검은 하빈의 가방을 들어 거실로 들어갔다.

"집이 엄청 넓고 깨끗하네요. 여기에서 혼자 지내는 거예요?"

"네. 제대하고 여기서 산지 벌써 3년 정도 되어가네요. 첨에는 이 공간을 혼자 쓰는 게 어색했는데 이제는 적응돼서 괜찮아요."

부모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이 큰 빌라에 꼭대기는 어떻게 살게 된 건지 묻고 싶었지만, 아직 서먹한 사이에 꼬치꼬치 캐묻는 건 실례일 것 같아 하빈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빈이 솜이와 같이 거실에서 빈둥거리는 사이에 보검은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저녁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잘 모르는 남자집에 이렇게 들어와 있는 자신이 의아하면서도 왠지 오래된 연인처럼 안정감을 주는 보검의 태도에 하빈은 이상한 기분마저 들었다.

"배 고프죠? 거의 다 됐어요. 제가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먹을 만은 할 거예요. 혼자 밥 해 먹기 시작한 지 벌써 십 년이 넘었거든요. 하하"




같이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겠다는 하빈을 극구 말린 보검은 뒷정리를 하고 하빈과 같이 거실 소파에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다른 말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하빈은 말을 끊었다. 사실 그녀는 정석선배의 일로 받은 심리적인 충격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은혜선배를 해쳤다는 것도 평소의 장난기 많고 사람 좋은 정석선배가 한 일이라고 믿기 힘들었는데, 그녀마저 해치려 했다는 것이 사람에 대한 깊은 불신과 회의감을 만들어냈다.

"많이 힘들 것 같아요. 같이 오래 지내던 사람들한테 그런 일이 생기고 하빈씨도 그렇게 돼서."

하빈의 마음을 읽은 듯 보검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보검에게 다가가자 보검은 따뜻하게 그녀를 앉아 주었다. 그의 따뜻한 품이 그녀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그에게서는 커피 향과 은은한 로션냄새가 났고, 하빈의 그의 냄새에 빠져들었다. 따뜻하지만 강 결한 키스가 끝나자 보검은 그녀를 가볍게 앉아 들고 그의 침실로 걸어 들어갔다.




다음날 하빈이 눈을 뜨자 보검과의 밤이 다시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보검은 다정했지만 열정적이었고 모든 순간 그녀를 배려했다. 하빈은 누군가와 같이 시간을 보낼 때 한 번도 충분한 만족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대체로 남자들은 자신의 감정에 항상 도취되어 상대방을 배려하기엔 미숙했다. 하지만 보검은 그 누구와도 달랐다. 오로지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일어났어요?"

이미 일어나 샤워를 마친 보검이 젖은 머리로 그녀의 곁에 다가와 이마에 키스를 했다. 그는 체취조차 완벽했다. 늦잠을 잔 게 부끄러워진 하빈은 얼른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잠시 후 그녀가 거실로 나오자 보검은 그녀에게 따뜻한 커피를 내어주었다. 커피를 마시며 거실을 둘러보던 하빈은 거실 책장에 있는 한 사진에 눈길이 갔다. 사진에는 대여섯 명의 남녀가 앳된 모습의 보검과 같이 있었다.

"대학교 때 인가 봐요. "

하빈은 사진을 보다 사진 속의 사람들 중 확연히 두드러지는 미모의 한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보검에게서 느껴지는 긴장감 그리고 이어지는 분노에 놀라 하빈은 뒤를 돌아 보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는 무표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안에서 느껴지는 살기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보검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뒤를 돌아 소파로 돌아가며 말했다.

"네. 학교 때 같이 학생회 하던 친구들이에요."

하빈은 묻지 않아도 그가 누구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또한 말이다. 하빈은 자신의 소용돌이치는 심장소리를 느끼며 조용히 자리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한동안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하빈이 고개를 들어 보검을 쳐다보았을 때 하빈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살인을 할 수 있는 사람. 어쩌면 이미 했을 수도 있는 사람'

그녀는 그의 마음속의 소리를 보검이 듣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보검은 그녀의 눈 속에서 지난밤의 강렬한 애정이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은 말없이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얼마 후 하빈은 솜이를 캐리어에 넣고 떠날 준비를 했다. 하빈이 현관으로 향하자 침묵을 깨고 보검이 말을 걸었다.

"내가 데려다줄게요."

보검은 하빈이 어떤 반응을 할지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빈을 쳐다보았다.

"택시 불렀어요.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하빈은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연인과 이별을 하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왔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 그에게 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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