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by 온혈동물

인천공항을 나서자 후끈한 열기가 하빈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길거리 어디에도 사람 보기가 쉽지 않았던 뉴질랜드에서 거리에 온통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한국의 거리는 낯설었다. 작년 겨울 한국을 떠날 때는 최소 일 년은 있다가 들어오리라 생각했던 터였는데 반년만에 한국에 다시 들어왔다.

보검은 하빈의 카톡에 한참을 지나 한마디를 던졌다.

'얼굴 보고 얘기하죠.'

하빈은 아직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그를 막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녀에겐 그를 잡아둘 어떤 실질적인 증거도 없었고, 그저 그녀의 강한 직감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의 말을 누가 믿어줄 리 만무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하빈은 끝없이 생각했다. 일단은 보검을 만나야 했지만 그녀에게 계획이 필요했다.

잠시 후 하빈은 집으로 가는 공항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하빈은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의 서재의 문을 노크했다. 평생 경찰일을 하신 하빈의 아버지는 하빈에게 언제나 어려운 존재였다. 감정적이고 여린 어머니와 반대의 성격인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집에서는 식사 후엔 항상 자신의 서재에서 책을 보거나 혼자 시간을 보냈고,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은 식사를 할 때뿐이었다.

하빈이 서재의 문을 열자 아버지는 책상에서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빠한테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하빈이 하는 말을 그녀의 아버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현실적으로 그녀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뿐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녀는 보검을 알게 된 경위와 그가 지금 벌어지는 연쇄살인의 범인일 거라는 그녀의 생각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병원에서 개에게 물린 후 갖게 된 알 수 없는 그녀의 감각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얘기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자신의 딸이 망상에 빠진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그녀의 말을 끝까지 신중한 태도로 듣고 한참을 생각에 빠져있었다. 하빈의 아버지가 그녀의 말을 잘라버리고 무시하지 않을 걸로 나름의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그녀의 의심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빠가 네가 하는 말을 믿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네 말을 증명하기는 어렵다는 걸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아빠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거니?"

아버지의 차분한 말투에 하빈은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항상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게 그의 아내와 가장 맞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었다. 하빈의 어머니가 스스로의 감정을 남편이 이해해 주고 다독거려 주길 원했지만, 그런 감정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라고 생각하는 하빈의 아버지한테는 그의 아내가 철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특정한 성향의 사람들에 대해 강한 분노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지금은 그게 동성애자들에 대해서인 것 같고요. 전에 그의 집에 갔을 때 그 사람이 사진 속의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갖는 걸 알게 됐는데, 오래된 뉴스를 찾아보니 그가 학교에 있을 때 사진 속의 사람이 자살했다고 나오더라고요. 전 그게 시작이 아닐었을까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를 다시 만나기 전에 지금 살인 사건을 담당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너 지금 그 위험한 사람을 다시 만나겠다는 얘기냐?"

아버지는 언성을 높이며 그녀를 다그쳤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딸이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 뛰어들겠다는 말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저를 위한 일이에요. 그 사람과 마무리가 되지 않으면, 저도 맘 편하게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버지는 화가 난 얼굴로 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하빈은 아버지가 그녀를 당장이라고 화를 내며 쫓아내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아버지는 감정은 더 이상 격해지지 않았다.

"서울에서 일어난 일이라 내가 알기는 어렵지만, 일단 어디에서 그 일을 관리하고 있는지, 경찰 내에 아는 사람들을 통해 좀 알아볼 테니 당장은 아무 일도 벌이지 마라. 그리고, 나와 상의하기 전에는 절대 어디 가지 말고. 알겠니?"

아버지는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마음먹은 일이라면 하고 마는 그의 딸에 성향을 알고 있기에, 그가 딸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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