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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y 31. 2022

나는 가벼운 인간관계가 좋다.

넷플렉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어제 넷플렉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마지막회를 보았다. 사실 마지막회인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 안의 사람들이 모두 철학자 같아 보이기까지 했는데, 특히 어제는 극의 주인공중 한 명인 '구 씨'의 말이 마음에 걸려왔다.

 "나는 사람들이 너무 싫어. 눈앞에서 알짱알짱 대는 것도 너무 싫어"

동의한다. 물론 사람들이 너무 싫은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한때는 아무도 필요 없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오만한 생각을 하기도 한 것 같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마찰에 대한 인내심이 별로 많지 않아서기도 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갈등과 할머니에 대한 집착으로 관계 맺기에 대한 회의가 든 것이 아마도 시작이었을 것 같다. 크면서 내 경계 안에 들어온 친한 친구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시간을 많이 보내도 친구하고 칭하지 않았다. 그럼 그런 친구들과 가볍게 즐거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혹시나 그 친구들한테 서운함을 느끼는 상황이 되어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나 스스로의 방호복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음속에서 '사람은 신뢰할 수 없는 존재다'가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나는 아직도 삶의 일부분만 건드리는 인간관계에서 더 편안하고 즐거움을 느낀다. 사실 더 이상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냥 습관처럼 굳어진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가 싶다. 자기 인생에 중요한 몇몇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각자 인생의 일부만을 공유하는 사람들, 직장 동료들, 아이 친구의 부모들, 그리고 가끔 보는 친구들. 이런 가벼운 관계의 사람들에겐 크게 신뢰 따위의 거창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일정한 독립성을 기대하는 듯하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연락에 대한 의무를 크게 갖지 않고, 서로 잘살면 되는 거다 라는 식의 태도. 이런 나의 삶의 태도가 결혼 후 힘들어졌던 건 사실이다. 남편은 나의 공간을 배려해주고 나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 것과는 상대적으로, 시어머니는 결혼 후 나를 그들의 가족 안에 끼워 넣으려 애를 쓰셨다. 의무적인 가족행사와 지속적인 연락이 필요한, 한마디로 계속 무언가를 공급해주어야 하는 관계. 물론 부모든 형제든 가까이 지내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서로 맞는 사이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끼워져야 한다고, 서로 맞지 않는데 친해질 수는 없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진, 대학시절 읽었던 "좀머씨 이야기"는 내 기억이 맞다면 철저히 혼자인 한 남자의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완전히 혼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부러워 한적도 있었다. 소극적으로 사람들의 관계를 제한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사람을 밀어낼 자신도 없어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 어른인 내가 좋다. 이제 필요에 따라 혼자 있어도 견딜 수 있고, 감정 없이 가볍게 사람들과 유지하는 것도 나름 내공이 생긴 탓이다. 그렇지만, 다른 깨달음도 생긴 탓이 크다. 이런 가벼운 관계들이 얼마나 사람에게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싫든 좋든 우리는 서로가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물론 그냥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초점을 둔다면, 아마도 살아갈 수 있다고도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으로, 삶의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아니 불과 얼마 전에도, 엄마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분들이나, 혹은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걸 볼 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모르는 사람과 얘기를 하는 걸까.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건 대단한 기술이나 노력이 필요한 건 아닌 듯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걸 오십이 되어가는 나이에, 돌아 돌아 깨달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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