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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밀리 Mar 04. 2022

한국 최고의 페미니즘 소설은?! 단연 박씨전이지!

 미국의 월트 디즈니사는 프랑스의 ‘신데렐라’, 독일의 ‘라푼젤’, 중국의 ‘뮬란’, 폴리네시아 ‘모아나’ 등 세계 각국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콜롬비아 ‘엔칸토:마법의 세계’, 스코트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메리다와 마법의 숲’ 등 다문화, 다민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폭넓은 스펙트럼의 이야기를 다르고 있는 작품들이지만 이들 대부분은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서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중에서도 2020년 실사판으로 재개봉된 ‘뮬란’은 주인공 뮬란 연로한 아버지를 대신해 자신의 성별을 숨기고 남장을 하고 종군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종전 동화 속에서 다루던 공주의 모습이 아닌 남성을 뛰어넘는 영웅의 모습으로 나라와 백성 그리고 임금을 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자여서 받아야 하는 차별을 대처하는 데 있어서는 뮬란이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비난하며 절망과 좌절로 끝맺는 것이 아니라 상황 상황마다 뮬란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이 작품이 시대를 넘어서는 여성 영웅 이야기면서도 현대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 때문에 우리에게 이보다 더 파격적인 여성 영웅 이야기 ‘박씨전’이 있다는 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박씨전’은 중국의 ‘뮬란’보다 더 파격적인 페미니스즘 소설로 디즈니가 한국의 이야기로 에니메이션을 만든다면 이보다 더 할 나위가 없는 그런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상 최악의 패전으로 기록되고 있는 병자호란은 조선 인조 때 청나라가 12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전쟁을 말한다. 그러나 45일 동안의 항전 끝에 항복을 했고 인조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상복을 입고 3번 큰절을 하며 9번 땅바닥에 머리를 박는 청나라식 인사 방법을 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이는 군신의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되었고 항복의 대가로 소현세자, 봉림대군 척화파 신화와 20만 명의 백성들을 청에 인질로 보내야만 했다. 이런 굴욕적 역사적 사실을 배경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지만 현실과 달리 작품 속에서는 조선이 청나라에게 승리를 거두는 마무리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해피엔딩은 백성들에게 전쟁에 대한 패배감, 치욕감을 문학적으로나마 승화시킬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허구가 가진 힘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훌륭하다. 여기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현실의 굴욕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 설정부터가 파격적이다. 유부녀인데다가 그것도 박색! 그렇지만 그런 그녀가 나라를 구해버리는 것이다. 철저하게 남존여비의 사회적 인식이 만연되어 있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늘 권위만 내세우고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남성들을 오징어를 만들어 버리는 혁신적인 페미니즘 소설이 조선시대에 나와 버린 것이다! 가부장제도에 억압당한 여성이 못 생겼다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아내와 며느리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귀한 대접만 받고 그것을 강요하던 남성들이 가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나라를 구하지도 못하는 무능을 질타한다. 또한 박씨는 사회적 지위가 낮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참여하면서도 차근히 앞날을 계획할 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능력을 보이며 이를 승리로 이끈다. 이는 우울한 현실을 해피앤딩으로 바꿔놓는 의미를 넘어 전쟁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청나라에 무릎을 꿇은 무능한 관료들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기능 또한 하는 것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이 소설은 미인이었던 박씨가 이를 숨기고 박색으로 살다가 다시 미인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변신의 모티브를 가지고 있는데 아내의 외모가 바뀜에 따라 태도가 바뀌는 남편 이시백을 두고 자기 아내의 마음도 볼 줄 모르는 이가 어찌 효와 충을 알것이며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겠냐며 크게 꾸짖는다. 이에 남편은 겉모습만 보고 박씨를 박대했던 것을 진심으로 사죄를 한다. 이 대목에서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남녀평등에 관한 인식이 담겨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웅이야기는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왔다. 그만큼 사람들은 영웅 이야기를 원하고 바란다. 그런데 이 영웅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웅인 것보다는 그가 처해 있는 차별적 현실과 억압적 굴레를 극복해 끝내 영웅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면 서사 자체부터가 시너지가 된다.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박씨전이 현대에 그것도 세계를 대상으로 개봉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생각해볼 문제   

우리의 옛 고전 중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면 좋을 것 같은 작품을 찾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어떤 점이 각색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박씨전’이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현실과 다른 결말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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