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어린 날의 가난

가난이 증거가 되던 시절

by Journey
어린 날의 가난


장례가 끝나고, 아버지가 남긴 빈 방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디게 흘러갔다.

옷가지나 약봉지는 금방 치웠다. 문제는 책이었다. 책장을 정면으로 마주 서면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무릎을 감싸 쥔 채 문가에 앉아 있었고, 부은 무릎 위로 손바닥을 천천히 문질렀다.


"그건... 버리지 마."


어머니는 책 제목도 안 보고 그렇게 말했다. 마치 책이 아니라 시간을 만지는 사람처럼.

책장에는 읽은 책보다 읽다 만 책이 많았다. 끝내 읽지 못한 채 표지만 닳아 있는 책도 있었고, 중간에서 접힌 채 그대로 멈춘 페이지도 있었다.


아버지는 와상 환자로 눕기 전까지는, 정말로 책을 좋아했다. 시간이 나면 책방에 들렀고, 누가 버린 책을 주워 와 먼지를 털어 꽂아두기도 했다. 성경이든 불경이든 가리지 않았다. 소설이든 수필이든, 종교책이든 교양서든, 책이면 일단 펼쳐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눕고 나서는 달라졌다. 책은 손에 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눈앞에 놓고도 넘기지 못하는 풍경이 됐다. 그래서 책장에는 ‘끝까지 간 책’보다 ‘중간에서 멈춘 책’이 더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책을 좋아했다기보다는... 나중에는 동경했다는 말이 더 맞았다. 읽고 싶다는 욕심을 들키지 않으려는 얼굴로, 표지를 손끝으로 문지르던 사람.


나는 먼지 쌓인 문학 전집 하나를 꺼내 펼쳤다. 바싹 마른 책등이 투둑 소리를 내며 갈라졌고, 누렇게 바랜 종이 냄새가 훅 끼쳐왔다. 순간, 목이 따끔해졌다. 먼지 때문인지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다.

몇 장을 넘기다가 손이 멈췄다. 페이지 모서리 한쪽이 갈색으로 번져 있었다. 누가 일부러 묻힌 것도 아닌데, 오래전에 한 번 쏟고 대충 닦은 흔적처럼, 종이결 사이로 스며든 자국. 그 부분만 종이가 아주 조금 울어 있었다. 손끝으로 문지르니 바싹 마른 끈적함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냄새가 났다.

달콤한, 견과류 같은. 헤이즐넛 커피에서 나는 그 향. 확신은 없었다. 그냥 내가 그렇게 맡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상했다. 책 한 권에 남은 얼룩 하나가, 아버지가 그 방에 있었던 시간을 더 정확하게 증명하는 것 같아서.

그 냄새를 맡자, 아버지가 드문드문 꺼내던 어린 날 이야기가 책장 넘기듯 한 장씩 떠올랐다.


아버지는 가난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다. 그것을 부끄러워해서 숨겼다기보다는, 굳이 말로 꺼내놓는 것이 의미 없다는 표정에 가까웠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말로 꺼낸다고 해서 배고픔이 채워지는 것도 아니라는 듯, 그 시절 이야기는 늘 중간에서 뚝 끊겼다.


다만 아주 가끔, 우리가 어렸을 때 밥을 남기면 아버지는 유난히 예민해졌다.


"밥알 하나도 남기지 마."


말투는 늘 단호했고,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때는 그냥 잔소리라고만 생각했다.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왜 밥상에서까지 숨이 막히게 만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뉴스에서 등록금 때문에 휴학한다는 대학생 사연이 나오면, 아버지는 젓가락을 잠깐 내려놓기도 했다. 그때의 얼굴은 분명히 여기 있지 않았다. 어딘가를 잠깐 다녀왔다가 돌아오는 얼굴. 말은 하지 않는데도, '그때'가 잠깐 올라오는 것 같았다.


"도시락을 못 싸갈 때가 많았어."


언제가 한번은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꺼낸 적이 있다.


국민학교 다닐 때. 1950년대.
도시락이 없다는 건 점심 한 끼 굶는 것만 문제였던 게 아니었다.
하루 중 제일 길고 시끄러운 시간을 혼자 버텨야 하는 일이었다.


4교시 끝나는 종이 울리면 교실이 난장판이 됐다.
아이들은 책상을 밀어내고 삼삼오오 모여 앉았고, 여기저기서 양은 도시락 뚜껑 열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뚜껑을 여니 훅 쉰 김치 냄새, 멸치볶음 냄새가 퍼지고, 가끔 부잣집 애들 도시락에서 계란말이 냄새가 나기도 했다.
난로 위에 올려둔 도시락은 김을 뽑아 뜨끈했다.


"야, 너 반찬 뭐냐?"
"나 오늘 소시지다."
"하나만 줘봐."


아이들 목소리는 시끄럽고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는 쨍쨍했다.
그 소란 속에서 도시락 없는 애는 더 눈에 띄었다.


아버지는 그 무리에 끼지 못했다.
배고파서가 아니라 앉을 자리가 없어서였다.
빈 책상에 앉아 칠판만 보는 것도, 엎드려 자는 척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었다.
손에 쥔 게 없으니 열 살 남짓한 애가 몸을 둘 데가 없었다.


그래서 교실을 나왔다. 운동장을 걸었다. 아주 천천히.
너무 빨리 걸으면 갈 데 없다는 게 들통날까 봐 보폭을 줄였다.
누가 보면 심부름 가는 것처럼 보이려 발을 조심스레 뗐다.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를 지나, 조회대 뒤를 돌아, 흙먼지 나는 스탠드 옆을 스치며.
결국 발이 멈춘 곳은 운동장 구석 수돗가였다.


"그때는 말이야..."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수돗가에서... 물만 마셨어. 한 열 번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배에서 소리 나면 애들이 다 알잖아."


점심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아버지는 수도꼭지를 틀었다. 콸콸콸. 차가운 물이 쏟아져 나왔다. 쇠 파이프를 타고 올라온 물에서는 비릿한 철 냄새가 났다. 아버지는 손바닥을 오목하게 모아 물을 받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


배가 고픈 건 그대로였지만, 배를 채우려는 건 아니었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라도 나지 않게, 물로 허기를 잠깐 눌러두는 일이었다.


"물은 차가웠는데 마시면... 잠깐은 배가 부른 것 같았어. 근데 그게 착각이더라고. 속은 더 차가워지고... 그게 점심이였지"


아버지는 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포만감이 아니라 팽만감이었다.

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속은 더 차갑게 식었고, 허기는 더 날카로워졌다. 그래도 그렇게 배를 물로 채워야만 오후 수업 시간, 칠판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는 현기증을 막을 수 있었다.

입안 가득 맴돌던 그 비릿한 쇠 맛은 아버지에게 점심이었고, 가난의 맛이었다.


집에 돈은 없었지만, 아버지는 공부를 잘했다. 아니, 공부에 매달렸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책이 없어도, 참고서를 못 사도 아버지는 교과서로 버텼다. 종이가 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은 통째로 외워버렸다. 가난한 소년이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배고픔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은 공부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공부에 대한 갈증은 더 커졌다. 교과서만으로는 부족했다. 서점에 가서 책을 구경만 하고 돌아오는 날이 허다했다. 계산대 앞에 놓인 참고서를 한 번 더 만져보고, 결국 손을 빼는 일. 그게 아버지의 습관 같은 게 됐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주 학교 안 ‘책 있는 곳’으로 갔다. 도서관이라고 부르기엔 좀 민망한, 작은 도서실. 교실 한 칸을 떼어 선반을 놓은 수준이거나, 창고 같기도 한 방이었다. 문은 늘 반쯤 닫혀 있었고,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점심시간, 혹은 방과 후 잠깐. 담당 선생님이 자리에 있을 때만 문이 열렸다.


도서실은 이상한 곳이었다. 돈이 없어도 책이 있었다. 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잠깐 가벼워졌다. 오래된 책장에서는 눅눅한 종이 냄새가 났고, 책을 펼치면 먼지가 얇게 일어났다.


책등마다 찍힌 학교 도장, 첫 장 안쪽에 끼워진 작은 종잇조각, 손글씨로 적힌 반납 날짜. 누군가 연필로 살짝 그어놓은 밑줄까지. 아버지는 그 흔적들까지도 애써 읽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시절엔 흔적까지 읽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책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읽고 싶은 건 많은데 점심시간은 짧았고, 방과 후엔 집으로 곧장 돌아가야 했다. 도서실 문은 늘 빨리 닫혔다. 책은 늘 중간에서 끊겼고, 책갈피는 늘 먼저 아쉬워졌다.

그러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집에 가져가서, 밤에라도 더 읽고 싶었다.


“선생님한테 빌린다고 하면...”


아버지가 한번은 그렇게 말했다.


“또, 저 애가 책에 욕심 낸다고... 그렇게 보실까 봐.”


정식으로 ‘빌린다’는 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인기 있는 책은 금방 다른 애 손으로 넘어갔고, 어떤 책은 “여기서만 봐라”는 말이 붙었다. 집에 가져가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괜히 눈총을 받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런 순간마다 자꾸 작아졌고, 결국 어느 날은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가져갔다. 대장에 이름을 적지 않고.


아버지는 도서실 책 한 권을 품에 끌어안고 나왔다. 교복 안쪽으로 책 모서리를 더 깊게 밀어 넣고, 책등에 찍힌 도장이 밖으로 보일까 봐 팔꿈치로 꾹 눌렀다. 걸음도 괜히 빨라졌다. 누가 부르지 않았는데도, 뒤에서 발소리가 따라오는 것 같았다.


“딱 며칠만 더 보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꽂아두면...”


아버지 목소리가 흐렸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면 정말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책이 ‘물건’이 아니라, 다음 세상으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처럼 보이던 시절이었다.

책을 집에 가져간 건 맞다. 하지만 훔치려던 건 아니었다고, 아버지는 몇 번이고 말했다.


“며칠만 보고... 돌려놓으려고.”


나는 그 말을 믿는다. 한 권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한 권이 너무 귀해서. 더 읽고 싶어서 저지른, 작고 어설픈 일탈. 하지만 그 시절 학교에서는 그게 ‘일탈’로 끝나지 않았다.


며칠 뒤, 도서실에서 책 한 권이 없다고 소란이 났다. 담당 선생님이 대장을 뒤적였고,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그런데 시선은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한 사람에게 모였다.


도서실에 자주 앉아 있던 아이.

책을 오래 들여다보던 아이.

참고서 하나 사지 못하던, 가난한 아이.

‘훔쳤다’는 말은 그렇게 쉽게 붙었다.


“네가 가져갔지?”


선생님의 추궁 앞에서 아버지는 아니라고 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떨린 건 죄책감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엔 가난이 설명이 아니라 증거처럼 취급되던 때였으니까.


교실 공기는 분필가루처럼 건조했고, 아이들의 눈은 너무 많았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해명할 기회보다 손찌검이 먼저였다. 믿어주는 어른도 없었다. ‘책을 좋아했다’는 말은 변명으로 들렸고, ‘며칠만’이라는 말은 더 나쁜 핑계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 책이 결국 어떻게 됐는지, 아버지는 늘 흐지부지 말했다.

“뭐... 나중에 어떻게 됐어.”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었다. 한 번 찍힌 낙인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 아버지는 그걸 그때 배웠다.


그리고 그 사건은... 유급으로 이어졌다.

ㄴ고등학교 2학년.

'유급'이라는 말은 단순히 1년을 더 다닌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건 낙인이었고, 조용한 퇴장이었다. 도서관 책 사건 이후로 징계가 붙고, 시선이 붙고, 말이 붙었다.

교실에 앉아 있어도 몸은 이미 복도에 나가 있는 것 같았다. 눈을 들면 누군가와 시선이 부딪힐까 봐 고개를 숙인 채로 시간을 넘겼다. 결국 결석이 늘고, 성적이 무너지고, 그렇게 1년을 꿇었다.


"그때부터였어."


아버지는 짧게 말했다.

사건 하나가 인생을 바로 밀어내는 건 아니지만... 그때부터였다.

그 일에 대해 아버지는 나중에 거의 말하지 않았다. 억울하다는 말도, 선생을 원망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이후로 아버지는 남의 물건을 빌리는 일에 병적으로 조심스러워했다. 아무리 급해도 남의 볼펜 한 자루를 빌리지 않았고, 오해받을 만한 자리는 본능처럼 피했다.


"그냥 내가 사면 되지."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 뒤에는 다른 문장이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다시는 그렇게 몰리지 않겠다.

가난은 그렇게 아버지의 성격이 되었고, 세상과 거리를 두는 삶의 태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1년이 늦었지만, 아버지는 다시 책을 폈다.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헌 책방을 뒤지며 공부했다.

그리고 1년 뒤,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꽤 좋은 대학,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아는 명문대에 합격했다.

그 소식이 전해진 날, 낡은 집 안에는 오랜만에 웃음이 넘쳤다. 할머니는 쌈짓돈을 꺼내 고기를 사 오셨고, 친척들은 "개천에서 용 났다"며 아버지를 추켜세웠다. 합격 통지서는 얇은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아버지가 운동장을 돌며 삼켰던 설움과, 교무실에서 맞았던 뺨의 고통이 보상받는 듯한 무게가 들어 있었다. 가난을 끊어낼 수 있다는 희망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얼굴을 하고 찾아온 날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잔인할 정도로 짧았다.

입학을 앞두고 받은 신체검사에서, 의사는 엑스레이 필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활동성 결핵으로 판정 나왔습니다."


그 한 문장이, 합격 통지서 위에 그대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

흉부 엑스레이 사진 위 하얗게 번진 그늘이 아니라, '판정'이라는 말 자체가 아버지의 앞날을 덮어버렸다.


그 시절, 결핵은 전염성이 높은 '망국의 병'처럼 취급되던 때였다.

1960~70년대에는 대학 입시나 신입생 건강검진에서 결핵이 확진되면 입학이 보류되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있었다. 치료를 받고 오라는 말이 위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일단 네 자리는 없다"는 뜻에 더 가까웠다.

행정실 직원은 서류를 넘기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규정이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어요."


아버지는 그 앞에서 억울하다고 소리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누구를 붙잡고 따져도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을 테니까. 그렇게, 얇은 종이 한 장으로 얻어낸 합격증은 또 다른 얇은 종이 한 장에 의해 너무 쉽게 접혔다.

대학 합격은 그렇게 허무하게 멈췄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서랍 속에 합격 통지서를 구겨 넣는 대신, 약봉지를 뜯었다.


"몸부터 챙겨야지... 그래야 다시 하지."


아버지는 그 좁고 어두운 방에서 1년을 버텼다. 독하기로 소문난 결핵약을 한 주먹씩 삼키며 고열과 싸우고, 피 섞인 기침을 참아냈다. 친구들이 캠퍼스를 거닐 때, 아버지는 골방에 틀어박혀 문제집을 풀었다.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공부는 그때 아버지가 붙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손잡이였을 것이다.


1년 뒤, 아버지는 결핵을 이겨냈다.

그리고 다시 시험을 치렀다. 처음 합격했던 그곳만큼 이름이 큰 학교는 아니었지만, 수도권의 다른 대학에 붙었다. 남들보다 두 해 늦은 입학.


"그날도... 별로 안 웃었어."


낡은 교복을 벗고 대학 뱃지를 달던 날에도 아버지는 크게 웃지 않았다. 대신 합격증을 한참 들여다봤다. 마치 종이의 감촉을 손바닥에 먼저 새겨두려는 사람처럼, 굳은살 박인 손으로 모서리를 몇 번이나 눌렀다.

아버지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한 번씩 멈춰 섰다.


점심시간 운동장 한복판에서,

도서실 문턱에서,

대학 담 앞에서.


가난이 발목을 걸고 병이 시간을 빼앗아 갈 때마다, 아버지는 늘 "다 끝났다" 쪽으로는 잘 가지 않았다. 그보다는 잠깐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돌아서더라도 결국 앞으로 가는 쪽을 택했다. 빠르게는 못 가도... 포기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그게 아버지의 방식이었다.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을 때, 아버지가 이상하리만치 덤덤했던 이유를 나는 자꾸 그 시절에서 찾게 된다.


"이번에도... 조금 돌아가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 눈빛이, 정말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억울한 일도, 좌절도, 고통도 혼자 삼키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먼저 배워버린 사람. 감정을 밖으로 꺼내면 더 손해라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사람. 그러니 병 앞에서도, 그 습관부터 먼저 작동했을지 모른다.


나는 책장에서 꺼낸 낡은 문학 전집을 가만히 덮었다.

책등은 닳고 닳아 있었고, 몇 장은 헤이즐넛 커피 자국처럼 갈색으로 번져 있었다.

손끝으로 그 얼룩을 한 번 문지르고 나서야 손을 뗐다.

찢어지지 않으려고, 그을리고 접히고 닳아가며 버틴 종이들.


이상하게도 그게... 아버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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