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친구의 울음
장례식장은 생각보다 붐볐다.
지하 1층 특유의 눅눅한 공기가 복도부터 스며 나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공기가 먼저 달라졌다.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섞여서, 사람 숨과 국화 향과 음식 냄새가 한꺼번에 떠다니는 곳.
말 그대로 “사람이 모이는 장소”라는 게 냄새로 먼저 느껴졌다.
복도는 화환으로 꽉 막혀 있었다. 꽃 리본이 길게 늘어져서 사람들 어깨에 걸리고, 지나갈 때마다 살짝씩 흔들렸다. 그 사이로 식당 쪽에서 끓는 육개장 냄새가 밀려왔고, 수육에서 올라오는 기름 냄새가 뒤를 따라왔다. 삶을 마감한 자리에서 산 사람들은 또 밥을 먹는다.
그 아이러니한 냄새와 분위기가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을 단숨에 실감나게 했다.
다른 방들은 커튼이 닫혀 있었는데, 우리 빈소만 유난히 사람 소리가 컸다.
구두를 벗는 둔탁한 소리, 슬리퍼가 바닥을 끌리는 소리, 인사말이 겹쳐지는 소리. 나는 상복으로 갈아입고 영정 사진 옆에 섰다. 상복은 생각보다 까끌까끌했고, 팔에 찬 완장은 얇은 천인데도 묵직했다.
‘아, 진짜로 시작됐구나’라는 느낌이 몸에 먼저 왔다.
사진 속 아버지는 건강할 때의 얼굴이었다.
살이 빠지기 전,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가 있는 얼굴. 그 미소가 이상하게 낯설었다.
병실에서 봤던 아버지의 얼굴과 겹치지 않았다.
같은 사람인데도, 사진 속 아버지는 “아픈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 사실이 조금 화가 났다. 왜 하필 이 얼굴이 남았을까.
왜 우리 기억 속의 아버지는 이렇게 단정한 한 장으로만 남아야 할까.
어머니는 빈소 한쪽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래 서 있지 못했다.
허리와 무릎이 이미 망가진 몸으로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버거워 보였다. 어머니는 손에 작은 찜질팩을 꼭 쥔 채,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억지로 일어나려다 다시 앉곤 했다.
얼굴과 눈은 부어 있었다. 울고, 또 울고, 잠을 거의 못 잔 얼굴이었다.
임종 직전엔 어머니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그동안 몇 번이고 “또 괜찮아질 수도 있다”는 착각 같은 희망이 있었고, 무엇보다 어머니는 그런 전화를 받으면 밤새 무너져버리곤 했으니까.
그걸 어머니가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나는 아직도 확신이 없다. 다만 어머니는 영정 사진을 아무 말도 없이 오래 올려다볼 뿐이었다.
빈소 앞에 서서 고개를 들 때마다 처음 보는 얼굴이 하나씩 더 늘어 있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구두를 벗는 둔탁한 소리가 나고, 국화 한 송이를 놓고, 고개를 숙이고, 짧은 말을 남기고, 다시 나갔다. 국화꽃은 하얀 눈처럼 쌓여갔다. 그 반복되는 행렬을 보며 나는 조금 멍해졌다. 아버지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알고 지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들이 기꺼이 이 먼 곳까지 찾아와주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집에서는 늘 TV 앞 소파에만 박혀 있던, 말수 적고 무뚝뚝했던 그 노인이 바깥세상에서는 꽤 넓은 궤적을 그리며 살았던 모양이다. 내가 모르는 아버지의 우주가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상주석에 앉았다가 일어섰다가를 반복했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허리가 뻣뻣해질 정도로 절을 했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문객들의 말들은 점점 비슷해졌고, 고개를 숙이는 각도도 거의 같아졌다.
"좋은 분이셨습니다."
"참 성실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의례적인 말들이었지만, 그 말들이 빈말이나 거짓은 아니라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투박한 손으로 내 손을 꽉 잡는 악력에서, 그리고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짓는 씁쓸한 표정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아버지가 일부러 사람을 끌어모으는 호탕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오는 사람을 밀어내는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IMF 때 아버지가 잠시 운영했던 식당의 단골손님이라며 찾아온 중년 부부도 있었고, 아버지가 퇴직하기 전 회사에서 데리고 있었다던 부하 직원이라며 머리가 희끗해진 아저씨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버님 덕분에 그때 버텼다"거나 "따뜻한 밥 한 끼 잊지 못한다"는 식의 기억을 꺼내 놓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생각했다. 아버지는 밖에서도 그렇게 자신의 몫을 떼어 남을 먹이는 사람이었구나. 정작 당신의 자식들에게는 살갑게 굴지 못했으면서. 그 사실이 야속하면서도 고마웠다.
예상하지 못했던 손님들도 많았다. 우리 형제나 누나의 지인들. 아버지를 직접 알지는 못하지만 “얘기 많이 들었다”며 들어오는 사람들. 그들은 더 조심스러웠고, 말도 더 천천히 골랐다.
내 직장 상사가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는, 아주 짧게 말했다.
“네가 아버지 닮아서 그렇게 성실하구나.”
나는 멍하니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아버지를 닮았던가. 나는 평생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는데. 가난도, 융통성 없는 성격도, 침묵도 닮기 싫어서 도망치듯 살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구석에서 묵직한 것이 툭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부정하려 해도 내 눈매 어딘가에, 걷는 뒷모습 어딘가에 아버지의 그림자가 묻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아버지가 헛되게 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그제야 조금 실감 났다. 적어도 외롭게 가지는 않겠구나. 병실이나 방안에서는 기계 소리만 들으며 5년을 갇혀 있었지만, 가는 길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의 배웅을 받는구나. 마지막만큼은 잘 보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상주들 사이에, 그리고 국화꽃 향기 속에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고 조문객이 잠시 뜸해졌을 때였다.
식당 쪽에서는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해졌지만, 빈소 안은 잠시 고요했다.
그때, 빈소 입구에서 두 사람이 천천히 들어오는 게 보였다.
아버지의 옛 친구들이었다. 낡은 양복을 입은 그들의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소매 끝이 닳아 있었고, 넥타이는 유행이 지난 폭이 넓은 것이었다. 그중 한 분은 몸이 많이 불편해 보였다. 뇌졸중 후유증이 있다고 얼핏 들었던, 아버지의 대학 친구였다. 걸음이 아주 느렸다. 지팡이에 체중을 실은 채, 덜덜 떨리는 다리를 끌며 숨을 고르고, 다시 한 발을 옮기고 있었다.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부축하려 했지만, 그분은 고개를 저으며 팔을 뿌리쳤다. 끝까지 혼자 걸어오겠다는 고집. 그것은 친구에 대한 마지막 예우이자, 당신의 자존심처럼 보였다.
빈소 안의 모든 시선이 그 느린 걸음에 집중되었다.
탁, 슥... 탁, 슥...
지팡이가 바닥을 짚는 소리와 신발이 끌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채웠다. 영정 사진 앞에 도착하는 데까지 한참이 걸렸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그 걸음을 지켜보았다.
식당 쪽 소란마저 잦아든 것 같았다.
모든 시선이 그 느린 걸음에 고정되었다.
3미터를 오는 데 2분이 걸렸다. 한 발 옮길 때마다 온몸이 흔들렸다.
지팡이 쥔 손의 핏줄이 불거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누나와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분은 손을 저었다.
"됐습니다."
마침내 영정 앞에 도착했다. 그분은 그대로 멈춰 섰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지팡이 쥔 손의 핏줄이 불거졌다.
1분쯤 지났을까.
그분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진을 본 순간, 그분의 얼굴이 와르르 무너졌다. 입술이 떨렸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목구멍 깊은 곳에서 간신히 짜낸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영...기야..."
빈소 안 공기가 멈췄다.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아빠'도 '여보'도 아닌. 40년, 50년을 함께 불러온 그 이름.
그분은 떨리는 손을 들어 영정 사진의 유리 액자를 어루만졌다. 액자 위를 문지르듯, 마치 차가운 유리가 아니라 아버지의 따뜻한 뺨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친 손가락이 유리를 긁는 소리가 났다.
"...영기야."
두 번째는 거의 속삭임이었다. 마치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대답은 없었다.
그분은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어 손수건을 꺼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형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덤덤하게 상주 자리를 지키던 형의 어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입술을 꽉 깨물어 참으려 했지만,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누나도 고개를 돌리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울음이 터졌다.
아까 임종 때와는 다른, 참고 있던 둑이 터진 듯한, 아주 서러운 울음이었다.
나도 그제야 숨이 가빠졌다.
아버지의 친구가 부르는 '영기야'라는 이름 하나에, 그동안 버티고 있던 것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아버지가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애틋한 이름이었구나. 나에게는 그저 무거운 가장, 아픈 환자였을 뿐인 아버지가, 이 사람에게는 평생을 함께한 청춘이었고 친구였구나. 우리가 모르는 아버지의 청춘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상주석에서 일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절을 받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 노인의 굽은 등 뒤에서 함께 울었다.
그분은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꼬깃꼬깃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우리 쪽을 바라봤다.
충혈된 눈. 미안하다는 듯, 아니면 잘 키워놔서 고맙다는 듯, 분간하기 어려운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고개를 깊게, 아주 깊게 숙였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우리 가족만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실감했다.
아버지는 누군가의 친구였고, 누군가의 버팀목이었고, 술잔을 기울이며 "힘들다"고 투정 부릴 수 있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계속 들어왔고, 계속 나갔다. 국화 향은 어느 순간 소주 냄새에 눌렸다. 빈소는 점점 더 몽롱해졌다.
나는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는 사람들 눈치를 보며 울음을 삼키는 얼굴이었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얼굴. ‘지금이 마지막이다’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해주고 싶었던 우리 마음이, 어머니에겐 어떤 모양으로 남았을까. 그걸 생각하면 속이 조금 쓰렸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날 장례식장에서는 아버지의 삶이 사람들의 발걸음과 목소리로 조용히 증명되고 있었다.
사진 속 아버지는 여전히 엷게 웃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그 얼굴을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복도 끝에서 또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