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사람보다 더 크게 남아 있는 생활의 흔적
장례 절차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 여섯 시였다.
해는 아직 완전히 지지 않았는데, 집 안은 이상하게 어두웠다.
밖은 아직 사람들이 퇴근하는 시간인데, 우리는 이미 하루를 몇 번이나 끝낸 사람들처럼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문을 열자 익숙한 집 냄새가 아니라, 며칠 동안 비워둔 공간의 냄새가 먼저 끼쳐왔다.
사람이 살지 않은 지 고작 사흘인데도 집에서는 오래 비워둔 곳 특유의 건조한 냄새가 났다. 어딘가엔 소독약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거실 바닥에는 급하게 나가느라 벗어둔 양말 한 짝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누가 일부러 남겨둔 표식처럼.
우리는 마치 도둑처럼 살금살금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머물던 안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가 ‘머물던’ 방이었다.
아버지는 임종 전 마지막 열 달은 요양병원에 계셨다. 그래서 이 방은 이미 열 달 동안 조용했다. 우리는 가끔 문을 열어 환기만 시키고 다시 닫았다. 어머니 무릎이 좀 괜찮아지면, 다시 모실 생각으로. 그때까지만 버티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 거라고, 우리도 모르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방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언젠가’ 다시 쓰게 될 방처럼.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문고리를 잡았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금속성이 소름처럼 팔을 타고 올라왔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문을 열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열 달 동안도 소리가 없었는데, 늘 먼저 들리던 것이 있었는데, 그게 없었다.
슉- 치이익, 슉- 치이익.
24시간 멈추지 않고 폐로 공기를 밀어 넣던 인공호흡기의 기계음도, "크윽, 크으윽" 하며 가래를 뱉어내려 애쓰던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도 없었다.
방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 압도적인 조용함이 오히려 귀를 멍하게 울렸다. 진공 상태에 들어온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방 한가운데 놓인 침대는 비어 있었다. 사람만 빠져나갔을 뿐인데 침대는 거대한 물건이 아니라 거대한 ‘흔적’처럼 보였다. 매트리스는 상체 쪽이 비스듬히 들려 있었다.
우리가 집에서 간병하던 시절, 숨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하려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수없이 조절했던 각도였다.
요양병원으로 옮긴 뒤로는 손댈 일이 없어 그대로 굳어버린 각도.
침대 시트 위에는 아버지의 몸이 눌러놓은 움푹한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5년 동안 한 자세로 누워 있었던 사람의 무게가, 그 얇은 시트에 화석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 위에 남아 있을 것만 같은 체온, 혹은 땀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그 특유의 냄새가 부담스러워, 나는 한동안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침대 끝으로 향했다. 그곳에 작은 무선 초인종이 놓여 있었다.
하얀색 플라스틱 버튼.
몇 천 원짜리 싸구려 물건이, 우리 가족에게는 생명줄이자 가장 무서운 알람이었다.
아버지는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루게릭으로 확진을 받고 점점 병이 진행되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되었고, 목소리마저 잃어버렸다.
우리가 잠시라도 방을 비우면, 아버지는 칠흑 같은 공포 속에 혼자 남겨졌다.
가래가 기도를 막아도 소리를 지를 수 없었고, 몸이 가려워도 긁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초인종을 아버지의 발밑에 두었다.
아버지가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었던 유일한 신체 부위,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닿는 위치에.
아버지는 발가락으로 그 초인종을 눌렀다. 아주 미세하게, 온몸의 신경을 발끝으로 모아서.
딩- 동-
그 소리가 거실에 울리면, 설거지하던 어머니도, TV를 보던 나도, 화장실에 있던 누나도 모두 튀어 나갔다.
그 소리는 호출이자 신호였고, 아버지가 아직 살아 있다는, 그리고 살고 싶다는 처절한 증거였다.
새벽 3시에도, 4시에도 그 벨 소리는 울렸다. 우리는 자다가도 조건반사처럼 튀어 일어나 방으로 달려갔다. 달려가 보면 아버지는 땀을 뻘뻘 흘리며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기도가 막혔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익숙하게 석션기를 켜고 가래를 뽑았다. 가끔은 너무 힘이 없어 소리가 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발가락이 버튼을 눌렀지만, 접촉 불량처럼 소리가 울리지 않은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서로를 보며 물었다.
"방금 소리 나지 않았어?"
"아닌데, 안 났는데."
불안한 마음에 문을 열면, 아버지는 얼굴이 벌게진 채 눈으로만 우리를 찾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그 눈동자. 왜 이제 왔냐는 원망과, 이제라도 와줘서 다행이라는 안도가 뒤섞인 그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 그 초인종은 울리지 않는다.
침대 끝에 그대로 놓여 있는데도, 아무도 누르지 않는다. 더 이상 발가락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그 작은 플라스틱 덩어리는 방 안의 모든 침묵을 대신 짊어진 돌맹이처럼 보였다.
나는 홀린 듯 다가가 그 초인종을 손으로 살짝 눌러보았다.
딩- 동-
경쾌하고 맑은 소리가 텅 빈 방을 날카롭게 갈랐다. 내가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조건반사가 일어났다.
거실에 있던 어머니가
"여보!"
하며 달려올 것만 같은 착각. 하지만 이내 끔찍한 정적만이 되돌아왔다.
침대 곁에 서 있자, 방 안의 물건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방안의 풍경이자, 우리 집의 지난 5년이었다.
철제 난간이 달린 병원용 침대,
영양제와 항생제를 걸어두던 링거대,
슉- 슉- 소리를 내며 밤새 돌아가던 가정용 인공호흡기,
웅- 하는 소음과 함께 열기를 뿜어내던 산소 발생기.
그리고 침대 옆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석션기(객담 흡입기).
그것은 우리 가족이 가장 미워하면서도 가장 의지했던 기계였다.
쿠르르륵- 가래를 빨아들일 때 나는 그 끔찍한 소음.
아버지는 석션 호스가 목구멍 깊숙이 들어올 때마다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렸고,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미안해, 아빠. 조금만 참아. 이거 해야 숨 쉬어."
우리는 죄인처럼 중얼거리며 튜브를 쑤셔 넣었다. 투명한 호스를 타고 누런 가래가 빨려 올라올 때의 그 비릿한 시각적 충격. 따뜻한 분비물이 호스를 통과할 때마다 튜브가 미세하게 꿈틀거리며 김이 서렸다. 아버지는 구역질을 참으며 몸을 떨었고, 우리는 그 튜브의 온기와 진동을 손끝으로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아버지가 그때마다 눈가에 맺던 눈물. 그리고 우리는 늘, 죄인처럼 속삭였었다.
“아빠, 좀 참어!! 이거 해야 숨 쉬어.”
그런데 이제 그 기계가 할 일은 없었다.
할 일이 없는 기계가 방 한가운데 남아 있다는 게 이상했다.
무용한데도 치우지 못하는 물건.
우리 가족이 그걸로 버텼다는 증거라서.
그 옆에는 아직 뜯지 않은 멸균 증류수 통과, 석션 카테터 박스, 소독용 알코올 솜, Y거즈, 라텍스 장갑, 물티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나하나 따로 보면 그저 의료 소모품인데, 이렇게 한꺼번에 떠올리니 그건 물건이 아니라 '시간'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누워서 견뎌낸 시간, 우리가 그 곁에 서서 마음 졸이던 시간, 하루가 1년처럼 길게 반복되던 고통의 시간. 그 물건들 사이에 서 있자, 몸이 먼저 기억을 꺼냈다.
코끝에서 소독약 냄새와 비릿한 가래 냄새가 났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침대 앞의 TV는 꺼진 화면으로 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늘 저 화면을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TV를 보는 척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시선 둘 곳이 필요했을 뿐이다. 꺼진 TV의 검은 화면에는 이제 텅 빈 침대와 내 모습만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저 검은 화면 속에 갇혀서, 뉴스를 보는 척하며 자신의 굳어가는 몸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끔 채널이 재미없는 뉴스로 고정되어 있을 때가 있었다.
아버지는 채널을 바꿔달라는 말을 하지 못해, 우리가 눈치챌 때까지 몇 시간이고 지루한 뉴스를 보고 있어야 했다.
뒤늦게 그걸 깨닫고
"아빠, 다른 거 틀어줘?"
하고 물으면, 아버지는 눈을 두 번 깜빡였다.
화면만 켜면 다시 그 시간이 돌아올 것 같았지만, 리모컨은 먼지가 쌓인 채 협탁 위에 놓여 있었다.
"......"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틀에 기대어 서 계셨다.
상복 치마 아래로 보이는 무릎이 퉁퉁 부어 있었다.
부은 살이 단단하게 당겨져 있는 것처럼, 무릎이 둥글게 부풀어 있었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문틀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부은 무릎을 감싸 쥐고 있었다.
오래 서 있는 게 아니라, 서 있는 척 버티는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눈은 장례식장에서 울어 붓다 못해, 이제는 그냥 지친 눈이었다.
텅 빈 침대를 멍하니 바라보며,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보이지 않는 기억들이 피어올랐다.
남편의 기저귀를 갈던 자리,
욕창이 생기지 않게 몸을 돌려눕히던 자리,
유동식으로 위루관으로 넣어주던 자리.
소변줄을 통해 소변통이 꽉차서 갈아주던 자리.
어머니에게 이 방은 전쟁터였고, 동시에 남편과 함께한 마지막 세상이었다.
"치워야지..."
"다... 치워야지. 아빠 가셨는데."
어머니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어머니는 발을 떼지 못했다.
치우는 순간, 정말로 모든 게 끝나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방을 나서려다, 다시 멈췄다.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들여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가져온, 검은 리본이 달린 액자.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액자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 속 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프기 전, 주민등록증 갱신할 때 찍었던 사진이라고 했다.
건강한 혈색, 다부진 어깨, 굳게 다문 입매가 아니라 활짝 벌려 웃는 입.
침대에 누워 있던 앙상한 환자의 모습도, 기계에 둘러싸여 숨을 헐떡이던 모습도 아닌, 우리가 기억하던 '진짜 아버지'였다. 그 얼굴을 기계들이 널브러진 빈 방 안으로 들여놓는 순간, 슬픔의 결이 달라졌다.
지금까지의 슬픔이 '아버지가 없어졌다는 사실'에서 왔다면, 이건 '완전히 다른 자리에 가버렸다는 사실'에서 오는 이질적인 슬픔이었다.
저 사진 속의 활기찬 남자는, 이 병든 방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다.
사진을 내려놓을 곳을 찾았다.
침대 옆 협탁은 약봉지와 연고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주섬주섬 약들을 치우고 자리를 만들었다.
손이 자꾸 멈췄다.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었다. 액자가 탁자에 닿아 먼지가 이는 순간, 이 방의 시간이 ‘간병’에서 ‘추모’로 영원히 바뀌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액자가 탁자에 닿는 그 가벼운 탁 소리가, 마치 관 뚜껑을 닫는 소리처럼 무겁게 들릴 것 같았다. 형이 다가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우리는 함께 액자를 내려놓았다.
그탁 소리가 나고 나서야, 나는 떠올렸다.
내일이면 업체에서 전화가 올 것이다. 침대 회수 일정 잡아야 한다고. 산소 발생기 렌탈 해지해야 한다고. 석션기 반납은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박스는 있는지... 그런 질문들이 아주 상냥한 목소리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지금 저녁 여섯 시에 이 방에서 멈춰 서 있든 말든, 현실은 시간표대로 움직일 테니까.
사진이 자리를 잡자 방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이 방은 더 이상 아버지가 숨 쉬던 방도,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분투하던 방도 아니었다.
아버지를 '기억해야만 하는' 방이 되었다. 일상이 멈추고, 추모가 시작된 것이다. 그 초인종은 여전히 울리지 않았고, 그 침묵은 이전보다 더 깊게 가슴을 눌렀다.
나는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이번엔 전원 표시등 같은 건 없었다.
깜빡이는 것도, 돌아가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텅 빈 느낌이 났다.
문을 닫자마자, 방이 아주 깔끔하게 세상에서 지워진 것 같았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나는 알았다.
이 방에 남아 있는 물건들은 아버지를 대신할 수 없지만, 아버지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일만큼은 멈추지 않고 있다는 걸.
그리고 아버지는 이 방을 떠난 게 아니라, 이 방에 남긴 모든 물건 속으로 흩어져, 침대 시트의 주름 속으로, 초인종의 스프링 속으로, 멈춘 시계바늘 속으로 스며들어 조용히 우리의 기억이 되었다는 걸.
거실로 나오자 어머니가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계셨다.
어머니는 무릎을 감싸 쥔 손을 풀지 못한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도 그랬다. 금방이라도
딩- 동- 하고,
그 빌어먹게 슬프고 반가운 소리가 방문 너머에서 들려올 것만 같았다.
나는 방문 쪽을 쳐다봤다.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아주 조금, 틈이 남아 있었다.
그 틈으로, 희미하게 달콤한 냄새가 스쳤다.
헤이즐넛 커피 같은... 아주 옅은 향. 왜 하필 이 냄새가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 환청과 그 향을 기다리며, 빈 방의 문을 끝내 닫지 못했다.
그날 저녁, 빈 방의 불은 꺼졌지만 문은 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