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막내였지만 가장 같았던 아버지

돈 때문에 멀어진 가족, 피할 수 없던 책임

by Journey
장례식장

장례식장에는 아버지의 형제들이 찾아왔다.

고모들과 그의 자식들, 그리고 먼 친척들.

이제는 다들 허리가 굽고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영정 사진 앞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아이고, 불쌍한 것. 막내가 먼저 가다니..."


그 울음이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눈물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진짜였겠지.

그런데도 나는 상주석에서 그 굽은 등을 보며, 마음 한쪽이 서늘하게 식는 걸 느꼈다.

그들의 슬픔은 진실할지 모르나, 그 집안의 무게를 오래 들고 있던 사람은, 결국 아버지였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빈소 한쪽, 원래라면 큰아버지가 앉았어야 할 자리에는 끝내 사람이 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놀랍지 않았고... 솔직히 말하면,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아니, 우리 가족 모두가 내심 바랐던 일이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나는 괜히 목이 굳었다. 혹시 들어와서 “내가 형인데” 같은 말을 해버리면, 그 자리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나도 자신이 없어서.

밤이 깊어도 그는 오지 않았고, 나는 아쉬움이 아니라... 안도부터 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10년 넘게 인연을 끊고 살았다. 우리에게 그 사람은 친척이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집안이 짜증으로 물들게 했던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3남 4녀 중 막내였다.

보통의 집안이라면 가장 늦게까지 사랑받고, 가장 늦게 어른이 되어도 용서받는 자리였다.

형의 그늘 아래서 비를 피하고, 누나의 보살핌 속에서 요령을 피워도 되는 순서였다.

그런데 아버지한테는 그런 ‘순서’가 한 번도 돌아온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형제들이 힘들다고 하면, 이상하게 늘 아버지 쪽으로 모였다.

아버지 사정이 넉넉한 적은 없었는데도, 아버지는 늘 놓지 않았다. 그냥... 끝까지...


제일 또렷한 건, 할머니를 모시던 때다.

원래 부모 봉양은 장남의 몫이라는 것이 그 시대의 엄격한 불문율이었다.

할머니는 당연히 큰아버지 댁에 계셨어야 했다.

하지만 큰아버지가 변변한 직장생활은 한 번도 하지 않고 자영업으로 자신의 가정을 근근이 버티고 있을 때 자기가 힘들고 조금 어렵다는 이유로 갈 곳 없어진 할머니를 모셔온 건 넉넉하진 않던 조그마한 집에 살던 막내, 아버지였다.

“형님 사정이 저런데 어쩌냐” 그 한마디로.


어머니는 반대하며 울었다.


"우리도 입에 풀칠하기 힘든데 어떻게 모셔요"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라도 모셔야지.”


결국 아버지는 안방을 할머니에게 내어드리고, 우리 식구는 조그마한 방과 거실에서 불편하게 지내야만 했다.

그때 할머니는 연세가 많다고 정신이 흐릿한 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또렷했다.


자기 방식이 분명했고, 그게 한번 자리 잡으면 집안 분위기가 그쪽으로 굴러갔다.

밥상 자리부터 TV 채널, 창문 여닫는 것까지.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말이 규칙인 것처럼 정확해서 더 아팠다.


밤이 문제였다.

할머니는 잠이 오지 않으면 집을 그냥 두지 않았다.

방문이 쾅 닫히고, 다시 쾅 열렸다. 그리고 아버지 이름이 불렸다.


“야, 막내야. 이리 와봐라.”


아버지는 자다가도 일어났다. 물 한 컵, 이불 각도, 베개 위치, 문단속 확인. 사소한 것들이었는데 이상하게 끝이 없었다. 한 번 들어가면 두 번, 두 번이면 세 번. 아버지가 다시 누우려 하면 또 불렀다.


“아까 그 물 말고, 따뜻한 물.”

“문풍지가 뜯어졌나... 외풍이 장난 아니네”

“저기 전등이 너무 밝다.”


할머니의 요구는 늘 ‘지금’ 해결되어야 했다. 내일로 미룰 수 있는 건 없었다.


더 힘든 날은, 할머니가 일부러 큰소리로 이야기할 때였다.
안방 문을 살짝 열어두고, 우리 모두 들으라는 듯이 친척들 흉을 보거나, 어머니를 흘겨보거나,


“내가 이 집에서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그 말이 거실로 흘러나와 TV 소리 위에 얹혔다. 우리는 괜히 숨을 죽였다. 누나가 기침을 한 번 하면 할머니는 그 기침까지 잡아냈다.


“밤에 왜 그렇게 시끄럽냐.”


그 집의 밤은, 할머니 목소리로 정해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대신 들어가려 하면 아버지는 조용히 막았다.


“내가 갈게.”


짧게 말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무슨 말을 듣고 나오는지 우리는 끝까지 다 알 수 없었다.

다만 아버지가 나올 때마다 어깨가 한 번 더 내려앉아 있는 것 같았다.

잠옷 바지 무릎 부분이 괜히 더 접혀 보이고, 발걸음이 더 무거워 보이고.


정작 장남인 큰아버지는 명절에도 코빼기 한번 비치지 않았고, 다른 형제들은 “어머니 성격이 워낙 세잖아” 같은 말로 빠져나갔다. 전화로만 “잘 모셔라” 하고 끊는 게 다였다. 결국 매일 밤 할머니의 요구를 들어주고, 집안의 질서를 맞추고, 소리를 삼키는 건 막내아들이었다.


아버지는 효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거절할 줄 모르는 바보였을까.

어린 내 눈에는 잠이 모자란 사람의 등이 계속 남아 있었다. 안방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갔다가, 조용히 나오는 모습. 아무 말 없이 거실 불을 다시 끄는 손. 그 뒤에 눌어붙은 피로만이 남아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마자 상주 완장은 뒤늦게 나타난 큰아버지가 찼다. 누가 권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 앞에서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말투에는 늘 ‘내가 장남이다’라는 문장이 숨 쉬고 있었다.


큰아버지는 고집과 권위의식이 유난히 강한 사람이었다.

빈소 자리 배치부터 조문객 맞는 순서까지, 자기 말이 기준이 되어야 직성이 풀렸다.


“상석이 왜 이래?”

“이런 건 원래 장남이 하는 거야.”


말이 커질수록, 손은 반대로 멀어졌다.

큰아버지는 장례를 ‘치르는’ 사람이 아니라, 장례를 ‘지휘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문제는... 지휘만 했다는 거였다.


실제로 장례를 굴린 건 아버지였다.

조문객을 맞이하고,

음식 업체를 부르고,

장지를 알아보고,

비용을 정산하는 일까지.


큰아버지가 빈소 안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할 때, 아버지는 조용히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조문객이 불편해할까 봐 먼저 허리를 숙였고, 직원들이 우왕좌왕하면 한 발 먼저 나섰다.


큰아버지가 자기 체면이 걸린 문제를 만들어낼 때마다, 아버지는 뒤에서 수습했다. 큰아버지의 말이 사람들 앞에서 거칠어지면, 아버지는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 괜찮아요. 제가 다 보고 있을게요.”


아버지는 생색내지 않았다.

형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자신이 궂은일을 도맡으면서도, 단 한 번도 “내가 다 했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 침묵이 나는 늘 답답하고 싫었다.

왜 아버지는 억울해하지도 않는 걸까. 왜 형에게 화를 내지도 않는 걸까.

그날 나는 ‘착하다’는 말이, ‘참는다’랑 너무 가까운 말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했다. 조용히 해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큰아버지네 형편이 갑자기 기울었을 때도 그랬고, 고모네가 아프거나 집안에 일이 생겨 살림이 버거워졌을 때도 그랬다. 병원비 얘기나 월세 얘기가 나오면, 혹은 학비가 막혔다는 말이 들리면 아버지는 며칠을 고민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냥, 할 수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아버지는 돈을 주면서도 훈계하거나 폼을 잡지 않았다. 받는 사람이 민망해할까 봐 슬그머니 봉투를 찔러 넣고는 바쁜 척 자리를 피했다.


“애들 밥이나 사 줘요. 나중에 형편 풀리면 갚고, 아니면 말고.”


그 무심한 말투 때문에, 친척들은 아버지의 도움을 너무 쉽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막내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부탁하면 결국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더 자주, 더 편하게 아버지 쪽으로 기대어 왔는지도 모른다.


정작 자기 자식인 우리에게는 늘 “아껴 써라”, “학원비가 얼만데” 하며 잔소리를 하던 사람이었다. 필요한 것까지 망설이게 만들 만큼. 그런데 형편이 어려운 조카들에게는 이상하리만치 관대했다.


대학 등록금이 모자라 휴학 얘기가 나오면, 아버지는 조카를 따로 불러 조용히 돈을 보태주곤 했다. 전부를 해결해 주는 방식이 아니라, 딱 모자란 만큼. “이 정도면 되지?” 하고 덤덤하게 묻는 말투였다. 집에서는 전기세, 가스비를 따지던 사람이 밖에서는 ‘학기는 끊기면 안 된다’는 쪽으로 움직였다. 돈만 준 게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할지도 조용히 만들어줬다.


취업도 비슷했다.
조카가 일자리가 막막하다는 말이 돌면 아버지는 어느 날 수화기를 들었다. 먼저 안부부터 묻고, 뜬소문 같은 얘기를 조금 섞다가, 끝에 가서야 짧게 말했다.


“조카가 하나 있는데, 일 좀 하려고 해서요.”


그 말도 길지 않았다. 부탁이라기보다, 길을 묻는 톤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면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리모컨을 집었다. 우리한테 “내가 어디 소개해줬다”는 말도 굳이 하지 않았다.

대신 며칠 뒤, 아버지는 조카에게 업체 이름 하나를 툭 던졌다.


“내가 아는 데가 하나 있어. 거기 한번 가봐.”


주소를 적어주고, 연락할 사람 이름만 짧게 알려줬다. “가면 김 부장님 찾으라 그래.” 그게 끝이었다. 조카가 고맙다고 하면 아버지는 늘 손을 휘휘 저었다.


“됐다. 괜히 말하지 말고, 가서 잘해.”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을 끝냈다. 칭찬도, 생색도 없이.

그런데... 이상했다. 아버지가 친가 쪽 사람들한테 얼마나 잘했는지가, 오늘따라 더 또렷하게 떠올랐다. 누가 힘들다 하면 먼저 움직였고, 말이 나오기 전에 이미 발이 먼저 가 있던 사람. 그런 아버지였으니...


그런데... 이상하게 큰아버지가 더 자꾸 떠올랐다. 오늘 이 빈소에 없는 사람.

‘그럼 왜 형제 사이는 이렇게 끝이 났을까’라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마음이 잠깐 따뜻해졌다가도, 속 어딘가가 다시 딱딱해졌다.


큰아버지 쪽과 멀어진 건 결국 돈 문제였다.
정확히는, ‘우리 집 돈’과 관련된 어떤 일.

어른들끼리만 아는 이야기였다.

나는 끝내 자세히 듣지 못했고, 그때도 일부러 묻지 못했다.

그 얘기 꺼내면 집이 바로 싸늘해질 것 같았다.


기억나는 건 사건의 내용이 아니라 그 뒤였다.

그 일 이후로 아버지는 더 이상 큰집 이야기를 입 밖에 거의 내지 않았다.

누구를 원망하는 말도, 억울하다는 말도 없었다. 다만 얼굴이 조금 더 굳어 있었고, 대화가 중간에서 자꾸 끊겼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장롱 문을 닫듯, 말을 닫았다. 전화벨이 울리면 잠깐 숨을 멈추는 사람들처럼, 우리 집은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미세하게 굳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아, 이제 끝이구나” 하고 느낀 장면이 있다. 더는 되돌릴 수 없는 쪽으로, 마음이 딱 끊어지던 순간이었다.


친척 결혼식장이었다.

하객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예식장 로비. 웨딩홀 특유의 꽃 향과 에어컨 바람, 신부 대기실 앞에서 반짝이는 구두들. 사회자의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오고,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복도에서 튀었다.

축하해야 하는 장소인데, 이상하게 공기가 딱딱했다.

아버지는 그날도 평소처럼 과하지 않게 옷깃을 여미고, 인사해야 할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들어갔다.

‘그래도 형제인데’라는 마음이었을까. ‘여기서라도 다시 풀어보자’는 마음이었을까.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냥... 아버지는 그런 자리를 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큰아버지가 우리를 보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정확히는, 아버지를 보자마자였다.


“네가 왜 여기에 오냐!”


순간 예식장 로비의 소리가 잠깐 멎는 느낌이 들었다.

축하 화환 앞에서 멈칫하는 사람들의 시선, 종이컵 부딪히는 소리, 누군가 “어머...” 하고 삼키는 숨.
큰아버지는 얼굴이 붉어졌고, 말은 더 커졌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다 기억나진 않는다. 돈 얘기, 체면 얘기, ‘가족끼리’라는 말을 비틀어 던지는 방식...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섞여 있었다.

중요한 건 그런 말들이 아니었다.

결혼식장 한복판에서, 많은 친척들 앞에서 아버지를 ‘오면 안 되는 사람’으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눈빛이 흔들리는 걸 숨기려는 사람처럼 턱을 더 다물었다. 수습하려는 쪽이었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목소리는 더 높아졌고, 결국 그 자리는 화해가 아니라 모욕으로 끝났다. 더 있으면 피해가 될까 봐, 아버지는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만 가만히 보고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더 무거웠다.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은 큰아버지를 더더욱 좋아하지 않게 됐다.

좋아하지 않게 됐다기보다... 마음이 뚝 끊어졌다. 싫다, 원망한다 같은 감정보다 먼저, 그냥 멀어졌다.

빈소에서 사촌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 결혼식장의 목소리를 동시에 떠올렸다.
한 사람은 “삼촌이 와줘서 버텼다”라고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네가 왜 여기에 오냐”라고 소리쳤다.
아빠는 그런 말들을 다 듣고도, 그냥 있었을 거다.

아버지는 끝내 설명하지 않았다.

근데... 이상하게 그건 알 것 같았다. 사람들 앞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아버지는 ‘형제’라는 말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본 것 같았다. 그 뒤로 아버지는 더 말이 없어졌다. 설명하기보다 그냥 삼키는 쪽을 택했다. 아빠는 원래 그렇게 버텼다. 말 대신.


장례식장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혹시나... 그 사람이 왔을까 싶어 고개가 먼저 돌아갔다.
하지만 낯선 조문객들이었다. 아버지를 아는 얼굴들, 혹은 아버지와 같은 세월을 통과한 얼굴들. 나는 이상하게 숨이 풀렸다가, 다시 굳었다. 한 번에 감정이 두 번 바뀌었다.

오지 않는 게 맞다.

여기까지 와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서 있는 모습을 봤다면, 나는 아마 참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부재는 우리 가족에게 마지막 예의였다.

나는 상주석에 앉아 있다가,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옆에 앉은 형에게 낮게 말했다.


“아빠가... 참 바보 같지.”


“바보는 아니었지.”


형이 낮게 말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덧붙였다.


“그냥... 아빠는 늘 그 자리에 있었어.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형이 잠깐 상주석 한쪽을 바라봤다. 말은 안 했지만,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끝내 안 오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런데도 빈소는 비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살아온 시간이 사람들 얼굴과 목소리로 남아 있었다.

영정 사진 속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엷게 웃고 있었다. 꼭 “됐다”는 듯이.
그 표정이 이상하게 밉고... 또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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