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마지막 밤 (임종)

끝내 말하지 못한 한마디

by Journey

그날은 유난히 춥지 않았다.

저번주까지만 해도 영하권의 날씨였다.

2025년 12월 20일. 달력을 보지 않아도 겨울의 한가운데라는 걸 알 수 있는 날짜였지만, 병원 밖의 공기는 12월치고는 이상하게 춥지 않고 눅눅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녹다 말아 질척거리는 도로 위로, 희끄무레한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요양병원 앞 가로수는 바람 한 점 없이 멈춰 있었다. 가로수가 멈춘 게 아니라, 우리 쪽 시간이 먼저 멈춘 것 같았고 마치 세상의 시간이 잠시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음은 보통 계절을 핑계로 온다고들 했다. 갑자기 기온이 꺾여 칼바람이 불거나, 눈발이 성급하게 흩날리거나... 영화나 드라마 속 마지막 장면은 대개 그런 식이었다. 나도 그걸 은근히 믿었다. 그래서 근래 몇 번 영하로 떨어졌을 때는 괜히 더 걱정이 됐다. 아버지 목의 관이 차가운 공기에 더 뻣뻣해지는 것 같고, 기계 소리도 더 거칠어지는 것 같아서, 별일도 아닌데 신경이 곤두서 있곤 했다.

그런데 정작 그날은 달랐다. 겨울치고는 그리 춥지 않았고, 비가 조금 내렸다. 눈으로 변하지 못한 비가 얇게, 성의 없이 떨어졌다. 바람도 매섭지 않아서 우산 아래는 오히려 축축하게 따뜻한 공기만 맴돌았다. 이런 날에 사람이 죽는다는 게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죽음이라면 으레 살을 에는 칼바람이나 쏟아지는 눈발 같은 게 배경으로 깔려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저 흐리고 젖어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아주 추웠다면 옷깃이라도 여미며 마음을 다잡았을 텐데, 이 애매한 날씨는 사람을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병실 안에는 ‘밤’이라는 감각이 없었다.

복도로 나가면 다른 병실들은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다. 커튼이 닫힌 창문처럼 조용했고, 어쩌다 들리는 건 간병인의 기침과 바이탈 모니터의 경고음, 인공호흡기에서 새는 듯 반복되는 소리뿐이었다. 그런데 아버지 병실만 환했다. 마치 밤을 거부하는 방처럼, 아니... 우리만 아직 끝내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천장의 형광등 아래서 침대와 기계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인공호흡기 모니터, 수액 주입기 펌프, 산소포화도 측정기... 온갖 장치가 뿜어내는 초록색과 빨간색 불빛이 벽과 천장에 얇고 이상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불빛은 규칙적으로 깜빡이며 벽지 위에 무늬를 찍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삐- 삐- 하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튀어나왔다. 맥박과 호흡을 알리는 소리였다. 숫자가 조금만 흔들려도 소리는 더 날카롭게 올라갔다가, 다시 잠잠해지곤 했다. 우리는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모니터를 확인하고, 숨을 한 번 늦게 내쉬었다. 그게 몇 번이나 반복됐다.


창밖이 어두워져서 밤인 게 아니라, 의료진의 발길이 뜸해지고 복도의 소음이 줄어들어서야 우리는 비로소 ‘아, 이제 밤이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시간은 벽에 걸린 시계의 시침과 분침으로 흐르지 않았다.


슉- 치이익, 슉- 치이익.

그리고 그 위에, 삐- 삐-


겹겹이 쌓인 기계 소리로만 우리 가족의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직 힘들게 숨은 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숨이 '들락날락'했다. 스스로 들이마시고 내뱉는 능동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목에 뚫린 구멍, 기관 절개관(tracheostomy tube)을 통해 인공호흡기가 억지로 공기를 밀어 넣으면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기계가 압력을 빼면 힘없이 꺼졌다. 들어오는 것 같다가 멈췄고, 멈춘 것 같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 과정은 너무나 기계적이고 규칙적이어서, 보고 있으면 최면이 걸릴 것 같았다. 그걸 '숨'이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끝까지 잘 모르겠다. 그건 생명 활동이라기보다는, 억지로 공기를 주입하고 빼내는 환기 과정에 가까웠다. 숨은 아버지의 것이 아니라, 벽면 콘센트에 연결된 기계가 대신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빠... 제발 편안하게..."


낮고 빠른 속삭임이 기계 소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누나였다.

누나는 침대 난간을 두 손으로 꽉 붙잡고, 고개를 숙인 채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누나는, 아버지가 쓰러진 5년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기도를 나갔다. '기적'을 바랐던 기도는 시간이 지나며 '평안'을 비는 기도로 바뀌어 있었다.

누나의 어깨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기도 소리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종교적인 의식이라기보다는, 눈앞에 닥친 죽음이라는 절벽 앞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누나만의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였다. 평생 신을 믿지 않았던 아버지가 혼자 걷게 될 그 낯선 길이 너무 춥고 어둡지 않기만을, 누나는 울먹이며 대신 빌고 있었다.


반면 형은 아무 말이 없었다. 침대 가장 가까운 곳, 아버지의 머리맡에 선 형은 장승처럼 차렷 자세로 굳어 있었다. 하지만 바지 옆단에 닿은 두 주먹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앙다문 턱 근육이 간헐적으로 꿈틀거렸다. 마치 목구멍까지 차오른 울음을 온몸에 힘을 주어 억지로 삼키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장남이라는 무게 때문이었을까. 형은 아버지가 투병하는 내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병원비를 정산하고,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결정을 하고, 연명 치료 중단 동의서에 사인을 할 때도 형은 늘 건조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형이 쥔 주먹이 얼마나 하얗게 질려 있는지. 형은 지금 울지 않는 게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의 얼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새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깜빡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 덤덤한 눈빛 속에, 말로 다 하지 못한 수천 가지의 회한이 소용돌이치고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어머니는 없었다.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몸살처럼 기운이 꺾여 있었고, 그건 감기라기보다는 5년 간병이 남긴 골병에 가까웠다. 허리와 무릎이 망가져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제대로 걷는 것도 버거운 날이 많았다. “나도 갈래, 나도 가서 지킬래” 하고 우는 어머니를 억지로 눕혀두고 나올 때, 나는 어머니의 발목을 잡는 죄책감이 아니라... 어머니의 무릎을 더 망가뜨릴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에게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전에 이런 순간이 너무 많았다. 수치가 떨어졌다가도 다시 올라오고, 위험하다던 밤을 또 넘기고, 아침이 오면 “괜찮아졌어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고, 우리도 모르게 기대했다. 솔직히 말하면... 기대라기보다 습관 같은 것이었다. 괜찮아질 수 있다는 말이 있어야 그 밤을 버틸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어머니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무너졌다. 잠을 한숨도 못 주무셨다. 눈을 감고도 계속 몸이 깨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어머니의 밤을 조금이라도 남겨두고 싶었다. 대신 우리가 여기서 더 깨어 있기로 했다. 그 선택이 어머니에게 약이었는지, 독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수치가... 좀 떨어지는데."


형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는 조금 갈라져 있었다.

우리는 동시에 침대 한쪽 벽에 붙어 있는 모니터를 쳐다봤다. 산소포화도와 맥박 숫자들은 병원에 들어온 날부터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는 것도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져 있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였다. 수치가 아예 잡히지 않았다가, 잠깐 잡혔다가, 다시 사라졌다. 숫자가 화면에서 깜빡이거나 ‘-’로 바뀌는 순간마다 우리는 숨을 멈췄다. “센서가 떨어졌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이 움직였다. 손끝으로 집게를 다시 끼워 보고, 선을 정리해 보고, 아버지 손가락 위치를 조금 바꿔 보았다. 그러다 숫자가 다시 뜨면,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른 채 일단 안도의 숨부터 내쉬었다.

숫자가 빨간색으로 변할 때마다 우리의 심장도 덜컥 내려앉았다가, 다시 초록색으로 돌아오면 겨우 숨을 내쉬었다. 그걸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수치가 아니라... 수치가 ‘다시 나타나는 것’에 매달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많이 부어 있었다. 눈두덩이도, 입술도, 목도 전부 물에 젖은 솜처럼 부풀어 있었다. 5년 동안 근육이 다 빠져나가 뼈와 가죽만 남았던 몸이, 마지막 순간에는 독한 약물과 신장이 걸러내지 못한 수분 때문에 퉁퉁 부어오른 것이다. 피부는 투명할 정도로 얇아져 있었고, 그 아래로 푸르스름한 혈관들이 지도처럼 얽혀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편안하게 쉬고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미간에는 옅은 주름이 잡혀 있었고, 입매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힘이 풀리지 않은 채, 고통인지 인내인지 모를 표정으로 시간만 야속하게 지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들리기는 할까. 누나의 기도 소리가, 형의 침묵이, 그리고 이곳에 오지 못한 어머니의 마음이 아버지에게 닿고 있을까.


우리는 번갈아가며 아버지의 손과 얼굴을 만졌다. 주사 바늘이 꽂히지 않은 유일한 곳을 찾아, 손등을 덮고 있던 거즈와 붕대를 살짝 피해 손가락을 쥐어 보기도 하고, 퉁퉁 부은 손바닥을 감싸 보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살을 누르면 바로 튀어 오르지 않고 푹 들어간 채 한참을 머물렀다. 형은 여전히 굳은 자세로 아버지의 이마를 아주 잠깐,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우리 집에서 애정은 말로 오가지 않았다. 형과 아버지는 서로를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다. 다만 둘 다 표현에 서툴렀고, 다정한 말 대신 책임과 버팀으로 마음을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형의 그 투박한 손길에는, 이제 다시는 만질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너무 늦게 꺼내 든 그리움이 같이 묻어 있었다.


나도 슬그머니 손을 뻗어 아버지의 이마를 만져 보았다. 차갑지는 않았다. 겨울치고 덜 춥던 그날 공기처럼, 애매한 온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게 이상하게 안심이 되면서도 동시에 불안했다. 온기가 있다는 건 아직 여기 계시다는 뜻 같기도 하고, 이제 곧 사라질 잔열 같기도 해서.

나는 곧바로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숨이 한 번 걸렸다. 손은 얼음마냥 차가웠다. 손가락 마디가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내 손바닥의 열이 닿기도 전에 차가움이 먼저 파고들었다. ‘아직 살아계시다’는 내 마음의 변명은 이 차가움 앞에서 금방 힘을 잃었다.

이마의 온기가 아버지 스스로 남긴 건지, 전기장판의 열기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손은...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더 세게 쥐었다. 차가운 것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 것처럼, 아니면 적어도 이 차가움이 내 쪽으로 오기라도 하길 바라는 사람처럼.


삐- 삐- 모니터 알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새벽 1시가 넘었을 무렵, 간호사가 다시 들어와 맥박을 쟀다. 평소와 달리 표정이 조금 굳어 있었다. 그녀는 차트도 적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조금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우리는 직감했다. 누나의 기도가 멈췄고, 형의 어깨가 움찔했다.


잠시 후, 당직 의사가 들어왔다. 그는 평소보다 조금 더 정돈된 표정으로 침대 옆에 섰다. 익숙한 동작으로 아버지의 목에 청진기를 대고, 손목을 짚고, 마지막으로 펜라이트를 꺼내 눈꺼풀을 들어 동공을 확인했다. 빛에 반응하지 않는 동공을 확인한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손목시계를 보았다. 동작이 너무 간결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운명하셨습니다."


의사는 건조하고 낮은 목소리로 시간을 말했다.


"2025년 12월 20일 새벽 1시 15분. 서울 행복요양병원에서..."


의사가 나가고, 간호사가 인공호흡기의 전원 버튼을 딸각하고 끄는 순간. 슉- 치이익 하던 소리가 뚝 멈췄다. 그제야 병실에 찾아온 완벽한 정적. 5년 동안 우리 가족의 시간을 지배했던 기계 소리가 사라지자, 병실 안의 공기마저 구멍이 뚫린 듯 텅 비어버렸다. 그 압도적인 고요가 비명보다 더 크게 귀를 때렸다.


형과 누나가 먼저 울기 시작했다. 누나는 "아빠, 아빠..." 부르며 침대 난간에 매달려 오열했고, 형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썩였다. 나도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아버지의 차가워지는 손을 잡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해야 할 가장 잔인한 일이 남아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 저장된 이름 '엄마'.

통화 버튼을 누르자, 신호가 한 번 가기도 전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엄마는 안 자고 있었다. 아니, 잘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엄마의 거친 숨소리만 아주 작게 들려왔다.


"엄마..."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에 뜨거운 돌덩이가 걸린 것 같았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한번 불렀다.


"엄마... 아빠... 아빠 갔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짧은 몇 초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전화기 너머에서 툭,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곧이어,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가슴 깊은 곳을 긁어내며 터져 나오는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여보... 아이고..."


엄마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끊겼다.


"혼자 보냈어... 내가 거길 갔어야 했는데... 그 추운 데를 혼자 어떻게 가... 여보, 나 두고 어떻게 가..."


스피커폰의 갈라지는 기계음 섞인 엄마의 통곡 소리가, 아버지의 식어가는 육체 위로 내려앉았다. 차가운 병실에서 유일하게 뜨거운 것은 그 목소리 뿐이었다. 누나도, 형도 그 소리를 들으며 더 크게 울었다. 우리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병실에 아버지는 없지만, 아버지의 반쪽이었던 엄마의 목소리가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 아빠 편안하게 가셨어. 아픈 거 다 끝났어."


내가 엉엉 울며 말했다. 그러자 엄마가 울음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마치 아버지의 귀에 직접 대고 말하듯이.


"여보... 고생했어요. 진짜 고생 많았어요. 우리 애들 걱정 말고... 이제 아프지 마요. 내 꿈에 꼭 와요. 응? 여보..."


그날 밤. 아버지는 끝내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지만,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아버지의 대답처럼 병실을 채웠다.

엄마의 통곡 소리가, 아버지의 식어가는 육체 위로 내려앉았다. 차가운 병실에서 유일하게 뜨거운 것은 그 목소리 뿐이었다. 누나도, 형도 그 소리를 들으며 더 크게 울었다.


그때, 병실 구석에서 아주 옅은 냄새가 스쳤다. 누군가 마시다 만 헤이즐넛 커피 같은 달콤한 향. 금세 소독약 냄새에 덮였지만, 나는 그 향을 한 번 삼켰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 향이 아버지와 관련 있다는 확신도 없는데도. 이상하게... 붙잡고 싶었다.

엄마의 울음이 잠깐 잦아들 때, 엄마가 흐느끼며 중얼거렸다. “봄에... 봄에 같이...” 말이 끝나지 않았다. 엄마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는 차가워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전화기 너머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현실이 들어왔다. 문이 조용히 열리며 간호사가 들어왔다. 그녀는 우리가 울고 있는 걸 잠깐 바라보다가, 익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호자분~ 잠시만요. 서류 몇 장만...”


간호사가 종이 묶음을 침대 옆 테이블에 놓고 나갔다. 카트 바퀴가 복도를 지나가는 소리. 기계는 꺼졌는데도, 병원은 계속 움직였다.

형은 볼펜을 들었다.

첫 장에


"사망 진단서 발급 신청"


이라고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