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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 Apr 07. 2024

줌바 댄스, 자유로움의 시작

일상의 글쓰기 - 글감[춤]


아! 이제는 정말로 줌바 댄스를 배우러 걸음을 떼야 할 때가 온 건가? 불과 사흘 전 친구들 모임에서 올해는 줌바를 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이번 주 글쓰기 글감이 ‘춤’이라니. 사실 말만 그랬지 나도 나를 믿지 못해서 실천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목 디스크로 운동을 못 한 지 1년이 되어 간다. 체력은 떨어지고, 살은 찌고, 기분은 우울했다. 이제 증상이 나아져서 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을 찾고 있는데 동료 복선이가 줌바를 같이 하자고 권유했다. 배구도 못 하게 된 마당에 솔깃했다. 그런데 게으른 뇌는 ‘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해!’ 하고 명령하고, 몸은 소파에 누워 뒹굴뒹굴 충실히 따른다. 입만 ‘오늘만 쉬고 꼭 운동해야지.’라며 허공에 흩어질 공약을 남발하는 것이다. 유약한 자신에게 번번이 실망하면서도 늘 ‘내일부터’를 외쳤는데 글감을 본 순간 온 우주의 기운이 나를 줌바의 세계로 이끄는 듯해 웃음이 나왔다. 교수님께 고맙다고 해야겠다. 한 번이라도 가서 춤을 춰 봐야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복선이에게 전화했다.     


어두운 실내에 번쩍번쩍 조명이 어지럽고, 쉴 새 없이 빠른 음악이 나온다. 몸에 붙는 형광색 댄스복을 입은 여자들이 강사의 동작에 맞춰 활기차게 흔든다. 처음 온 티가 팍팍 나게 츄리닝 바지에 검정 티셔츠를 입고서 맨 뒤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뒤쪽에 나랑 비슷한 차림의 여자들이 몇 더 있다. 남자도 한 명 눈에 띈다. 초보자에게 동작을 설명하고 따로 기초를 가르쳐 준다든가 하는 따위의 배려는 없다. 심지어 강사, 회원과 짧게 인사하는 시간도 건너뛰었다. 알아서 막고 으라는 소리군.    

  

대충 살랑살랑 흉내 내며 전체를 관망하고 관찰했다. 노란색 레깅스에 배꼽이 드러난 짧은 분홍색 탑(짧은 윗옷)을 입은 복선이가 과감하게 웨이브를 넣고 요염하게 골반을 흔드는 게 매력적이다. 일단 팔다리가 길어야 춤 선이 예쁘군. 난 뭘 해도 걸림돌이 많아. 열심히 몸만 움직이는 것보단 기본적인 자세가 중요하네. 배에 힘주고, 어깨를 펴고, 가슴을 내밀고, 고개를 들고, 시선은 당당하고 표정은 자신 있게. 좋아, 해 보자. 이런, 거울을 보니 나 혼자 귀엽게 율동하고 있다. 초등학생이야 뭐야. 섹시하게 하라고! 괜찮아, 아직 다 못 외워서 그래. 동작만 익히면 다 죽었어.      


대학 때 학교 축제나 시위에 앞서 무대 공연을 펼치는 ‘문선대(문화 선봉대)’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태권도나 무도 동작을 더한 비장하고 절제된 몸짓을 처음 보고 너무 멋져서 가입했는데, 1학년 들어가자마자 무대 중심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키가 작은 것도 이유 중 하나이긴 했다.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나면 금방 쓰러질 것처럼 피곤해도 매일매일 생기가 넘쳤다. 공연 전에는 설렜고, 많은 관객 앞에 서면 짜릿했다. 관객의 눈길을 받으며 움직이면 온몸이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아직도 가을밤 축제에서 춤출 때 살갗감았던 시원한 공기와 벅찬 기운이 생생하다. 대여섯 곡을 펼쳐 보이고 내려오면 동아리 회장 선배가 “넌 무대에만 올라가면 연습 때보다 더 펄펄 날더라.”라고 칭찬하곤 했다. 친구나 선후배들이 ‘잘했다, 멋있었다’라며 무대 뒤로 찾아왔다. 아마도 그때가 내 전성기였지 않나 싶다. 그 후로 학교에서 운동회나 학예회 공연 준비하는 데 시범 보이는 것 외에 춤출 기회는 없었다.

    

공연하는 것은 좋아해서 짜인 안무가 있으면 연습해서 출 수 있는데 막춤은 나와 거리가 멀다. 잘 추든, 못 추든 상관하지 않고 흥과 감정을 드러내며 자신 있게 춤추는 사람을 동경한다. 결혼하고 아이 셋 키우고 직장 생활을 하며 사회의 기대와 시선에 응하고자 숨 가쁘게 살아왔다. 아마도 교사라는 직업이 더욱 행동의 반경을 제한하고 감정을 가두고, 모범이 되면서도 튀지 않게 살도록 강요했을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었다. 조르바의 행동이 자유인지 방종인지 헷갈려 동의하지 않는 점도 많지만 잘 살고 있는가,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는 다시 고민해 보고 있다. 아쉬움도 있지만 지나간 것을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고 싶지는 않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있다. 내 맘에 귀기울여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듣고, 그동안 못 해 본 것을 하나씩 시도하려고 한다. 수영과 악기도 배우고  문득, 갑자기, 훌쩍 여행도 떠나고 싶다. 사랑한다고 더 자주 표현하고 아름다움에는 감동할 것이다. 돌처럼 단단한 자의식을 깨뜨리고 자유로움을 만끽할 것이다.


'자유'는 관념이 아닌 행동이다. 줌바 댄스가 내 자유로움의 디딤돌이 되어 줄 것으로 믿는다. 자신을 내려놓고 열정적으로 춤추면서, 조르바의 말처럼 ‘마침내 묶여 있던 그 긴 줄 끝에서 풀려나는 해방감’을 맛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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