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써야 할 이유
일싱의 글쓰기 - 글감[한 해를 보내며]
이 쌤, 황 쌤, 2024년 12월 14일 토요일 밤입니다. 쌤들은 지금 뭘 하고 계시나요? 나처럼 뉴스 볼륨을 키워 놓은 채 글을 쓰실까요? 지난 3일에 무도하게 폭주했던 계엄의 밤을 지나 드디어 대통령을 탄핵하는 헌법재판소의 시간이 왔네요. 수많은 국민이 영하의 추위를 이기며 축제 같은 시위를 했어요. 너무나 평화롭고 품격 있게요. 참 뜨겁고 건강한 국민이지요?
2주나 글을 안 올렸더니 조 선생님이 걱정하더라고요. 사실 ‘약’을 글감으로 한 글은 뒤늦게 완성하긴 했답니다. 독감으로 심하게 앓았는데 수업이 있는 화요일 저녁엔 조금 나아졌거든요. 시어머니께 들었던 말을 그대로 옮기기만 한지라 두 시간도 안 걸렸어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글을 마친 건 처음이어서 뿌듯했지요. 그러고는 티브이를 켰더니 대통령과 국회가 계속해서 나오더라고요. 어이없어 육두문자는 나왔지만 불안하진 않았어요. 미친놈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바람에 답답한 나라 꼴이 빨리 정상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죠. 그런데 직장에 있는 시간 빼곤 하루 종일 뉴스에 빠져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 거예요. 저는 우울하거나 기분 나쁘면 의욕이 싹 사라지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 이유로 결국 ‘소문’을 소재로 한 글은 시작도 못하고 말았다고 핑계를 대고 싶군요. 헤헷. 오늘 밤은 기분이 조금 풀립니다. 국민이 이뤄낸 탄핵의 밤이라 그럴까요?
평생교육 글쓰기 반 첫 수업에 참여한 지도 1년 4개월이 흘렀네요. 글쓰기 강의를 들을 목적으로 신청했죠. 직접 써야 하리라곤 꿈에도 몰랐어요. 그것도 1주일에 한 편이라니요. 교수님이 원래 첫 시간엔 새로 들어온 사람을 소개하지 않는데, 저는 그만두지 않을 것 같다며 그냥 인사하라고 하셨어요. 아마도 수업 전 카톡에 낸 문장 고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답을 달아서였을 거예요. 기억나나요? 무지하게 난감했답니다. 실은 그냥 관둘까 갈등하는 중이었거든요. 그때 포기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지요? 쌤들이 모르는 사람으로 남지 않아 기뻐요. 세 학기째 교수님께 지도 받으며 우리 글을 바로 알게 되고, 잘못 사용하던 습관을 많이 고치게 되었어요. 물론 아직도 더 배워야 하지만요. 그런데 자꾸 학교 선생님들이 작성한 문서에서 틀린 문장이 눈에 띄어 큰일이에요. 그거 다 바로잡다간 제 목 디스크가 더 심해질까 봐 눈을 딱 감고 만답니다. 하하.
아직도 교수님이 글감을 내놓으면 도대체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당황스러워요. 질질 끌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한 줄이라도 쥐어짜죠. 이번엔 진짜 못 쓸 것 같다 싶어도, 신기하게 문장이 문장을 불러 글이 채워지지요. 엉망진창인 초고를 고치고 또 고치면 조금씩 다듬어지면서 점점 읽을 만해져요. 그러면서 깨닫죠. 글이 글다워지는 건 퇴고의 힘이구나. 이렇게 문장으로 다시 태어나는 내 하루는 예전보다 더 소중해졌어요. 일상을 곱씹고 생각을 모으면서부터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으니까요. 그건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어제가 브런치 작가가 된 지 1년 되는 날이었더라고요. 황 쌤도 그쯤 됐죠? 그동안의 글을 쭉 읽어 봤어요. 얼굴이 화끈거리게 유치한가 하면, 어떤 건 과연 내가 쓴 게 맞나 싶게 괜찮기도 하더라고요. 추억이 아스라이 담기고, 소소한 삶이 반짝이고 있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써야 할 이유를 발견했지요. ‘일상의 글쓰기’ 강좌를 선택한 순간이 새삼 고마워집니다.
무엇보다 특별한 건 이 쌤과 황 쌤을 만났다는 거예요. 쌤들 덕에 지난 1년은 풍성했어요. 처음에 친해진 계기는 황 쌤과 함께 했던 잊지 못할 서울 여행이었지요. 어떻게 둘이 떠날 생각을 했을까요? 셋이서 광양, 목포, 보성에서 만나 누렸던 시간도 가끔 꿈처럼 느껴져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아마 글을 읽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어 그렇게 빨리 가까워졌나 봐요.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고요. 받아주는 누군가에게 깊숙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아, 그나저나 쌤들 글 너무 좋아요. 담백하고 깨끗하게 감성을 깨우는가 하면, 엉뚱하고 솔직해서 무릎을 치게 하죠.
우원식 국회의장이 연말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며 취소했던 송년회도 다시 하라고 했잖아요. 경제를 살리자는 뜻이지만, 그만 우울해하고 일상을 즐기라는 말로도 들려요. 그분 참, 목소리만 멋진 게 아니라 정말 믿음직하네요. 그 말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노트북을 열었답니다. 두 분처럼 독특하거나 맑게 표현하지 못하고 수다 떠는 듯 늘어놓지만, 이번에도 끝맺었다는 것으로 만족할래요. 우원식 의장은 ‘희망은 힘이 세다’고 마무리했어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제 글도 계속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어 봅니다. 혹시 아나요? 책이라도 한 권 내게 될지. 그리고 우리도, 함께 글을 나누며 오래오래 우정을 이어 가길 희망합니다.
어머나, 벌써 잘 시간이네요. 일단 오늘은 뉴스 그만 보시고 편안하게 주무세요. 다 잘될 거예요. 내일은 제주도 여행 계획이나 세울까요? 벌써 두근거려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