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4, 3, 2, 1!
2025년이 시작되자마자, 아이들이 환호하며 새해 첫날 듣고 싶은 음악 버튼을 누른다. 요즘 젊은 세대는 이런 걸 하는군. 막내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스>> ost인 <시작>, 둘째는 엔위씨의 <티얼스 아 폴링(tears are falling)>을 듣는다. 막내가 선택한 곡은 이해되나, 둘째 건 제목만 봐서는 너무 우울 모드인데? 이유를 물었더니 ‘너와 함께라면 어떤 날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라는 가사가 좋아서란다. 나도 한번 골라 볼까? 시작, 새로움, 도전, 이런 단어들도 잠시 스치긴 했지만, 그 순간 듣고 싶은 곡은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였다. 참 쌩뚱맞죠? 땡기면 들어야지 뭐. 뭣이 중헌디.
창가에 서면 눈물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 손/ 돌아서 눈 감으면 강물이어라/ 한 줄기 바람 되어 거리에 서면/ 그대는 가로등 되어 내 곁에 머무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차라리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크! 가사 한번 애절하다. 가슴을 후벼내는 창법이라 감정이입이 돼서 도대체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고 했는지 찾아내어 따지고 싶을 지경이다. 트로트는 좋아하지 않는데, 갑자기 80년대 고모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그리워졌고, 그중 조용필의 노래 몇에 꽂혔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이 곡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했다. 조용필 씨가 3선 국회의원의 딸과 연애했는데, 여자 집에서 딴따라라고 반대가 심해 결국 이별했다. 어느 날, 그는 교사였던 그녀가 있는 공주에 내려갔지만 차마 만나지는 못하고 술만 진탕 마셨다. 그 밤, 2층 숙소의 유리창 너머로 가로등 아래에서 부슬부슬 비를 맞고 있는 한 여인을 보고는 영감이 떠올라 단숨에 이 곡을 완성했다고 한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런 가사가 나올까? 차라리 나를 잠들게 하라니. 그들은 어느 절에서 지인과 기자 몇 사람만 불러 물 한 그릇 떠 놓고 전격적으로 결혼했다.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절절했어도 그 아름다움은 사라져 버리고, 4년 만에 이혼했다. 노래와 가수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다.
2024년은 일주일에 한 번 짧을 글을 쓰며 새로운 경험도 많이 했지만, 폭삭 맛이 간 해이기도 했다. 혼자 거울 보며 상심해하기만 했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날 보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 확인사살이자 빼박 증거다. 목디스크가 도지기를 반복한 데다 갱년기 증상까지 떠나지 않으며 미세한 우울이 나를 지배했다. 직장에선 종일 앉아 있고, 집에선 대부분 누워 있었더니 근육이 빠지고 체력이 바닥나서 그런 것 같다. 남편은 그게 아니고 그냥 늙어서란다. 우쒸.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세상엔 맘에 안 드는 사람투성이고 말투엔 종종 짜증이 뱄다. 특히 가족에게. 우리집의 금쪽이는 막내가 아니고 난가?
이리 까칠하고 생기 없으면 안 된다. 마음에 힘이 필요해. 그 힘은 사랑을 베푸는 마음이다. 갑분 사랑? 어쨌든, 사랑의 근육을 키우려면, 먼저 몸에 활력부터 불어넣어야 한다. 식상하지만, 모두가 다짐하고 계획하듯 새해엔 달라지기로 했다. 우선 움직이자. 우울과 게으름이 떨어져 나가게. 새해 첫날은 휴일이라 남편과 유달산 둘레길을 걷고 중깐을 먹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카페에 갔다. 이불속에 처박혀 있는 것보다 훨씬 상쾌했다. 둘째 날 저녁엔 계속 누워 있으라는 엄청난 유혹을 딛고 일어나 실내 운동을 아주 조금 했다. 그래도 점은 찍었으니까 그만하면 됐다. 셋째 날엔 퇴근하고 내가 좋아하는 이전 직원들과 만나 걷고, 먹고, 마셨다. 땅을 파고 들어갈 것 같던 피곤도 싹 달아나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그들은 늘 웃음과 힐링을 선사한다. 넷째 날인 오늘, 땀 흘리며 옷장을 탈탈 털어 정리했다. 오후엔 남편과 영화 ‘하얼빈’을 보고, 예전 살던 동네에 가 칼국수도 먹었다. 이제 밤이다. 그냥 자기 아깝다. 오늘 운동을 못 해서 우스꽝스럽지만 팔을 올렸다 내렸다 으쌰으쌰 체조를 5분 하고, 조용필을 들으며 말이 되든 안 되든 끄적거려 본다. 좋아! 헤아려 보니 지금까진 계획대로 잘 되고 있어. 작심삼일은 아니야!
내일도 모레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사랑은 아름답다’고 외칠 것이다. 그것이 올해 내 목표다. 아예 써 붙일까? 남편이 제일 좋아하겠다. 히힛. 그렇다 쳐도, 창밖의 여자랑 새해랑 사랑이 어울리냐?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아, 오늘 글발 안 서네. 그래도 쓴 지 너무 오래 지났으니 그냥 이걸로 올리자. 대부분 안 읽거나 대충 읽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