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는 페루의 수도이다

꽃이 피는 곳. 미라플로레스

by B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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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안 룰렛.


호텔문을 나서는 순간 머리통에 금속의 느낌이 전해진다. 총알이 한 개 장전된 리벌버 권총을 머리에 대고 있는 쭈삣함이다. 이건 미친짓이다.


사실 가족들이 나의 남미여행을 말린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치안이었다. 거긴 혼자 가기엔, 그것도 노인이 가기엔 너무 위험한 곳이라는 걱정이었다.


떠나기 전에는 낭만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공포이다. 지구 반 바퀴를 날아서 드디어 남미에 왔는데. 막상 호텔문을 열고 남미로 나서려니 뒷골에 섬짓한 느낌이 든다.


시내에서 백주에 총질 해 대고, 한국인 사업가가 납치되는 이 도시에 나는 지금 혼자 있다.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다. 최소한의 대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나는 지금 분명 나의 안전을 운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에서는 괜찮았다. 멕시코에서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이제 내가 여유가 생긴 것이다. 몇 밤을 자면서 흥분도 감소하고 시차도 적응하면서 이제 내 안전을 걱정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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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꽃을 보다.


공항에서 택시를 탔다. 안개이다. 아침안개 속을 달렸다.

오른쪽 차창으로 바다가 보인다. 택시는 해안을 돌아서 절벽 같은 언덕을 오른다.

파도가 세다. 서퍼들이 안개 낀 아침 바다에서 파도를 탄다. 택시 기사는 여기가 세상에 몇 개 안되는 서퍼들의 명소라고 자랑한다.


호텔은 미라플로레스에 있었다.

미라폴레스Miraflores는 스페인어로 mirar(보다)와 flores (꽃)의 합성어라고 한다. '꽃을 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호텔을 나섰다. 거리에서 꽃을 사는 소녀를 보았다. 소녀는 깔끔하게 차려 입었다. 누구를 위하여 아침에 꽃가게 앞에 서 있는가.

거리는 온통 꽃들이다. 집집마다 담벼락과 대문에 꽃이 있고,

거리에선 꽃을 파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꽃을 본다는 이름의 마을, 미라폴레스Miraflores에서 나도 꽃을 보았다. 꽃은 아름다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님의 꽃 가운데 일부.

미라폴로레스에서, 리마는 나에게 다가와 꽃이 되어주었다.

내가 치안의 공포에서 벗어난 것은 순전히 리마 미라폴로레스, 꽃을 바라본다는 이름의 그 거리에 지천으로 깔린 꽃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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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도시. 리마.


사람들은 아침 일찍 관공서 앞에 긴 줄을 선다.

아마도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줄인 것 같았다.

길거리와 광장과 골목과 상점과 공공장소에 고양이와 개가 정말 많다. 공무원들이 일과 시간에 고양이에게 밥을 준다.



일본에 애끼밴또나 편의점 도시락이 있다면, 리마에도 마트 도시락이 있다. 정말 다양하다. 리마를 떠날 때 가장 큰 아쉬움이 이 도시락이었다.

리마의 음식은 다 맛있다. 맛 집을 찾을 필요가 없다. 샌드위치 하나 그냥 만드는 게 없다. 먹거리에 진심이다. 정말 정성껏 만든다. 커피를 주문하면, 그냥 평범한 커피숍인데, 커피가루의 무게를 달아서 커피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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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는 페루의 수도이다.


리마는 스페인이 만든 도시이다. 쿠스코가 마야인들이 만든 도시인데 반해서 이곳이 정복자의 도시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래서 쿠스코는 좋아야 하고, 리마는 나빠야 한다. 나에겐 그랬다.


여긴 페루의 수도이다. 그냥 그렇다.

리마는 관광하는 사람에겐 그리 볼 것이 없는 도시일지 모른다.

하지만 여행자의 입장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람. 음식. 역사. 문화 그리고 꽃,

꽃이 아름답듯이. 아름다운 도시이다. 리마는 참 아름다운 도시이다.







07 Feb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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