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고산병에 걸리다.

해발 3,000미터와 3,400미터는 다르다.

by B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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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병에 걸리다.


비행기가 평화롭게 쿠스코 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돌아서서 다시 비행기로 들어가고 싶다. 느낌이 온다. 이건 아니다.

우선 숨 쉬기가 귀찮아진다. 머리가 멍하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고산병이다.


나는 어느 정도 고산병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파미르에서, 힌두쿠시에서. 천산산맥이나 히말라야에서 나는 3,000미터 언저리까지 올라갔었다. 심지어 남미 에콰도르의 키토나 리오밤바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3,000미터와 3,400미터는 다르다. 여기서 나는 고산병에 걸렸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런 대책도 아니 세운 건 아니다.

멕시코시티에서 고산증 약을 샀다.

그리고 리마에서 쿠스코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약을 한 알 먹었다. 그런데도 고산증세가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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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증은 병이 아니다.


‘고산증으로 죽을 수도 있나요?’

‘감기에 걸려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사들이 자꾸 철학적이 돼 가는 것 같다. 이건 선문답이다. 환자와 의사의 대화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나는 출국하기 전에 고산증 약을 처방받으러 동네 가정의학과를 찾았다.

의사는 처방을 할 수 없단다. 그 이유는 자신의 컴퓨터전산에 고산증 약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약국에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고산병은 병이 아니라고 한다.

높은 산의 환경에 신체가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끝내는 적응해 낼 것이라는 덕담도 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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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을 먹다.


난 여행 중에 한국식당을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럴 때를 대비해서 미역을 가지고 다닌다.

국거리용으로 포장된 미역을 한 봉지 뜯어서 뜨거운 물에 넣는다. 미역이 퍼지면 후루룩 먹는다.

미역국을, 그냥 물에 불린 미역국을 밥도 없이 한 그릇 먹고 났을 뿐인데, 먹고 나면 집에 온 것 같다. 익숙한 식탁에서 먹는 아침 식사 같다. 아랫배가 빵빵한 게 힘이 솟는다. 이제 옷을 입고 다녀오겠다고 현관문을 나서면 된다. 서울에서처럼 그냥 일상이다.


미역국을 먹고 한나절을 침대에서 보냈다.

약을 먹을까 생각했지만 먹지 않기로 했다.

버텨보자. 고산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번 견뎌보자. 죽을 운명이라면 여기서 죽자.


나의 몸이 척박한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함께 느끼고 싶다.

내 몸이 힘들어하는데, 약을 먹고 나만 그 고통을 모른 척한다면 그것은 나에 대한 나의 예의가 아니다. 내가 힘들면 나도 힘들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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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얻은 고산병인데...


부럽다.

고산병 때문에 힘들다는 나의 메시지에 한 친구가 보낸 메시지이다. 부럽다.

고산병에 걸린 내가 부럽다는 것이다.


백두산이나 한라산에서는 걸릴 수 없는 병이다.

지구 반 바퀴를 날아서 남미에, 그것도 안데스에, 잉카의 수도 쿠스코정도는 와야 걸릴 수 있는 병이다.

남미여행이 아름다운 것은 고산증 때문이다.


남미는 아름답다. 고산증마저도 그렇다. 만일 남미여행에 고산증이 빠진다면...

약을 먹지 않고, 온몸으로 버티며, 나와 함께 나는 고산에 적응해 나가기로 한다.

마음속엔 그런 자부심이 있다. 어떻게 걸린 고산병인데..





07 Feb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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