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팍추의 바닥을 쓸면 별이 보인다.
비가 오다.
마추픽추는 혼자 입장하지 못한다.
영어와 스페인어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 언어의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이른 아침 버스 정거장에 줄을 선다.
마추픽추 입장 티켓을 보여주고 버스표를 사야 한다. 버스표에는 나의 입장시간에 적합한 버스 출발시간이 적혀있다.
비가 온다.
버스를 타기 전에 우비를 꺼내 입었다.
우비를 입으면 내리는 비야 막을 수 있지만. 마추픽추를 보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걱정까지 막을 수는 없다.
나그네의 마음은 작은 비에도 금방 젖는다.
여기에 하루를 더 머물러야 할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다음 일정은 또 어찌해야 하는가. 애가 탄다.
비가 멈추다
버스는 산길을 달린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꼭 백담사 가는 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비가 왔다. 백담사 가는 길에. 버스는 비를 맞으며 굽이굽이 산길을 달렸다.
그리고, 버스가 백담사에 도착하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았다. 그땐 가을이었고, 백담사 그 은행나무의 노란색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가 노란색을 좋아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비가 또 멈췄다. 기적이다.
백담사 때도 그러더니 오늘도 그렇다.
버스가 마추픽추 입구애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비는 계속 내렸다.
그런데 마추픽추입구를 통과할 때 즈음인 것 같다. 비가 멈추었다.
정말 신비로운 일이다.
그리고
마추픽추가 보이는 언덕에 서자
무대를 가렸던 막이 열리는 것처럼 구름은 우에서 좌로 움직였다.
구름이 비켜준 자리에는 마추픽추가 있었다.
극적이었다. 구성이 탄탄한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아 나에게 인생은 왜 이렇게 늘 드라마틱한 것인지.
마추픽추에서.
신비로움이나 경이로움은 구체적이지 않을 때 더 신비롭고 경이롭다.
그런데 마추픽추는 아니다. 실존이면서도 구체적이다. 생생하다. 가시적이다. 만져진다. 느껴진다.
그런데 그것은 상징이고, 관념이다.
신화이고 역사이다.
쓸면 또 나온다. 이제 끝났겠지 하고 돌아서면
고개를 드는 의문과 감탄과 환희에 발길을 돌려 그 자리에 돌아가 다시 서계 만든다.
누구였을까.
정말 외계인이었을까. 아니면 현실에 적응할 수 없는 밀교의 신도들이었을까.
그들은 세속을 떠나 왜 이 높은 곳에 마을을 지었을까.
산사 같다.
오는 이 가는 이 없는 깊은 산속의 외딴 사찰 같다.
여기는 아마 대기소였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여기에 모여 별을 기다리다가 큰 새의 등에 앉아 하늘로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나도 여기서 기다리면
어느 좋은 날에, 하늘나라로 날아 갈 수 있을까.
절 마당을 쓴다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산에 걸린 달도
빗자루 끝에 쓸려 나간다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백담사' 중 일부 / 이성선 님
다시 비가 오다
더 높은 곳으로 갈까 망설였다.
됐다. 노인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욕심을 내면 안 된다.
늙은 나그네는 서둘러 산을 내려온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마음속에 저장된 마추픽추를 다듬는다. 다듬은 마추픽추를 나의 기억의 공간에 저장한다.
저장하기 전엔 마추픽추의 마당을 정성껏 비로 쓸어 준다. 시인의 말이 맞다. 정말 그렇다.
빗자루에 걸려 산들이 쓸려 나간다. 그 자리에 별이 돋는다. 별은 푸른색이다.
버스가 기차역에 도착하니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번엔 아침 비와 다르다. 억수로 내린다.
09 Feb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