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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골레타와 리골레토 사이에서. . .

공동묘지인데 무덤이 없다. 집들이 많다. 그 집 안에 시신들이 있다.

by B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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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세권 아파트.

인디오들이 많이 사는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에서도 그랬다.

공동묘지는 마을과 가까이 있었다. 심지어 창문을 열면 공동묘지가 보이는 마을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정신과 의학자 알츠하이머 또는 작곡가 호프만 등이 잠들어 있는 프랑크 푸르트 공동묘지도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일본도 그렇다. 동경이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도 시내곳곳에 공동묘지가 있다.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있는 곳도 있다.

묘세권. 공동묘지 주변 아파트를 선호하기도 한다고 한다. 창문으로 묘지만 보이지 않는다면 공동묘지 주변 아파트는 조용하고, 공원같이 조경이 잘 되어 있어서 오히려 선호하기도 한다고 한다.


리골레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공동묘지이다. 시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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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묻지 않은 매장.

묘지에 대한 인식 또는 장묘문화는 그 집단에 공유되는 민간신앙과 관련이 있다.

세계적으로는 정말 다양한 장례절차를 포함한 장묘문화가 있고, 그것은 그사회의 내세관이나 종교관과 깊은 관련이 있다.


대체적으로 기독교 문화는 시신을 땅에 묻는다.

굳이 종교적이 아니어도 시신을 땅에 매장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득이 있다.

첫째가 위생보건이다. 시신은 부패한다. 부패한 시신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가축들을 살처분한 후에는 반드시 땅을 파고 매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는 죽은 사람의 시신이 야생동물들의 먹이가 될 수도 있다. 먹이에 맛 들이면 야생동물들의 출현이 잦아지게 된다. 묻으면 좋다.


남미이고, 스페인 문화권이다. 그리고 리골레타는 공동묘지이다.

나는 리골레타에 가는 길에

다른 남미의 여러 나라들처럼 무덤과 비석이 있는 공동묘지를 상상했다.


그런데 무덤이 없다.

매장을 하지 않았다.

시신들이 지상에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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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처 도시 같은 공동묘지

리골레타에 가는 날은 비가 왔다.

비 오는 공동묘지. 조금 그런 괴기스러운 분위기였다.


여긴 공동묘지가 아니다.

도시이다.

축소된 도시이다. 신선하다.


도시는 간선도로가 있고. 골목이 있다. 광장도 있다.

도시를 꽉 채운 것은 화려한 건축물들이다. 근대와 현대 아르헨티나 건축의 총아이다

작은 크기로 축소된 구조물 수천 개가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다.

그 건축물 하나하나가 역사이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 작품이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관이 보인다

시신은 그 건축물 안에 있다.

정말 특이하고도 기이한 경험이다.

고색창연한 대문에 노크를 하면 잊힌 영웅들이 관을 열고 문 밖으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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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한 가운데 리골레토의 동상이 있다.

그 동상은 이탈리아 오페라 리골레토의 주인공인 궁정 광대 '리골레토'를 형상화한 조각상이라고 한다.


나는 리골레타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선율을 들었다.

그리고, 가슴에 훈장이 주렁거리는 오래된 군복을 입은 남자들과 어깨가 깊이 파인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과 함께,

그 광대가 내려다 보고 있는

그 공동묘지 광장을 거닐며 많은 대화를 하였다.


비는 그쳤다.

인생이란 결국 그런 것인가. 영웅 호걸들의 파란 만장한 일생과 그들이 만든 역사란 것이. . .








26 Feb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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