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말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말이. 느리고. 눈 맞춤도. 안되었다.
병원부터 예약하기 바빴고 눈물로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지 말로는 안타깝게 말하면서
정작 주변의 행동은 그렇지 못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병원에 입원한 아이를 병실에서
엄마가 돌봐주고 있으면 아파서 못 오고 병원에서 고생한다가 되는데 , 집에서 보는 아이는 시댁제사에도 어김없이 가야 하고 평소에 시댁에 못했으니 죄인 취급 느끼며 애가 시댁에서 소리 지를까 봐 발작할까 봐 두려워 음식을 하면서도 시댁 식구나 친정 식구들어게 죄송하고 미안하다 말한다.
'돌아기신 분의 제사는 존엄하고 격식 있어야 하는데'
돌아기신분 영정 앞에 강박증상이 올라와 문을 계속
닫거나 형광등을 껐다 켰다. 하는. 아이의 엄마는
시댁에서도 죄인이 되는 게 실제 일어나는 일이다.
일부 사람들만. 그런 거라 포장해서 얘기하고. 싶지만. 애가 얼마나 아프고 어떤 이유에서 그런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이런 애가. 태어났냐는 말을 대놓고 하는 피하고 싶은 말을 듣는 부모님들이 내 주변에 정말 많았고 내 아이도 그중 한 명이다.
어찌해서 장애는 고쳐야 되는 불치병으로 인식 됐을까?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할머니가 아이를 보며 " 아이고 얼굴은 잘 생겨가지고 애가 말을 못 하네 " 쯧쯧쯧
위아래로 쳐다보며 혀를 찬다.
그 시절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픈 졸린 듯 주변 눈치를 보던 나는 멍청이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아이만 보고 아이를 위해
살았던 시작이 그 쯤이기도 하다.
아이의 학교와. 치료를 위해 옮겨다닌
네 번의 이사는 아이를 위한 결정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들어게서의 도망이기도 했다.
시댁의 마찰과 공감력이 낮은 친정 사이에서 나무에
가지를 불어 뜨리듯 감정을 정리하며 조금 먼 곳 나도 몰랐던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버스는 한 시간에 한대가. 다니고 주변에. 마트는 없고
조용했다.
아침에는 뻐꾸기가 울고 저녁에는 지나가는 사람
한 명 없는 이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집이다.
집에서 사업을 시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