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일기가 핸드폰 메모로 바뀌던 날

나를 위한 작은 변화

by 돈 벌려고 창업

내 주변의 엄마들은 아이를 낳고 조리원 동기라던지

유치원 무슨 반 엄마들 모임이라던지 자연스레 어울렸지만 난 그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했다.

우리 아이는 태어날 때 산부인과에서 검사한 청각

검사에서 문제가 있다며 돌 지나서 검사가 가능하다고 큰 대학병원을 예약하라고 했다.

첫돌이 될 때까지 울다 지쳐 자는 날이 많았고 오죽했으면 스트레스로 모유도 나오지 않았다.

대망의 첫돌! 큰 대학병원 가서 수면제를 처방받고

뇌파검사를 했고 결과는 정상이었다.

아.. 진짜 정상인 것에 감사해야 했다.

말을 함부로 했다며 그분들에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18개월이 되어도 걷는 게 너무 느린 게

아닌가? 비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왜? 이리도

늦냐며 병원 가보라고 네가 애를 막 굴려 키우지 않아서 그랬다며 내 탓인 듯 몰아갔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지속적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나는 방어 능력을 상실했고 순종적인 남편은 주위말에 특히 어른들 말에 늘 들어주는 식이었다.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수개월의 병원 대기를 해서

큰 병원의 유명한 교수에게 진료를 받았다.

전 세계 아동에 아주 적은 수에 아동이. 겪고 있는

인체보다 머리나 발이 큰 희귀 질환 "소토스'가 의심된다고 했다. mri찍자고 했고 나는 아이가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이 너무나 큰 벽처럼 느껴져서 정말 대신 목숨이라도 내놓으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내놓고 아이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집안의 공기는 서늘하게 변해갔고 그렇게 기다림의

모래시계가 다 떨어진 그 어느 날은 그 유명한 교수를 만나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결과를 보던 교수)

"어? 소토스가 아니었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교수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검사도 하기 전에 말한 병명 때문에 나와 우리

가족은 결과를 기다리는 그 몇 달간 유명한 당신을 보고 결과를 듣기 위해 꼭 대기해야 했던 몇 달 간이 너무

지옥이었고 그동안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고! "

내 말이 끝나자 "죄송하다고" 답변이 돌아왔다.

태어나서 두 번의 진료 오류.. 초보 엄마는 아프기 시작했다.


'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었다. 노트에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가며 써내려 갔을 때가.. 그 일기장에는 정말 너무 예쁜 단어들은. 다 도망가고 삐지고 나쁜 단어들이 빼곡했다.

맘 졸이며 살던 살얼음판을 건너가듯 살았던 그때

아이는 걸음도 눈 맞춤도 말도 모두 느렸다.

그렇게 병원에 치었는데 또 가야 하나.. 스스로 혼란

스러웠고 나는 단판을 짓는 생각으로 앞서 만났던

소토스라 말했던 교수를 만나 얘기했다.

"아이가 정말 느린 것 같은데 어쩌면 좋으냐"내가

여기에 다시 온 이유는 지난번 일도 있으니 당신이라면

솔직하게 알려줄 것 같다고 생각돼서 왔다고 얘기했더니 메모지에 추천하는 사설 교육 기관을 적어줬다.

여기가 그래도 유명하니 잘 다녀보고 앞으로 해야 할 것 중 가장 중요한 건 엄마가 강하게 마음을 갖는 건데

그건 엄마 말을 들어보니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쭉 발달 치료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 무렵 아이는 5살이 되었고 또 한 번의 이사와

별보고 집을 나가서 다시 별을 보고 들어왔던

365일을 반복하게 된다.

난 뚜벅이었고 내 어깨는 책가방이 있었고 머리에는

모자가 있었고 다리에는 운동화가 있었으며 내 손은

아이를 위한 끈이 되었다.

그 의사가 봤던 모습처럼 겉으로 강해 보였던 나는

속으로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던 , 아픈데 아프다고 말을 할 수 없던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내. 생각들이 나름대로 마음속에서. 도망가고 다시. 붙잡히고 다시 이어지던 어느 날 스치듯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말하는 소리를 메모하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노트를 펼치기도 전에 아이디어가 너무 빨리 아이디어가. 도망가는 거다. 도망가기 전에 붙잡고 싶었다.

그때부터 아이와 야외나 치료실에서도 메모 가능한

핸드폰 메모장에 뭐든 생각나면 그림과 글로 아이디어를 남기기 시작했고 그 메모하는 순간만큼은 나를 위한 작은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14년이 지난 지금도 핸드폰 메모장에 메모하는습관은 유지되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디어는 차곡차곡 쌓이고 모여 계속 구최화가 되었고 핸드폰 메모장에서 세상에 나올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핸드폰에서 아이디어가 세상으로. 탈출하는

날이 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람이 스며들지 못하는 마음에 창업이 들어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