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은 불안.

by 휘진

결국은 내 도피처로 돌아오고 말았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많았다. 아니, 그저 하소연을 할 곳이 필요했다.

사실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온갖 투정을 모두 부리고 싶은 것이다. 삼재가 작년이라더니 다 헛소리다. 내게 있어 더 힘든 해는 올해다. 별일들을 다 겪고 있다. 작년만큼은 덥지 않은 지금의 이 여름이 가장 큰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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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더 늘었다. 작년보다 늘었다. 예정에도 없던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어내야 했고, 작년보다 업무량은 늘었다. 모두가 내 업무는 루틴화 되어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 운영을 하지 않으면 될 문제이다. 사실, 나처럼 일할 필요가 꼭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건 루틴으로 운영해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내 방식이 그렇다고 아주 참신하고, 루틴을 깨놓은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난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가장 싫다. 가장. 작년과 다른 것이 있어야 하고, 그동안 하지 않은 것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잘 만들어 놓은 것이 완전히 정착되는 것까지가 나만의 루틴을 새로 만드는 작업의 끝이다. 그런 면에서 작년보다 늘어난 업무는 어쩌면 내 개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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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팀은 불통의 팀이다. 사실, 내가 이 안에서 내 업무와 엮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무언가의 특화, 전담, 전문 인력으로서 있다. 그 때문일까, 아니면 성별이 달라서일까, 아니면 성격이 맞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걸까, 이 팀은 서로를 공유하지 않는다. 비즈니스보다도 더 비즈니스 같은 이 불통의 팀에서 발버둥 쳤다. 저마다의 시도는 있었겠지만, 누구보다 발버둥 쳤을 것이라 자신한다. 팀장과의 많은 대화, 유대, 팀 내에서 중도의 위치, 타 팀과의 협력과 연계, 쌓아가는 친밀감.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팀을 '우리'라고 표현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을까. 팀장님은 나간다. 이제 그와 같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이다. 아니, 주말은 쉴 테니 5일이다. 그 와중에서도 서로의 휴가가 있기에 채 5일도 되지 못할 것이다. 원망했다. 많이도 원망하고 탓했다. 이 팀이 이렇게 된 건 그의 탓이 있을 것이라며 있는 힘껏 서운해했다. 애정이 있기에 증오하지 않고, 섭섭한 마음이 크게 들었다. 그렇지만 나가길 바란 건 아니었다. 물론 그런 것 때문에 퇴사를 결정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퇴사는 결정되었고 나는 남을 사람이고, 우리라고 할 수 없는 우리 팀의 남은 4개월이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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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역시, 선택은 강요된다. 나는 새로운 기로에 서 있다. 팀장님의 업무를 일부 받겠다고 자원했을 때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내 보직을 변경할 의사가 있다고, 회사로부터. 그리고 그것은 더 가속화되고 있다. 팀장님의 퇴사가 결정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공고가 올라왔고, 절친한 지인이 입사 예정자가 되었다. 내가 가게 될지도 모르는 보직에 대한 채용이었으나, 어째서인지 관련 교육을 내가 듣게 되었다. 입사 예정자가 아닌 내가. 그럼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은 어떤 업무를 맡아도 잘 할 것 같으니. 내가 궁금한 것은 내가 어떻게 되는지이다. 9월은 이제 2주 정도가 남았다. 한 달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충분한 시간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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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가 관리하고 있는 관련자는 세 명이다. 아주 좋은 관계를 쌓았다. 악명부터 듣고 같이 일하게 되었지만, 그렇지는 않은 사람과 재지원의 이유가 내 존재인 2명. 내가 업무를 바꾸는 것은 사실 괜찮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을 내가 두고 가야 된다는 것이 그저 싫은 것이다. 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음에 떠나기 싫은 마음이 커져버렸다. 24년 중반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을 터인데, 올해 초였다면 과감히 갔을 터인데, 왜 이제서야 내가 고려되는 것인지. 내 퍼포먼스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일을 한 지가 얼마 안 된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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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도 되지 않은 경력에 꽤 경력이 중요시되는 업무로의 변경이 논의된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기분 좋은 일이다. 인정받았고, 이곳에서 나는 어느 업무를 맡아도 보증된 사람이란 의미일 테니.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겪은 이 모든 상황들이 혼란과 불안을 야기한다. 나는, 나여야만 하는 상황이 좋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어느 하나를 고를 수 없는 요즘에 휘둘리고 있다.

선택의 강요보다, 강제된 통보가 필요한 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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