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숫자만큼 돌아본 나라들 38번째 나
나이 숫자만큼 돌아본 지구촌 나라들 38. 네덜란드(17년 4월)
정은이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동안,
딸을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먼저 가서 딸과 포르투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와
바르셀로나 광장에서 만났다.
셋이서 남부 프랑스 여행을 마치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와서
정은이는 학업을 계속해야 했기 때문에 혼자 남겨두고,
아내와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암스테르담으로 가면서 네델란드라는 나라에 대해 머릿속으로 떠오르거나
해보고 싶은 것들을 요약해 보았다.
아주 어려서는 아버님이 집에 사 놓으신 김찬삼의 세계여행 화보 중에 풍차와 튜울립 사진이 떠 올랐다.
그리고 학창 시절 읽었던 동화 중에 ‘집으로 돌아가다 댐에서 물이 새는 걸 보고 댐의 구멍을 손으로 막아서 마을을 지켰다던 용감한 네델란드 소년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신혼집으로 가락동의 시영아파트에 살면서 이 아파트가 P.C 구조로 지어진 집이고,
이런 P.C 구조는 네델란드가 앞서가고 있어서 1980년대 초 P.C가 한창일 때
관련자들이 네델란드에서 견학을 많이 갔다 왔다고 들었고,
엔지니어가 되어서 부터는 네델란드의 모듈라 건축이 앞서가고 있다고도 들었다.
암스테르담 바로 전 여행지였던 남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암스테르담에서는 고흐 박물관을 꼭 찾아가 보리라 마음먹고,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하였다.
고흐 외에도 램브란트와 베르메르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있었다.
특히 유럽의 명품 도자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조용준 기자가 쓴
세 권짜리 유럽 도자기 책을 모두 사서 읽었다.
북유럽 편에서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우유 따르는 여인’ 등의 그림에서
청금석 안료 소개를 하면서 델프트라는 소도시의 도공들이 만들어 낸 델프트 웨어를 알게 되었다.
동양의 푸른 빛 청화백자를 따라하기 위해 그들의 그룻에도 코발트 블루를 사용할 생각을 갖게 되었고,
네델란드의 델프트 블루가 되었다.
4월 초에 찾은 암스테르담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날씨가 몹시 쌀쌀하였다.
바르셀로나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암스테르담에 오기 전까지 함께
남프랑스를 여행하면서 한국에 갖다 놓으라고 준
딸아이의 후드 티를 여행 내내 입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했다.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중앙역 한 정거장 전 역인 슬로테르딕 역에서 하차해서
미리 예약해 둔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슬로테르딕 역 호텔에 체크인하였다.
기차로 호텔에서 중앙역까지 한 정거장이라서 중앙역으로 들어오는
모든 기차를 수시로 이용할 수 있어서 마치 지하철처럼 중앙역까지 왕복할 수 있어서 좋았다.
중앙역 광장 부근에는 엄청난 자전거가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어서
자전거 천국임을 대변하듯 거리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시민들의
자전거 행렬이 차량만큼 많아 보였다.
암스테르담은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로 유명하다.
자전거 이용을 위한 인프라가 잘 마련되어 있고 주민들의 자전거 이용률 또한 매우 높다.
거리 신호등 역시 자전거 전용 신호등이 있을 정도다.
다만 일부 운하 구간은 자전거 도로와 인도의 구분이 애매하다.
자전거를 타기 좋은 도시라는 말은 반대로 걸어 다니는 여행자들에게는
차보다도 자전거를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또한 암스테르담은 '운하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도시 전체가 부채꼴 모양의 운하로 이루어져 있다.
운하 중심 구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암스테르담은 크게 운하 내부와 외부로 나눌 수 있는데 흔히 생각하는 암스테르담의 이미지는
대부분 내부에 밀집되어 있다.
중앙역과 중앙 도로를 중심으로 서편은 사무 지구라 깨끗해도 트램으로 이동하기 불편하고
동편은 대체로 낡은 편이라 굳이 벗어난다면 남쪽이 무난하다.
북쪽의 경우는 배를 타야 하나 페리가 자주 있고 무료로 탈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에 내려서 다리를 건너면 다수의 운하 관광선 업체 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시간과 가격이 다른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짧은 것은 약 1시간 만에 시내를 일주하기도 한다.
시간이 없을 경우 역 앞에서 운하선을 타고 시내를 관광한 뒤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것도 가능하다.
운하의 모습은 아름다워도 운하 물은 더러웠다.
시내 중심부는 지저분하지만 외부나 암스텔 강으로 이어진 수로는 수질이 그나마 좋은 편이다.
호텔에서 중앙역을 시작으로 담 광장까지 이어지는 도로 주변으로
안네프랑크집, 성박물관, 상업 꽃시장, 암스테르담 국립 박물관,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하이네켄 체험관 등이 도보권에 몰려있어서
도보로 자유여행에 불편하지 않았고, 운하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시내를 둘러보았다.
야간에는 담 광장 주변과 홍등가로 불리는 ‘드 발렌’을 둘러 보았다.
아내와 둘이서 자유여행을 하면서 홍등가를 찾기는 좀 불안하고 멋쩍은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둘러보니 이곳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이 많아서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고,
심지어는 성인용품을 파는 샵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거리를 지나다 보면 묘한 냄새가 났는데 이 냄새가
대마초를 거리에서 피우고 있는 냄새였다.
네델란드는 마약과 대마초에 대해 제제를 하지 않는 나라로 유명하다.
홍등가는 방마다 주요 부위만 가린 여성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매매 거리로 알려진 이곳은 약 250개의 창문형 성매매 업소가 모여 있다.
성박물관은 입장료에 비해 안에 있는 전시물의 내용들은 별로 볼 게 없어서
괜히 돈만 날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의미있던 시간은 뭐니 뭐니해도
고흐 박물관에서 마주한 반 고호의 700여 작품들이었다.
이 미술관에서는 고흐를 이해하기 쉽도록 시기별로 그리고 작품별로 전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사와 일대기, 동생 테호에게 쓴 편지 등도 함께 전시하고 있었고,
입구의 커다란 스크린에는 고흐의 대표적인 그림인 해바라기를 보여주었다.
반고흐 미술관 700여 점의 작품들 중에서, 1885년 누에넨 시절 수많은 습작 끝에 완성하였고,
반 고흐 자신이 인정하는 최초의 작품인 ‘감자먹는 사람들’ 외에 ‘성경이 있는 정물’,
1987년 파리에서 그린 ‘거리 풍경, 1887년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1888년 아를에서 그린 ’추수 풍경‘, 1888년 아를에서 그림 ’론강의 별빛‘, ’노란집‘,
그리고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살던 집의 방을 그린 ’빈센트의 방‘,
빈센트의 대표작 ’해바라기‘, ’고갱의 의자‘,
고흐가 직접 바닷가에서 그린 ’바다 풍경‘ 그림은 그림을 확대하면
실제로 모래 바람을 맞으며 그렸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모래알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암스테르담의 호텔은 홀리데이 인 호텔 마일리지를 이용해서 무료로 예약을 하였고,
여행 전에 미리 준비했던 베네룩스 3국 열차 패스를 이용하였기 때문에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여행을 마치고 벨기에와 룩셈부르그 여행을 한 뒤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서 아내는 한국으로 귀국하였고 나는 뭄바이로 귀임하였다.
암스테르담에서 독일의 쾰른을 커쳐 룩셈브르그로 가는 기차와
벨기에의 브뤼셸에서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바라다 본
네델란드의 좁은 운하와 풍차, 들판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 떼가 가득한
그림 같은 전원 풍경은 참으로 평화롭고도 아름다웠다.
네덜란드에는 ‘신이 세상을 창조했으나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다.
국토의 4분의 1 이상이 해수면보다 낮아 홍수와 해일이 반복되는 악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물길을 다스려 삶의 터전을 일궈온 그들 선조들의 노력의 결실들이
이 풍요로움으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