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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보리수

by 박홍섭

2011년 2월, 인도 뭄바이의 월리(Worli) 지역에서 근무를 시작할 즈음, 문득 보리수나무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인도가 불교의 발상지라는 인식과 함께,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당시 한영 사전을 찾아보니 보리수가 ‘Banyan tree’로 번역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원하던 보리수나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 ChatGPT 등에서는 ‘보리수’ 하면 바로 석가와 관련된 ‘인도보리수(Bodhi tree, Ficus religiosa)’로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만, 2012년 당시에는 ‘보리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나무 종류가 다양해 혼란스러웠다. 관련된 학설과 정보를 정리하면서, 불교의 본류와 무관한 나무들을 하나씩 제외해 보기로 했다.


우선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Der Lindenbaum)에 등장하는 ‘보리수’는 불교의 보리수와는 무관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linden 나무는 Tilia 속, 즉 피나무 계열에 속하는 수종이다.

또한 한국에서 흔히 ‘보리수’라고 부르는 나무는 산수유처럼 붉은 열매가 열리는데, 이것도 석가모니와 관련된 보리수는 아니다.

[꾸미기]한국의 보리수 열매.jpg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은 ‘인도보리수’와 ‘벵갈보리수’의 구분이었다. 두나무 역시 인도에서 잘 번식하고 있는 수종이었다. 그 후 다양한 불교 관련 서적과 식물도감을 참고하였고, 결정적으로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잎을 통해 불교에서 말하는 보리수가 바로 ‘인도보리수’라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두 나무의 가장 큰 차이는 잎 모양과 기근의 유무이다. ‘벵갈보리수(Ficus benghalensis)’는 달걀형의 잎에 끝이 둥글며, 기근이 땅으로 내려가 여러 줄기를 형성한다. 반면 ‘인도보리수(Ficus religiosa)’는 하트모양의 잎에 끝이 뾰족하고 길게 뻗어 있으며, 기근이 발달하지 않는다. 외형과 생태적 특징 모두 ‘벵갈보리수’와는 확연히 다르다.


[꾸미기]뱅갈보리수잎.jpg


[꾸미기]뱅갈보리수 2.jpg


[꾸미기]기근이 발달해 있는 뱅갈보리수.jpg


인도보리수는 오늘날 전 세계 불교도들에게 성스러운 나무로 여겨진다. 이 나무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장소인 보드가야(Bodh Gaya)의 마하보디 사원(Mahabodhi Temple) 경내에 지금도 자라고 있으며, 많은 순례자들이 이 나무 아래서 수행을 되새기고 기도를 드린다.


[꾸미기]보리수 잎.jpg


[꾸미기]인도보리수 나무 5.jpg


이처럼 신성하게 여겨지는 인도보리수가 공사 현장에서 실제로 자라고 있는 모습이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이 나무는 매우 생명력이 강했고, 콘크리트 바닥 틈에서도 뿌리를 내릴 정도로 어디에서든 잘 자랐다.


뭄바이 월리 프로젝트 현장의 초기 작업 과정에서, 현장 내의 잡목은 모두 제거 대상이었다. 인도에서는 나무를 임의로 베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며, 대지 경계선 외곽의 나무는 벌목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장 부지 안의 나무들은 현장팀이 자체적으로 제거하였는데, 이들 나무 중에 가장 많이 벌목한 나무가 아이러니하게도 ‘인도보리수’였다. 이들 나무는 손으로 뽑아도 될 정도의 작은 나무에서부터, 톱과 장비를 이용해서 줄기와 뿌리를 제거해야 할 만큼 자란 거목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수량도 많았다.


인도보리수는 한국의 아카시아처럼 매우 흔하고, 자생력이 뛰어난 수종이라서 몬순이 지나면 처마 밑의 갈라진 틈새에서도 막 싹을 틔워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인도보리수’는 인도 곳곳에서 잡목처럼 자생할 뿐만 아니라 그늘을 제공할 정도의 거목으로까지 자랄 수 있는 아주 흔한 나무라서 석가모니에게도 그늘을 제공하며 깨달음을 도왔을 수 있겠다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인도보리수는 본래 성스러움의 상징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태적으로 어디서든 잘 자라고 성장 속도도 빠르며,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장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후 특성상 인도의 도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특성 때문에, 우연히도 석가모니가 수행하던 장소에 이 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기에 오늘날에는 성스러운 상징이 된 것으로도 추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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