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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골

by 박홍섭

25년 12월 11일, 목요일

# 피맛골


서울에는 말과 관련된 몇몇

지명들이 존재한다.

말에게 죽을 먹였던 곳이라는 데서

‘말죽거리’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하고,

조선시대 서민들이 양반, 고관, 관료 등이

타고 다니던 종로 큰길의 말을 피해

좁은 뒷골목으로 다니면서

말을 피하는 길이 종로의 피맛길이고,

말을 키우거나 길렀던 ‘마들’,

말을 키우던 양마장이 있던

‘마장동’ 등이 그런 곳이다.

이번 주는 아침 출근 시간에

지하철 종로 3가에서 미리 내려서,

종로의 익선동과 피맛골을 거쳐

광화문 사무실로 출근하고,

점심시간에도 피맛골을 거쳐

익선동 한옥마을과

인사동 거리를 산책하였다.

한겨울을 앞두고 세워진

광화문 광장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이미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채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오랫동안 알고 있던 장소를

조금의 공부를 더한 뒤

다시 찾아가는 일에는

소풍을 앞둔 전날의 마음처럼

묘한 설렘이 있다.


도시가 잃어버린 것들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흔적이라는 것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 때문인지,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곳을 향한다.


한 낮에 종로 방향으로 걸어가면

어느새 가로수들은 이미 잎을 거의 떨군 채

겨울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종로의 차들은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지나갔고,

빌딩 사이에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 주는 짧은 해방감을 즐기듯

도심의 공기를 깊이 들이켰다.

종로는 늘 그랬듯 복잡하고 활기찼지만,

피맛골을 제대로 바라보고 싶은 생각에

이곳을 지나는 직장인들의 걸음걸이보다는

한 템포 늦은 박자로 천천히 걸었다.


종로가 권력의 길이었다면,

피맛골은 그 권력을 비켜

서민들이 살아가던 숨은 길이었다.

피맛골과 관련된 인물로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이다.


그는 한양 도성을 설계하고,

궁궐, 성문, 거리 체계를 정비한

조선 도시계획의 핵심 인물이었다.

피맛골이 종로 뒤편에 형성된 것이,

그가 직접 이 길을 설계했다는 내용은

후대의 해석이자 민간 전승에 가깝다.

다만 조선 시대 양반들의 행차와

말을 피하기 위해 서민들이

종로 뒤쪽으로 자연스레 만들어낸

길이라는 점만큼은 여러 기록과 정황에서

어느 정도 확인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말을 피하는 길’,

즉 피맛골이라 불렀다.

청진동으로 불리던 시절의 피맛골은

서울에서 가장 서민적인 장소 중 하나였다.

좁은 골목마다 순댓국, 해장국,

생선구이 냄새가 은근하게 퍼졌고,

겨울이면 유리창 안쪽에 서린 김이

골목 자체를 따뜻하게 비추었다.

문을 열면 뜨끈한 국물 냄새가 얼굴을 감싸며

몸의 긴장을 단숨에 풀어 주곤 했다.

직장인들은 점심에 급하게 국물을 들이켰고,

저녁이면 좁은 선술집마다

막걸리 잔 부딪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연탄난로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흰 숨결이

골목의 겨울 풍경을 완성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피맛골은 대부분 사라졌다.


청진동 재개발로 인해 골목은

교보빌딩 뒤로 광화문 D타워, 르메이에르,

타워8 등 대형 건물 속에 터널처럼 일부만 남았고,

그 앞에 ‘피맛골’ 현판이 붙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기억과 입소문 속에서

더 오래 살아남은 공간이니,

건물의 일부만 남은 지금도 그 자리에 서면

과거의 온기와 냄새가 어른거리는 듯하다.


피맛골의 마지막 흔적을 지나

종각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우정국로를 따라 올라가면

삼봉로 끝에서 인사동 5길과 맞닿는다.

이 골목은 다시

인사동 4길로 이어지고,

삼일대로만 건너면

익선동 한옥마을이 펼쳐진다.


이번 주 내내 들른 익선동은

어느새 익숙한 동네가 되었다.

어제는 이곳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예쁜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서인지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낮은 기와지붕 위로

초겨울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와집 사이 골목을 흘러가며

골목에 활기를 더하고 있었다.

피맛골이 잃어버린 과거의 시간이라면,

익선동은 그 시간을 품은 채

새로운 시대의 옷을 입은

현재의 공간이었다.


익선동의 골목들을 천천히 둘러본 뒤

다시 인사동 길로 접어들면

갑자기 시간이 조금

느려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전통과 현대가 서로 기대어 있는 풍경 속에서

점심 인파와 관광객들이 자연스레 뒤섞여

흐르듯 지나간다.


인사동의 끝에서 북인사 광장

건널목을 지나면

열린 송현 녹지 광장이 나타난다.

열린 송현 앞을 지나 율곡로를 따라 걸어가면

경복궁 동십자각의 고즈넉한 실루엣이 나타나고,

그 건너로 경복궁의 웅대한 월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길을 마지막으로 지나면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하루의 산책이 원처럼 이어지는 지점이다.

이 여정은 도시가 품고 있는 과거와 현재,

보존과 소멸을 모두 걸어본 시간이다.

피맛골의 잔향과 익선동의 생기,

인사동의 숨결과 광화문의 겨울 햇살까지,

이 모든 것이 한 도시의 다양한 얼굴을

서로 다른 결로 보여주고 있었다.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결국,

사라진 흔적과 살아 있는 온도를

동시에 느끼는 일임을 깨달으며

광화문 광장을 지나

사무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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