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를 위한 시간
어린 시절의 나는 늘 착한 아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곧 사랑받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반항은커녕 부모님께 큰소리 한 번 낸 적 없었고, 사춘기다운 갈등조차 겪지 않았다. 어린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돌이켜보니, 그러한 삶의 방식이 늘 좋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르지 않다. 어릴 적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 감정을 눌렀듯, 이제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 자신을 억누르고 있다. 약속에 늦는 사람을 한 시간 동안 묵묵히 기다린 적도 있다. 마음속에서는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그 화를 표현하지 못한다.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거절하거나 화를 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득, ‘착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순종적이고 남을 배려하는 것이 착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주장은 억누르고 남에게 맞춰주는 것일까? 내가 정의하는 착함은 결국 남들이 이용하기 쉬운 바보 같음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어쩌면 나는 오랫동안 착하다는 이름 아래 이용당해 온 것은 아닐까? 직장에서 누군가 나를 이용해 자신의 일을 편하게 처리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그것이 착한 것이었을까? 아니다. 불합리한 것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 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자 올바름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내 안의 ‘내면의 아이’와 대화하고 싶다. 나의 내면의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오랫동안 감정을 잘 참아내며 살아왔어. 하지만 이제는 네 목소리를 낼 때야."
어린 시절의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며 감정을 억눌렀지만, 이제는 성인이 된 내가 나 자신을 지키고, 내 감정에 충실할 책임이 있다. 모든 어른은 한때 어린이였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말처럼, 내 안의 어린아이를 다시 만나야 지금의 내가 온전히 나 다뤄질 수 있을 것이다.
내면의 아이와 연결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내가 경험한 상처를 직시하고, 나 자신을 온전히 수용하는 과정이다. 어릴 적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애썼던 나는 이제 타인의 인정 없이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정직하게 표현할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야 나는 이해한다. 착함은 남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면서도 남을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것이 진정한 성숙함이다. 내면의 아이를 잊지 않고 마주할 때, 나의 삶과 관점은 더 깊이 변화할 것이다. 비로소 진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타인의 기대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나를 위해 살아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