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주는 사람

받아쓰기 숙제 그게 뭐라고

by 이루다


오늘 밤은 평범한 일상에서 아이의 특별한 면모를 발견한 날로 기억될 것 같다. 밤 11시, 잠자리에 들어서야 둘째의 받아쓰기 연습 숙제가 떠올랐다. 저번 주에도 깜박했기에 이번만큼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졸리다고 칭얼대는 둘째를 억지로 식탁에 앉혀 연습을 시작하게 했다. 하지만 졸음과 피곤함이 겹쳐 글씨는 엉망이었고, 마음속에서 의문이 피어올랐다. "이렇게 억지로 시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부터였다. 졸린 눈으로도 둘째는 끈질기게 글씨를 고쳐 쓰려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지렁이처럼 흐트러지는 글씨를 보며 내 속도 상했다.
“그만하고 자자. 이러다 밤새겠다.”
하지만 둘째는 나의 말에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안 괜찮아


그 말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래도 괜찮아. 엄마가 보기엔 충분히 잘했어.”라는 말은 둘째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스스로 정한 기준이 있었고, 그것을 만족시키고 싶어 하는 강한 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엔 재촉만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아이는 단순히 숙제를 끝내고 싶은 게 아니었다.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둘째의 마음을 기다려 주지 못하고 재촉하고만 있었다.
엄마라고 해서 아이의 모든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다는 걸 또 한 번 느낀 순간이었다.

둘째가 노트를 들고 와 다시 보여줬을 때, 아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아직은 작고 여린 손으로 쓴 글씨지만, 거기엔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우리 둘째는 '적당히'를 몰랐다. 적당히 잘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삶보다, 스스로 정한 기준에 맞추고 싶어 했다. 그 기준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 높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아이 스스로에게 때로는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둘째를 응원하기로 했다.


“그래, 너의 기준에 맞게 살아도 돼. 때로는 그게 힘들 수도 있어. 그래도 그게 너라면, 그게 맞다면, 그렇게 살아도 괜찮아. 엄마는 너의 의지를 믿어. 너의 고집은 단순한 똥고집이 아니라, 스스로의 길을 찾으려는 의지야.”

오늘 밤, 나는 내 아이가 단순히 어린아이가 아니라, 자기주장을 하고 스스로의 기준을 세울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봤다. 그런 둘째가 너무 자랑스럽다.

둘째야, 엄마는 너를 아끼고 사랑해. 너의 그 고집스러운 의지가 너의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어. 그리고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야. 그 의지를 계속 응원할게.
이제 엄마는 조금 더 너를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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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고쳐쓴 받아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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