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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조아 Apr 03. 2024

#1. 금주를 결심한 나.

내가 술을 끊어야 하는 이유

"저 오늘 금주 1일차에요"


월요일 오전 9시, 회사에서 주간 미팅 시작 전이었다. 

팀원들이 가벼운 대화를 나눌 때 무심히 툭 한마디 던졌다. 

재미있는 화제에 팀원들은 우르르 한마디씩 보탠다.  


"술 잘 먹지도 못하면서 왜 끊어요?"

"금주 1달째도 아니고, 1일은 너무 심한거 아니에요?"

"그럼, 다음 회식 전까지 술 먹지 마세요, 먹으면 커피 쏘기!"


어제 먹은 숙취와 죄책감에 웃자고 던진 말이 '금주' 선언이 되버렸다. 

내심 "이번 주는 술을 안 먹어야지"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어떨결에 한달 뒤 회식까지 금주를 해야만 했다.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몇 번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다. 

의도치 않게 '공식선언'을 한 김에 한번 술을 끊어보자 다짐했다. 



금주 1일차, 내가 술을 끊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1. 술이 는다. 

대학교에 첫 입학한 20살 겨울, 군입대를 앞두고 이별의 아픔이 있었다. TV로만 술을 배운 나는, 드라마 주인공 마냥 선배 자취방에서 혼자 깡소주를 들이켰다(그 와중에 일반 소주는 독해서 청하를 먹었다). 모든 슬픔과 번민이 모두 내 것 같았다. 반 병을 먹었는데 몸 전체가 벌개졌다. 하지만 '슬픔을 술로 다 덮어야 한다'는 알량한 자존심(혹은 청승)으로 한 병을 다 비웠다. 

다음날, 오후 3시가 되서야 일어났다. 몸은 온몸이 빨갰고,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속이 쓰려 아무것도 못 먹었다. 그렇게 이틀을 않아 누웠다. 이별의 아픔인지, 숙취인지 당시엔 몰랐지만 그때 술이 지독히 싫어졌다.

나는 모두가 말하는 '알쓰' 다. 소주 1병(심지어 청하)이 내 치사량 이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결혼하고 애가 둘이 있는 30대 후반의 나는 고량주 1병도 가뿐하다. 사실 더 먹기도 한다. 소주 도수가 예전보다 약해져서인지, 술에 머리가 마비된 것인지 모르겠다. 술을 잔뜩 먹으면 몸은 똑같이 벌건대, 술은 계속 들어간다. 뭔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과거 맥주 한 캔에서, 이젠 고량주 한 병도 마신다.



2. 아이와 함께하는 출근길.

올해 3월부터 둘째가 회사어린이집에 운좋게 다니게 됐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차로 약 30분 거리다. 평소에 나보다 운전을 잘하는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겼었는데, 졸지에 내가 매일 운전을 하게 되었다. 

등원 첫날,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새벽 도로를 나섰다. 출근길 차들은 모두 예민했다. 끼어들기도 심하고 급정거도 많았다. 국회대로-여의도-용산을 거치는 복잡한 길인데, 숙취가 있는 날이면 까딱하다간 사고가 날 것 같았다. 맨 정신의 내가 필요했다.

둘째의 직장 어린이집 첫 등원, 비장감이 느껴진다.


3. 술 없이 못 잔다. 

밤 10시 육퇴 후, 컴퓨터 책상에 앉아 유튜브나 게임을 켠다. 12시까지는 내 세상이다. 

"째깍째깍....."

뭐 한 것도 없는데, 벌써 11시 50분이다. 하지만 내 몸과 머리는 이제야 쉰다고, 자기 싫다고 반항한다. 어쩔 수 없다. 술이 수면제인 나는, 내 몸에 단기 처방이 들어간다. 냉장고에서 맥주 한캔을 가져온다. 빠르게 취하기 위해 한모금 마시고 캔에 소주를 더 탄다. 12시 30분, 소맥을 비우니 이제 좀 잠기운이 돈다. 술이 깨기 전에 언능 안방으로 간다. 웅크려 자는 딸내미 옆에 술냄새를 풍기며 자리잡고 눕는다. 술에 잔뜩 취해 핸드폰으로 보고있던 웹툰을 그대로 켜둔채로 언제지 모르게 잠에 빠진다.

"으앙~" 

새벽 5시, 아이 울음소리에 깬다. 나 때문에 깼다. 내가 코를 심하게 골았나보다. 미세먼지를 한 컵 마신 것 처럼 코가 아리다. 자면서 이도 갈았나 보다. 턱도 아프다. 다시 잠에 들지만, 자꾸 선잠이 든다. 어느새 알람이 울리고, 지친 몸뚱이를 이끌고 화장실로 간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얼굴, 몸 곳곳은 아직도 알콜 반응으로 빨갛다.

육퇴 후 야심한 밤, 환하게 빛나는 맥주의 유혹..


4. 술병을 숨긴다. 

"일주일에 3번"

내가 스스로 정한 술 먹는 횟수다. 어느날의 일요일 저녁, 이번 주에 이미 네 번을 마셨다. 하지만, 내일은 회사를 가야하는 월요일이라 잠이 안 올 것 같다. 밤 10시가 넘었지만, 부지런하게 밖에 나가 막걸리를 사온다. 

새벽 1시가 넘게 까지 먹고 빈 병을 싱크대에 올려 놓으려는데, 맥주캔들이 이미 널부러져 있다. 이번 주 다 내가 먹은 것이다.(아내는 깔끔한 성격이라, 자기 전에 설거지와 싱크대 정리를 잘하지만, 내가 먹은 술병들만은 그대로 놔둔다. 의도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내일 아침은 장모님이 첫째 등원 때문에 아침 일찍 오신다. 내가 쌓은 술병들을 보실까봐 창피해졌다. 아이들이 깰 수도 있지만, 조심스레 안방 옆 베란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분리수거함에 캔과 병을 조심히 쏟았다. 

"챙그랑" 

캔들이 서로 부딪히며 소리가 난다. 내 마음 속 양심의 가책도 챙그랑 거린다. 이게 맞는가 싶다.





끊어야 하는 이유는 사실 수도 없이 많았다. 

다만 내 결심이 부족했을 뿐이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술과 나의 싸움이 시작됐다.

어떨결에 링 위에 올랐지만,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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