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 맞추기 참 힘드네…
7월 17일 (월)
드디어 아이들이 현지 여름캠프에 참여하기 시작하는 날이다. 긴장하고 있는 나 못지않게 아이들 역시 설렘과 긴장으로 마음이 뒤숭숭한 것 같다. 사교성이 좋은 둘째 아이는 벌써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빨리 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한 달 전부터 신나서 기대하고 있었던 반면, 예민하고, 내향적인 첫째는 많이 긴장되는지 캠프에서 무엇을 하는지 반복적으로 물어본다.
학교로 가는 길은 지난주에 온 가족이 한 번 답사를 다녀온 고로, 길을 헤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학교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학교가 너무 커서 입구가 어디인지, 캠프 집합 장소가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 Pre-Prep school 쪽으로 잘못 들어가니, 옆에서 학교 잔디 관리하시는 분이 친절히 캠프는 저쪽이라고 안내해 주셨다. 길을 헤맬 때마다 아이들은 “엄마~” 하고 한마디 한다. 물론 너희들도 긴장되고, 걱정되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엄마라고 완벽할 수 있겠니, 이 상전들아!
잔디 아저씨께서 안내해 주신 곳으로 가니, 밝은 미소의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확인하셨다. 메일로는 엄청 까다롭게 아이들 알레르기 관련 서류도 작성해서 내라고 하고, 아이들 픽업번호도 모르면 안 되는 것처럼 안내가 되었는데, 생각보다 허술하게 아이들을 인도받으셨다. 뭐, 그쪽이 오히려 나도 마음이 편했다. 준비물도 실내화, 수영복, 점심, 물통 하나하나 신경 써서 가져갔는데, 다 점검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허술한 게 오히려 나도 편하다. 그리고 아이들을 들려 보냈다. 애써 우리 아이들도 나도 엄청 영어를 잘하는 척했다. 애써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영국식 악센트를 시전 하며 아이들을 들려 보냈는데, 아이들은 도무지 영어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인사도 한국식 목례로 어설프게 하고 들어갔다. 캠프 안내문에 분명히 유창한 영어를 사용하는 아이들만 예약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어서 그 부분이 나에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영어 수업이 포함되어 있는 캠프는 가격이 두배로 비싸기 때문에 아이들을 믿고 무리하게 현지 아이들 캠프로 예약했는데, 행여나 아이들 영어실력 때문에 거절당할까 하루 종일 안절부절이다.
어찌 되었든 이제는 나의 손을 떠났다. 아이들이 잘 견뎌 주기를 믿고 하루를 기도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아이들을 보내고, 학교를 한 바퀴 돌면서 거닐었다. 고풍스러운 학교건물과, 넓은 잔디밭이 펼쳐졌다. 다행히도 날씨가 참 좋았다. 가을 하늘 같은 맑은 날씨가 눈부시게 좋았다.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첼튼햄 시내로 들어서니, 옛날 그 건물들이 그대로이다. 그때에는 그래도 활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곳 첼튼햄도 전반적으로 활력이 없어진 것 같다. 빈 건물도 종종 보이고, 버스 안에는 젊은 사람들 보다는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코로나19로 이곳도 경제적인 동력을 많이 잃은 상태인 것 같고, 고령화는 우리나라 만의 문제가 아닌 듯이 보였다.
황급히 노트북 충전용 젠더를 사러 전자소품 매장에 들어섰다. 남편이 무거운 짐을 덜어준다고 노트북 아답터를 가져가고 충전 케이블만을 두고 가 버린 탓에, 맞는 젠더를 찾아야 했다. 다행히 맞는 젠더가 있었다. 기분 좋게 젠더를 하나 구입하고, 옷을 하나 사기 위해 옷가게들을 찾아보았다. 지금은 한국에도 있는 Marks& Spencer로 들어가 가디건을 골랐다. 영국날씨가 생각보다 추워 긴 팔 옷이 하나 필요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름인데 덥겠지 싶어서 죄다 반팔옷만 가져왔는데, 기온이 20도 이상 오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무더위를 피할 수 있어서 이번 여름은 조금 쉽게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큰 아이를 위한 우비 겸용 바람막이 점퍼도 하나 구입했다.
간단한 쇼핑을 마치고, 조금 더 시내를 둘러볼까 생각도 했지만 괜히 아이들 생각을 하면 긴장이 되고, 이렇게 혼자 마음 편히 돌아다니면 안 될 것 같다. 얼른 집으로 돌아와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했다. 아이들이 무사히 하루를 잘 버틸 수 있을까? 낯선 곳에서 나와는 다른 모습의 아이들, 선생님들과 하루종일 보내는 아이들 생각에 안절부절 이었다.
아이들 픽업 시간까지 시간이 참 더디게 흐르는 것 같다.
아이들이 오늘의 이야기를 어떻게 할까? 재미있었다고 할까? 혹시나 언어가 안 통해서 선생님이 같이 캠프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하면 어떡하지? 아니면 아이들이 혹시 동양인이라고 따돌림받고 속상해하면 어떡하지? 바로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지?
만 가지 걱정이 들었다. 단 한마디 “참 재미있었어”라는 말을 들으면 모든 걱정이 사라질 텐데……
아이들 픽업시간이 되자 떨리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멀리 학교가 보이고, 다른 엄마들도 하나 둘 아이들을 픽업하고 있었다. 나오는 아이들 중에 어린아이들이 많아서 어쩐지 큰애가 재미가 없었을까 걱정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이 여름캠프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영국 내에서도 맞벌이 부부를 위한 보육의 개념이다 보니, 그렇게 질적으로 대단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정도를 위해 이 먼 리 타국까지 가산을 탕진해 가며 아이들을 끌고 왔어야 했는지 일말의 의구심도 들었다. 만약 여기 현지 사람들이 나의 스토리를 들으면 정말 의아해할 것 같다.
저 멀리 홀로 에어바운스와 싸우고 있는 첫째가 보였다.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층 더 큰애의 반응이 어떨지 불안해졌다. 선생님께 아이들 이름을 이야기하니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렀다. 아이들이 나왔다.
“엄마~! ”
애교 많은 둘째는 나에게 와락 달려와 안겼다. 다행히 표정이 좋아 보인다. 그런데 어쩐지 첫째의 얼굴은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 그냥 둘 다 기쁜 표정으로 즐거웠었다는 한마디만 해 준다면, 오늘 하루종일 손에 쥐고 있었던 긴장감과, 방금 전 스쳐 지나간 여기까지 왔어야 했을까 라는 약간의 의구심이 눈 녹듯이 사라져 줄 텐데……
“어때, 재미있었어?”
“응, 재미있었어, 친구도 사귀었어~” 다행히 둘째는 오늘 하루가 재미있었나 보다. 일단 한 단계는 넘은 것 같다.
“엄마, 나 오늘 너무 힘들었어. 미술관 박물관 간 거 같이 힘들어……”
아무래도 하루종일 운동만 하는 프로그램이라 그런 것인지 체력적으로 힘들었나 보다. 그런 것 보다 혹시 언어에 문제는 없었는지, 친구들이나 선생님은 괜찮았는지 궁금했던 나는 아이들에게 마구 질문을 던졌다.
둘째는 오늘 만난 친구 이야기부터 오늘 한 게임, 운동 재잘재잘 이야기 한다. 그런데 첫째는 아무 말이 없고 곧 짜증을 낼 것 같은 표정이다.
아이들의 체력소모가 엄청났는지,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를 뒤져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아이들 점심으로 싸준 샌드위치가 부족했나 보다. 내일은 두배로 싸줘야겠다.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첫째의 눈치가 보인다. 둘째도 말로는 재미있었다고 하지만, 나름 신경 쓰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계속 나에게 엉겨붙는다. 아이들이 행여나 힘들어서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할 까봐 작은 짜증 하나도 예전처럼 지나칠 수 없다. 상전이 따로 없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왜 얘네들 눈치를 봐야 하지? 이렇게 여행 오고, 해외 경험 할 수 있다면 그냥 감사할 일 아닌가? 이 캠프가 공부하는 캠프도 아니고, 순수 하루종일 뛰어놀기만 하면 되는 캠프인데, 노는 것도 힘들면…… 그럼 어쩌라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