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내 걱정보다 잘하고 있다.
7월 18일 (화)
캠프 둘째 날
아마도 둘 다 첫날이라고 엄청 긴장하고 힘들었었는지 오늘은 둘 다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지를 않는다. 어제 아이들을 맞이하고부터 밀려들어온 걱정. 내 욕심이었나…라고 돌이켜 보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너희들에게 공부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경험 하고, 신나게 놀라고 했는데, 그것도 어렵나, 얘네들이 배가 불렀네라고 생각도 들다가. 서둘러 아이들을 또 캠프에 몰아넣고 오만가지 생각으로 걱정에 걱정을 더했다. 아이들이 엄청 신나는 얼굴로 “엄마 참 재미있었어.”라고 한마디만 해 주었더라면 나의 모든 걱정이 다 녹듯이 사라졌을 텐데……
그러다 문득 나는 그럼 정말 모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완벽하게 잘 지냈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 보았다. 내가 처음 기숙사에 남겨져 이모도, 엄마도 떠났을 때 그때의 내 마음이 어땠었는 지를 되돌려 보았다. 안 그래도 체구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작은 나를 그곳에 홀로 두고 오는 엄마의 심정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 역시 말도 통하지 않는 그곳에 홀로 남겨져 낯선 규율들을 파악하고 헤쳐나가는 것이 외롭고 눈물만 났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도 나를 보고 부모 잘 만나서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했을지 모르지만, 그때 나 역시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힘들다고 느끼면서, 씩씩하게 견뎌보겠다며 애써 눈물을 삼켰던 기억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해 보면 아이들이 어떻게 힘들었을지 대략 짐작도 가고, 힘든 것을 애써 내색 안 하려고 하는 것도 있겠지 싶어 짠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둘째 날 역시 아이들을 보내놓고 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온 집안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있었다. 와서 새삼 느낀 건, 아이들 보내놓고 온전히 살림하는 게 즐겁고, 생각보다 재능도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왜 그렇게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이일 저일 손대면서 집안일에 소홀했었는지 모른다. 한국에 돌아가면 집 정리부터 싹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오늘은 테스코 딜리버리로 주문한 물건을 직접 받아보았다. 무거운 짐을 차 없이 어떻게 장을 보나 고민했는데, 손 끝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이 시대는 세계 어디를 가도 간편해진 것 같다.
이제 첼튼햄에서 살아남는 법을 점점 터득하는 것 같다. 새삼 나를 돌보아 주셨던 이모가 생각이 났다. 지금도 이렇게 첼튼햄에 동양인도 많지 않은데, 30년 전 이 땅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고, 공부하시는 이모부도 뒷바라지하시며 사셨는지…… 그 당시에는 인터넷도 안되었을 텐데 어떻게 그 많은 정보들을 얻어서 조카가 왔다고 여기저기 여행도 데리고 다녀 주시고, 보호자 역할까지 해 주셨는지…… 늘 감사하지만, 감사하다는 단어로는 부족하기만 하다.
이런저런 감상에 졌다가, 한국에 페이스톡으로 남편과 대화를 했다. 남편 역시 아이들이 캠프에 잘 적응하는지 많이 걱정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잘 적응해 가는 것 같지만, 큰애는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니, 그래도 그 정도면 아이들이 정말 잘해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언제나처럼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오늘은 아이들을 만나면 더 많이 안아주고 칭찬해 주어야지! 마음을 다 잡는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동양이는 어린 중국아이들 몇 명뿐이었다. 모습부터 다른 아이들과 섞여해 나가고 있는 아이들인데 긴장도 당연하고, 스트레스도 당연하다.
아이들이 나왔다.
“엄마! 재미있었어!”
둘째가 또 깡총깡총 뛰면서 나온다. 다행이다. 사교성이 좋은 둘째는 그래도 이곳에 데리고 온 보람이 있다. 첫째는 오늘도 힘들었는지 발을 질질 끌며 나온다.
“윤호야, 오늘도 힘들었어?”
“어, 오늘도 힘들었어. 테니스, 수영, 축구, 미니크리켓 했어. 힘들어~“그런데, 자세히 보아하니 마음보다는 육체가 힘든 것 같다. 한국에서 얼마나 걷지도 않고, 운동도 안 했으면…… 이건 단순히 저질체력의 문제였던가 싶기도 하다. 체력의 문제라고만 하니, 오히려 한시름 놓은 것 같다. 체력이라면 한 달 동안 충분히 올릴 수 있을 것 같고, 집에서 잘 먹고 푹 자면 어느 정도 해결되는 문제일 테니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또 이것저것 먹을 것을 찾았다. 간식으로 준비한 피자를 한 판 구워주니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어차피 내 목표는 아이들의 공부도 아니었고, 영어도 아니었다. 그저 커다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신나고 즐겁게 놀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보낸 하루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목표에 하루하루 조금씩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엄마, 여기는 한국인은 진짜 일도 없어. 오늘 어린 중국인 자매가 왔는데, 동양인은 그렇게 뿐이고, 그리고 여기 스페인 애들이 왜 이렇게 많아. 또 어떤 언니는 인도사람인 것 같고. 내 친구 토마는 아빠는 독일인이고, 엄마는 이스라엘 사람이래. 그래서 걔는 4개 국어 정도를 한다!”
여전히 말이 없는 첫째는 친구의 있고 없음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 스타일이라 지금 친구가 없다는 것이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선생님 이야기에는 자신 있게 큰소리로 대답은 했으면 좋겠다. 그런 첫째도 둘째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친구가 계속 친해지고 싶어서 말을 걸어왔다고 하니, 소외감을 크게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아 다행이다.
나의 아이들은 내가 했던 것보다, 내가 걱정한 것보다, 훨씬 더 잘 적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