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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Aug 06. 2023

그때만 함께 하신 것이 아니었었던 것을

과거를 바라보고 현재를 맞이하다


7월 30일 (일)


벌써 St. Paul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세 번째이다. 이 교회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따뜻함에 조금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여전히 이방땅에서 그 커뮤니티 안에 들어가는 일은 긴장되는 일이다.

오늘은 다시 주일학교가 시작되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둘째는 오늘 예배를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예배가 시작되고, 찬양이 시작되고, 어린이와 함께 하는 짧은 말씀 시간에는, 오늘도 청소년 담당이신 한 형제님이 이야기를 전했다.

백부장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짧고 간결한 설교가 쉽게 와닿았다.

‘예수님이 ‘우와’ 하고 놀라실 수 있는 믿음, 여러분은 갖고 계십니까?’

그런 믿음. 나에게는 있나?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찬양이 계속되고.

내가 이곳에 왜 그렇게 아이들과 오고 싶어 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아니, 아이들과 라기보다 그냥 내가 오고 싶었다.

막연한 목적이 있었다. 다시 하나님과의 첫 만남을 되짚어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내 삶에 있었다. 내가 가장 강렬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믿게 된 것이 바로 중학교시절  이곳 첼튼햄에서였기 때문이다. 기숙사에서 홀로 기도하면서 만났던 하나님. 그 강렬한 만남, 간절함이 어느덧 내 바쁜 삶 속에서 잊히게 된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늘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 무언가 열심히 바쁘게 사는 것 같기는 한데, 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허망함 같은 것이 있다. 내 주변은 모두가 잘 나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게 주신 축복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는 한다. 그래서 다시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나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많았다.


이곳 영국에 온 지 벌써 3주째……

분명히 나는 그때 하나님을 만났던 그 사춘기 소녀의 기억과 조우했다. 그리고 추억에 빠지기도 했다. 감동하기도 했다. ‘아, 그랬었구나, 내가 그때 그렇게 외로웠구나, 힘들었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의지했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듭은 풀리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덧 나는 또 아이들의 뒤치닥 거리에 치이기 시작했고, 한국 가는 날을 손꼽고 있었다. 한국에 가면 이 삶이 무척 그리울 것이라면서 스스로 위안을 하지만, 이 삶 역시 조금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한 것 같다.


무엇을 찾으러 온 것일까? 왜 여기에 해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일까? 앞으로 2주 남짓 남은 시간 동안 그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예배시간이 더욱 간절해졌다.


오늘 설교는 간증 형태로 이루어졌다. 설교를 간증으로 대신한다는 것이 우리나라 교회 정서상으로는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것일 텐데, 이곳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삶과 말씀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 같다.

두 노부부의 간증이었다. 80 전 후로 되어 보이는 노부부는 거동도 쉽지 않아 보였다. 이 교회의 초대멤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교회로 치면 장로님 같은 느낌일까?

아무튼 이 노부부님이 자신의 삶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두 부부의 만남, 교회와의 만남을 담백하게 이야기하셨다.

내 솔직한 느낌으로는 그렇게 특별하다고 할 간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에서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하심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80세가 되었을 때는 어떤 간증을 할 수 있을까? 난 아직 반 정도 온 것이라 생각하니, 아직도 나머지 반을 채우실 하나님의 이야기가 어떨지 궁금해진다.


집에 돌아와 보니 나 역시 감기기운이 있는 것 같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니 더 꼼짝도 하기가 싫다. 이제 아이들에게 알아서 티브이든 유튜브든 보라고 리모컨을 던져주고 나 홀로 침대에 누웠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눈을 감고, 나의 인생의 반에 대해 돌려보기 시작했다.

영국의 기숙학교에 다니면서 하나님을 알게 된 것. 울면서 기도했던 날들. 그 첫 만남의 간절함을 찾기 위해 이곳을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그때 그 중학생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는 함께 하지 않으셨었나?

생각해 보니 더 많이, 더 깊이, 더 뜨겁게 만나주셨던 날들이 그 이후로도 많았다. 한국에 귀국한 이후에도 줄곧 매 순간마다 나와 함께해 주셨다. 내가 다시 이곳 영국을 찾기 직전 까지도 그리해 주셨다.

스마트폰을 꺼내 한국에서 자주 듣던 찬양을 플레이했다. 가사 하나하나에 흘렸던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그 중학생 아이에게만 특별히 찾아와 주셨던 하나님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매 순간마다 나를 찾아와 주셨던 하나님 이셨다.


이제 이곳에서 그 중학생 아이를 놓아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더 이상 그때 그 시절에만 사로잡혀서 현실을 떠나려고 하면 안 된다. 이미 내 현실에서도 하나님은 계시고, 현실 속에서 나를 이끌어 가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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