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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Aug 07. 2023

첼튼햄에 울리는 한국어

다수가 된다는 것

7월 31일 (월)

오늘도 하루종일 비가 올 모양이다. 아이들 감기가 옮았는지 몸이 으슬으슬하다. 엄마는 아플 수 없다. 정신력으로 이겨야지! 아이들이 없는 동안 열심히 비타민도 먹고, 약도 한 알 먹고 침대에 누웠다. 이럴 때 빨리 쉬고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시간쯤 누워있었을까? 여전히 빗소리가 창가에 울린다. 스마트폰에 페이스톡 알림 벨이 울린다. 한국에서 남편이 퇴근 후 페이스톡을 연결한 것이었다. 부스스한 얼굴로 남편과 페이스톡을 했다. 남편도 혼자서 제대로 밥을 못 챙겨 먹는지, 배탈이 났다고 한다. 한국의 무더위 속에 면역력도 약해진 듯했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고 해도 그리 잘 챙기는 와이프는 아닌데, 그도 역시 존재의 부재만으로도 삶이 안정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면서 무슨 지방발령 타령을 하는 것인지 원……


그래도 누웠다 일어난 덕인지 머리가 한결 개운해졌다. 다시 부엌을 정리하고 커피 한잔을 한 후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길에, 저 멀리서 어떤 아이들의 한국어 소리가 들렸다. 큰 소리로 웃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행복하게 들렸다.

‘아, 이번주에는 한국인이 더 늘었구나……’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조금 덜 해질 것 같기도 하여,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아이들이 나오자, 두 아이가 또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엄마, 엄마~ 오늘은 한국인이 7명이었어!!, 저기 놀이터에 있는 애들이 다 한국애들이야!”

“그… 그래? “

“응~ 나도 저기서 놀다 갈래!”

우리 아이들도 놀이터로 돌진한다. 무엇보다, 큰애의 표정이 밝다. 큰애 또래의 한국인 남자아이도 그 그룹에 있었는데, 그간 큰애가 둘째 아이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나름 참는 것도 잘 참고, 엄마말도 잘 듣는 아이인데, 요 며칠 나에게 짜증 부리고, 꼬치꼬치 따지면서 사춘기 소년의 모습을 보였던 것이, 나름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 안에서 한국어가 들렸다.

“얘들아, 소리가 너무 커~”

라고 얘기하려다 말았다. 순간적으로 한국어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이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민망하고 불편했는데, 이내 아이들이 수적으로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담대해졌다.

‘뭐, 애들이 여럿인데, 그럴 수도 있지 뭐……’


알고 보니, 오늘 온 네 명의 아이들은 이곳에 사는 아이들이었다. 방학을 맞이하여 잠깐 캠프에 참여했는데, 내일부터는 또 다른 곳에 여행을 간다고 했다. 나도 오랜만에 한국인 어른과 이야기하니 편하고 반가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비가 다시 오기 시작하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하루의 짧은 만남으로 아쉽지만 아이들은 그새 SNS 계정까지 교환한 모양이다. 그래, 어디서든, 누구 와든, 그렇게 즐겁게 대화하고 친해질 수 있는 너희들이 나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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