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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Aug 11. 2023

하루하루 새겨야 할 풍경들

벌써 귀국이 열흘밖에 안 남았네

8월 3일 (목)

어제 하루종일 내린 비 탓인지, 아침부터 날씨가 좋을 것을 기대해 본다. 하지만 좀처럼 햇살이 쨍하고 비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한 날씨라는 생각에, 아이들 캠프 이후 어디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집 근처에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사람들이 가끔 나왔던 것이 생각이 났다. 어쩌면, 그곳에 길이 있을 것 같다는 촉이 왔다.

이제 이곳 첼튼햄에 온 지 3주나 되었으니, 구글이 알려주지 않는 길을 찾을 때도 되었다. 게다가 나는 엊그제 저 멀리 언덕까지 혼자 걸어서 다녀오지 않았던가…… 이깟 숲길쯤이야!

그렇게 숲길로 연결된 철문을 열었다.

‘끼익’

그런데, 이게 웬일! 너무나 멋진 산책로가 펼쳐져 있었고, 그 길은 타운센터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어쩐지, 대로변 인도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더라니, 걷는 사람들은 다 이 오솔길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며 모양을 바꾸고 있었고,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내 마음을 깨웠다. 중간중간 걷는 사람들이 보이니 내 마음은 더욱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멋진 길이 있었다니! 진작 알았으면 시내까지 이 길로 걸어 다녔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 길을 찾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숲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으니 ‘Town Centre’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을 따라 나가니, 인근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단체로 산책을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아이들을 선생님들이 인솔하여 숲 속으로 가고 있었다. 4살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아이들이 조잘조잘 떠들며 가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세계 어디를 가도 아이들의 모습은 사랑스럽게만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을 키워놓고 보니, 그 아가의 모습이 너무 예쁘다. 나의 눈은 어느덧 할머니 눈이 되어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숲길을 빠져나오니, 시내 초입에 있는 베이글 집이 바로 눈이 들어왔다. 예전에 버스 타고 시내로 들어갈 때 지나치면서, 꼭 한 번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안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여러 종류가 눈이 보여 무엇을 시킬지 몰라 점원이 추천한 것을 하나 골라본다. 커피와 베이글을 먹으며 한가한 영국 작은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는 맛은, 다소 평범한 커피와 베이글 맛에도 큰 만족감을 주었다.



벌써 시내에 다섯 번은 넘게 온 것 같다. 첫 시내구경은 옛 추억에 젖어, 그때 본 그것들을 다시 꺼내어 들춰보는 시간이었다면, 회를 거듭할수록 내가 알지 못한 풍경, 내가 느끼지 못했던 감성을 새로이 새겨가는 시간이다. 분명 떠나고 난 뒤에 그리울 풍경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간들이 마냥 편하지 만은 않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문득 ‘어머, 이제 열흘밖에 안 남았네!’라는 생각에 더 많이 즐겨야겠다는 조바심도 나지만, ‘휴, 이제 열흘밖에 안 남았어’라는 안도감도 드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지금의 이 여행객이라는 신분과는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나도 모르게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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