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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May 12. 2024

비인가 국제학교 다운그레이드 입학

1~2년 늦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 아이들은 비인가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

큰 아이는 공립초를 3학년까지 다니다 옮겼고, 둘째 아이는 1학년 중간에 옮겼다.

둘 다 코로나시기에 학교를 거의 가지 않을 때 망설임 없이 옮겼다.

학교도 안 가는 마당에, 비인가 학교를 다니다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오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이 학교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큰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던 7세 때였다.

당시 나는 유치원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우리 00 이가 행동이 많이 느린 것은 알고 계시죠?”

“하하, 그렇죠 네.”

나는 그냥 웃어넘길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느림은 그저 나를 답답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일 뿐, 그것이 아이의 사회생활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는 생각은 못 해 보았다.

이런 나의 태도가 황당했는지,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모든 활동이 너무 느려서 다음 활동으로 넘어갈 수가 없어요. 혼자서 한 가지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끝까지 그것만 하려고 하고, 뭐 써 보라고 하면 한참을 백지에 놓고 생각만 하고, 그림 그리기도 안 하고, 밥 먹는 것도 너무 느려서 다른 아이들은 끝나고 신나게 노는데, 00 이만 놀지도 못해요. 이래서는 학교 생활이 힘들 수 있어요. 이제 슬슬 학교 갈 수 있도록 훈련이 되어야지요. “

선생님의 진지한 말투에 나 역시 당황했다.

무언가 내가 그동안 굉장히 잘못하고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아이의 학교 입학을 앞둔 엄마가 글쓰기도 안 가르치고, 너무 태평하게 있다는 것이었다.

유치원 선생님이 나서서 동네 아이들이 어떻게 학습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누가 들으면 학원 설명회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머님 구몬은 아시죠? 그런 거라도 시키셔서 입학 준비 하셔야 돼요. 00 이가 수학적 머리가 있는 것은 맞지만,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에 비하면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니에요. 매일 일기 쓰기, 알림장 쓰기, 독후활동하기, 미리 가르쳐 놓으셔야 해요.”


머릿속이 심란했다.

유치원 선생님이라면 적어도 아이들 지금이 놀 때니 너무 많이 시키지 마시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는 것이었나?

물론 선생님의 걱정은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 부분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의 성향 자체가 너무 느려서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기 힘들지 않겠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부분을 인지하고 나니 몇 날 며칠 심란해서 잠이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비인가 국제학교를 보내는 어머님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같은 교회 집사님의 아이가 그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었는데, 미국식 커리큘럼에 학비도 타 국제학교에 비해 저렴하고, 무엇보다 기독교 교육을 철저히 시킨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입시에 우리 아이 같은 아이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며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소개해 주셨다.


솔깃해진 나는 당장 그 학교에 찾아가 상담을 받아보았지만, 비인가 국제학교는 내가 상상했던 국제학교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와 낡은 시설에 적잖이 실망을 했다.

그렇게 , 일반학교를 보내고 난 다음에 고민해도 늦지 않다는 주변의 만류로 결국 큰아이는 보통의 일반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유치원 선생님의 우려처럼 학교에 잘 적응하지를 못했다.

쓰고 그리는 수업이 대부분인데, 선생님은 아이의 느림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이는 점점 부진아 취급을 받게 되었고, 주변 아이들 속에서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늦지 않았다고, 천천히 이제부터 학습은 시작하면 된다고 다독여도 이미 아이는 패배감에 젖어 들어 있었다.

“나는 안돼, 나는 못해”

이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그렇게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전에 알아보았던 비인가 국제학교가 다시 떠올랐다.


‘이 아이가 기죽지 않고 자신감을 갖기만 한다면 영어도, 수학도 지금 못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닐 텐데 …….‘


그때,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었다.

학교는 문을 닫기 시작했다.

3학년이었던 우리 아이도, 1학년에 입학하는 둘째 아이도 1학기는 거의 학교에 가지 못했다.

‘아이의 사회성을 걱정해 비인가 국제학교를 택하지 않았던 것인데, 오히려 일반학교에서 등교하지 못하는 것이 장기화되면 사회성 문제는 더 심각해지는 것 아닌가, 지금이 옮겨볼 수 있는 기회 아닐까? ’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영어공부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았던 아이들에게 갑자기 영어로 미국식 수업을 받으라고 하니, 당연히 아이들은 반발했다.

“얘들아, 일단 한 달만 다녀봐, 한 달 다녀보고 너희가 싫다고 하면 엄마도 관둘게.”

아이들과 딜을 마치고, 우선 3개월 영어과외로 먼저 아이들을 준비시켰다. 적어도 읽을 줄은 알아야 하니 파닉스를 떼고 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겨우 파닉스를 뗐고, 한 달의 체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파닉스를 겨우 뗀 두 아이는 모두 1학년 교실에서 체험 수업을 받게 되었다.

3학년이어야 할 큰아이가 동생과 같이 1학년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느린 성향의 아이는 오히려 그것을 더 만족스러워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쉽게 학습하는 것이 더욱 마음이 편한 모양이었다.


한 달의 체험수업이 끝난 후 드디어 입학을 하느냐 마느냐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되었다.

그런데, 큰 아이의 표정이 굉장히 밝아진 것이 느껴졌다.

“엄마, 나 이 학교 다닐래”

내가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아도 이미 아이는 마음의 결정을 마친 상태였다.

무엇이 이 아이로 하여금 학교를 옮기고 싶다고 생각하게 한 것일까?

아이의 편안해진 표정을 보니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달의 체험수업 만으로도 큰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정식으로 입학을 결정하게 되니,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생겼다.

3학년인 아이를 이대로 1학년부터 시작하게 하는 것은 너무 늦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또래의 주변 아이들처럼 선행을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제 학년 과정으로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장 선생님은 아이의 영어실력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3학년은 무리이고, 1학년이 정 너무 늦다고 생각하면 2학년부터 다닐 수 있도록 해보자고 하셨다.

한 학년이라도 격차를 줄인 것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그렇게 되면 아이는 자기 또래 아이들보다 1년 반, 거의 2년 정도 늦게 되어 버린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무리하지 않는 것이 맞는데, 엄마로서 한 학년이라도 늦어진다는 것이 마음에 크게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한참 성장한 후를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 보면 지금은 1~2년이 크게 느껴질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1~2년 정도 늦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나 역시도 그러했고…….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아이의 속도에 맞춰서 가 보자.

그렇게 나는 아이의 다운그레이드 입학을 결정했다.


학교를 4년째 다니고 있는 우리 아이는 이번 여름방학에 5학년을 수료하게 된다.

공립학교에 같이 다녔던 친구들은 올 3월 동네의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중학생같이 쑥 자란 키를 보면 누가 봐도 5학년이라고는 할 수 없다.

1~2년 늦게 가는 것 괜찮다고 마음먹어왔는데, 막상 또래 아이들이 중학교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것을 보면, 이게 맞는 건가 싶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의 느리고 완벽주의 성향에 무리해서 학년을 올려 시작했으면 금방 포기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도 5학년 수업 과제를 꼼꼼히 해내느라 매일 밤늦게까지 고군분투 중인 아이인데, 두 개 학년을 높였으면 감당이 어려웠을 터이다.


  



요즘 시대에는 아이들이 배워야 할 지식의 양이 우리 시대보다 방대하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영어도 원어민 처럼 해야 하고, 수준 높은 한국어도 해야 한다. 수학은 계산만 잘해도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다 보니 아이들은 놀 시간이 없다.

이 많은 양을 놀면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충분히 놀면서 필요한 지식도 습득하려면 천천히 가는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 운운 하면서 더 어린 연령 때부터 학습을 주입하고 있다.


아이가 아이답게 충분히 놀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나는 아이들을 진짜 많이 놀게 했다.

잠깐 후회한 적도 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아이들이 배워야 할 양이 어마어마하기는 하기 때문이다.

놀 때 다 놀고, 그 많은 양을 소화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즐겁게, 꼼꼼하게 채워주고 싶다면 후행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중학교 수학 진도를 끝냈다는 것에 기뻐할 일이 아니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을 제대로 알고 넘어가는 것인지, 아니 1, 2 학년 것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결국 우리에게는 우리의 느린 아이들이 천천히, 많이, 견고하게 지식을 쌓아갈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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