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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투른 농부가 되었다

감자밭

by 무지개


겨울이 길었다. 겨울밤은 더 어두웠다.

우리 집은 대문이 없지만, 내 마음의 대문은 꼭꼭 잠겨 있었다.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내가 혼자 있다 보니 어쩌면 고독사도

나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어느 날, 뒷집에 사는 아저씨가 아기 강아지를 잔디마당에 데려와 내게 키우라고 하였다.

난 강아지를 싫어하는데~털이 있는 것도 싫고, 대소변 냄새도 싫어하는데 강아지를 키우라니,

예전에 시골에서 남편이 강아지를 키울 때도 냄새가 싫어서 밥 한 번 준 적이 없다.

그런, 나에게 뒷집 아저씨는 강아지를 놓고 갔다.

뒷집 사는 아저씨는 지금껏 집 앞을 지날 때 얼굴을 두, 세 번 본 사이라 거절을 못 했다.

시골은 그런 곳인가? 외딴집은 개가 있어야 한다며 두고 갔다.



그 후로, 어린 강아지 밥을 주기 위해 집 밖 마당을 한 번씩 나왔다.

‘다시 데려가라고 해야지’ 하며 말을 미루다가 딸이 강아지를 보더니 키우자 했다.

방학이 되면, 대학 기숙사에 있던 딸이 집에 오곤 했다.

딸은 털이 복슬복슬하다고 부드러운 털이 좋다며 ‘복실’이 라고 불렀다.

그렇게 복실 이는 나와 함께 시골 생활을 하였다.



겨울이 지나 끝날 것 같지 않던 추위는 나에게 봄을 느끼게 하였다.

복실 이는 따사로운 햇살이 좋은지 잔디 마당을 뒹굴다가 내가 앉은 곳에 다가왔다.

내 옆에 궁둥이를 대고 내가 응시한 곳을 같이 바라봐 주기도 했다.

복실 이가 놀던 잔디를 보니 초록색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잔디에 잡초가 듬성듬성 나고 있음이 봄을 말하고 있었다.

한발 한발 움직이며 잡초를 뽑고 봄바람이 부는 데로 내 마음도 맡겼다.



마당 끝 위치한 비닐하우스는 이곳저곳 찢긴 채 봄바람에 나풀거리고 있었다.

남편이 심어놓은 집 앞 소나무,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감나무, 포도나무 등이 ‘우후죽순’

이라는 낱말을 떠오르게 했다. 모든 건, 때가 있다.

비닐하우스 씌우는 일은 혼자 할 수 없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창고에 들어가 사다리와 전지가위를 들고 보기 싫게 올라오는 나무의 새순들을 잘랐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남편이 하던 행동을 따라 사다리 위로 올라가 뾰족 나온 순들을 잘랐다.

전지는 보기만 했는데 농촌 생활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봄이 되니 이곳저곳 일들이 지천이었다.

길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집은 과거 여름에는 물바다가 되곤 했었다.

그래서 남편은 마당에 잔디를 심고 마당 주변은 수로를 만들어 물길을 터줬다.

그 수로 안에 수련과 창포를 심었는데 창포잎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수로 주변의 언덕은 어느새 잡초들이 무성했다.

해만 뜨면, 앉아서 날마다 호미를 들고 잡초를 뽑았다.

잡초가 없어지니, 언덕은 까까머리 민둥산처럼 썰렁했다. 꽃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잡초가 나지 않도록 시장에서 꽃잔디와 송엽국 모종을 사서 언덕에 심었다.

시장에 간 김에 각종 상추, 토마토, 가지 고추, 수박 참외 등 모종도 사 와 빈터에 심었다.

그 봄 첫 작물들은 서리를 맞아 모두 시들어 수확을 못 했다.

그때는 몰랐다. 음력 4월이 지나 심어야 냉해 피해가 없음을~


딸이 좋아하는 감자도 집 옆의 밭에 심었다.

남편이 하던 대로 혼자서 삽으로 도랑을 파고 두둑을 만들어 감자를 심고 비닐을 씌웠다.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다니’하고 생각했다.

‘내 몸에는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었나 보다.’ 생각하며 감자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기다림이 생겼다.

그렇게 내 몸의 봄 밭은, 농부의 마음으로 새싹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20240707_151231.jpg 봄의 정원
Screenshot_20250716_075114_Gallery.jpg 여름의 정원




“후일담” 뒷집 아저씨가 강아지를 보낸 것은, 늘 표정 없이 혼자 살고 있는 것이 불안해 보였다고 한다. 불 꺼진 앞집을 보니 그때의 내가 멀리 갈 것처럼 위험해 보였다고

아저씨는 세월이 한참 지나 “사람이 됐다.” 웃으며 이야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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