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별정리

유품

by 무지개

‘이제는 인사해야지’ 마음을 굳게 먹고,

옷장을 열어 유품 정리를 했다.

20인치 캐리어에 담을 만큼 옷의 양이 적었다.

또 주저앉아서 울었다.


남편이 보물처럼 좋아한 하우스 창고를 열어 보았다.

온갖 농기구와 연장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 연장들로 시골집을 수리했나 보다.’

흔적이 남아있는 주인 잃은 연장들을 보니 가슴이 먹먹하고, 이상하게 힘이 빠졌다.

평상에 앉아 1톤 트럭 3대의 분량이 외부로 나가는 것을 덤덤하게 바라봤다.

‘늘 분주했던 사람’ 멀어져 가는 트럭을 보면서 생각하였다.

허무함이 밀려왔다.


“이 결혼 반대다.” 친정아버지의 말씀이었다.

“그 사람은 밥과 일밖에 몰라”

그때는 몰랐다. 나는 외로웠다.

일이 우선이었던 사람, 가난을 무척 싫어했던 사람,

남을 위해 배려만 한 사람이었다. 모두 ‘아까운 사람’‘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뒤돌아보면, 사는 동안 ‘노~우’라는 말을 잘 안 했다.

적극적이고 유머를 아는 사람이었다.

사회에서는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성실함과 책임감이 있는 능숙한 일꾼으로 인정했다.

늘 사람을 좋아했다. 부지런함은 가족에게도 궁핍함을 못 느끼게 하고 풍족함을 주었다.

평상에 앉아 ‘지금 나는 꿈꾸고 있어. 조금만 있으면 깰 거야’라고 생각했다.



시골집 다락방을 여니 오래된 상자 안에는 청춘이었던 군대 시절 사진이 있었다.

살면서 군인이었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하였었다.

그때는 흘려듣곤 하였는데...

색 바랜 봉투를 열어보니 안에는 편지글이 보였다.

후임들이 쓴 글이었다. 군대 생활이 어려워 탈영하려는 후임을 남편이 다독여

군 생활을 잘 적응해 가는 일화가 적혀 있었다.

‘남의 아픔을 넘기지 못하고 형처럼 돌봐 주었나 보다. 그래서 청춘이 좋았나 보다.’라는 생각이 드니

오롯이 가장의 짐만 맡긴 내가 미워졌다.


이제는 정말 이별해야 했다, 마음을 다잡고 서류 정리를 하였다.

가족관계 증명서엔 가족 수가 3에서 2가 되었다.

상속도 진행하였다.

늘 입버릇처럼 “자식에게는 가난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

남편의 뜻대로 나보다는 자식이 더 오래 살 터이니 작지만, 유산은 자식에게 모두 양도하였다.


다음날은 딸과 함께 추모 공원을 갔다.

가는 동안 딸은 일부러 음악을 크게 틀었다.

“엄마 울어?” 딸이 힐끗힐끗 보며 물었다.

꼭대기에 있는 추모관 사진 속의 남편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오늘부터는 안 울어야지. 앞만 보고 살 거야!’ 여러 번 다짐하며 추모글을 남겼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어.아프지 말고, 그곳에서는 당신을 위해서만 살아! 걱정 내려놓고, 편히 쉬어 사랑해!”


돌아오는 길은 운전을 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

딸은 계속 말을 걸며 내 눈치를 살폈다. 계속 울기만 한 엄마가 싫었나 보다.

딸은 말했다. “난, 이제 안 오고 싶어! 다음에는 나한테 가자고 하지 마.”


그렇다, 딸은 세상 다정한 아빠를 보낸 것이었다.

keyword
이전 01화하늘로 이사한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