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불렀던 '숙자누나'

숙자누나

by 무지개

“멍멍멍 멍멍” “부릉부릉”“두두두두 턱” “집에 있어?”

눈을 비비고 옷을 주섬주섬 걸치면서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니 오토바이 한 대가 보인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정적을 깨우며 야단법석인 강아지들의 흥분을 달래면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고 자세히 보니 ‘숙자 누나’이다.

농사일로 따가운 햇볕을 가리기 위해서 수건과 마스크가 붙어 있는 듯한 모자를 꾹 눌러쓰고 보일 듯 말 듯한 눈으로 바라보며 “집에 있었구먼! 한번 들른다고 들른다고 하면서도 일이 바쁘다 보니 이제 오게 되네~”

나는 순간 의아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집은 마을과 떨어진 조금은 외딴집이다.

주변에 논과 밭이 많아서 농사를 지으려고 트랙터나 경운기가 지나다니기는 하지만,

농사를 크게 짓지 않는 나는, 음악을 듣거나 마당 비슷한 정원을 가꾸며 하루의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마을과 왕래하지 않으므로 나를 일부러 찾아서 오는 이는 나와 약속된 외지인 말고는

마을의 회의일로 찾아오시는 이장님뿐이다.



“준다~준다. 하면서도 이제 가져왔네” 하고 오토바이 뒤의 자석에서 부스럭거리며 만지작거리니

김치통에 담겨 있는 노~란 된장이 정갈하게 담겨 있다.

김치통 뚜껑을 열자마자 된장이 구수함을 뱉어 내면서 파~란 풋고추를 떠오르게 하였다.

“아니, 이 귀한 것을”

“올해는 여기 주려고 좀 넉넉하게 담았어. 그런데도 자식 주고 형제 간들 주다 보니

많지가 않아.” 하여 바라보니 김치통에 담겨 있는 된장의 양은 적지 않은 양이었다.

나는 허둥지둥 고마움에 당황해하는데 숙자 누나가 먼저 말했다.

“나, 저기~~ 금잔화 몇 가닥 뽑아줘 지나갈 때마다 예쁘던데 마당 모퉁이에 심게.

작년에 꽃 몇 개 심었는데 은지 아빠가 다 뽑아버렸어.”

이 말을 들으니 순간 숙자 누나의 소녀 같은 마음도 느껴졌다.

허둥지둥 금잔화 꽃을 뽑아 오토바이 뒤에 실어주었다.

이번에는 아저씨가 뽑지 않고 여기서 보았던 꽃이 내년에는 숙자 누나의 마당에도 가득 피어 있기를 바라며 숙자 누나의 삶을 생각하여 보았다.

아저씨는 빈터만 보면 씨를 뿌리는 그야말로 농부이다.


‘숙자 누나’는 남편이 불렀던 호칭이다. 나는 아주머니로 부른다.

왠지, 남편이 부르던 호칭은 정감이 가고 숙자 누나와 어울린다.

그 아주머니의 과거도 성향도 모른다. 60을 바라보는 나와 70을 바라보는 사이다.

과거에 알았다면 ‘언니’라고 불렀을 것 같다.

남편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숙자 누나와 아저씨는 한 동네서 자라며 어린 시절부터 어울리다가

결혼하여서 농사를 지으신 고향 토박이라고 하였다.


아침 일찍 강아지와 산책하다 보면, 이슬이 마르기도 전 밭에 곡식을 심거나 쪼그리고 앉아서 무엇을 하던

아주머니는 참 부지런하다. 해가 다 넘어간 어스름한 저녁에도, 혼자 밭에 계시던 숙자 누나를 보고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해도 못 들을 때가 많다. 목소리를 크게 서~너~번 “안”“녕”“하”“세”“요”? 하면

그때 서야 “어 ~집에 있으면 은지 아빠가 잔소리를 하도 하여서.”하고 묻지도 않는 말을 흘리며 멋쩍게

웃으시곤 했다.


20년 전쯤일까? 나와 숙자 누나와의 인연의 시작은,

내가 학원을 하고 있을 때 아주머니의 딸 은지는 많은 학원생 중 한 명이었다.

남편과 한 동네 산다는 이유로 시골에서 시내에 있는 우리 학원까지

그 아이를 데리고 5년을 등, 하원을 했었다.

처음 등록을 위해 상담하던 날, 나는 항상 바빠서 사무실 모퉁이 주방에 늘 설거지가 놓여 있곤 했다.

그날도 설거지가 싸여 있었는데 상담을 기다리던 숙자 누나는 그 설거지를 말끔하게 정리를 하고 있었다.

“학부모님이신데~”하며 극구 말려도 “아무나 하면 어때 한가한 사람이 하면 되지.”라고 말하며

지금처럼 넉넉한 웃음을 주었던 숙자 누나는 긴장된 내 마음을 내려놓게 하였다.


그 시절 설거지하던 뒷모습을 기억하면 그땐 큰 소리로 이야기를 건네지 않아도

내 이야기에 답을 해주셨는데~

입소를 한 날, 남편을 통해 들은 사연은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숙자 누나의 딸 ‘은지’는 누나가 아이를 갖지 못하여 입양한 아이이며 미숙아로 태어나서

몸이 약하니 무척 애지중지하므로 나에게 특별히 더 관심과 애정을 보여 달라고 남편이 부탁했었다.

야리야리한 몸으로 병원도 많이 다니고 결석도 많이 했지만 늘 선한 웃음을 머금은 아이였다.


나는 가끔, 정서적 결핍으로 안정을 찾지 못한 입양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

그때 상담하며 받아 두었던 숙자 누나의 전화번호는 지금도 저장되어 있어서 카톡에 올라와 있다.

그 카톡 사진에는 너무나도 예쁘게 잘 살아가고 있는 그 아이 은지 가 있다.

은지와 닮은 듯한 남편과 두 자녀 그리고, 서로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는 은지네 가족,

사진 속 그 아이의 웃음은 숙자 누나의 거울 같다.


지금 생각하여 보면, 어느 해 추운 겨울날,

남편의 사망 신고 후 동사무소 벤치에 혼자 앉아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울고 있을 때,

화장지를 넌지시 주었던 사람. 아무 말 없이 무릎에 놓인 내 손에 손을 포개며 등을 토닥여 주었던

그 사람이 숙자 누나였다는 것을 겨울이 몇 번이 지난 후에 알았다.


내가 살아내고 있는 인생 여정 중에 만난 고난의 파도 속에서,

한 번의 파도는 숙자 누나의 구수함이 함께 하였다. 는 생각을 지금은 하곤 한다.

이제부터는 숙자 누나처럼, 지금도 미래도 아픔의 파도를 넘고 있는 주변에 내 위치에서

내 나름 만의 색깔과 향기로 따뜻함을 전해주려는 노력을 해보려고 한다.


지금은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나는 한 번 더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사실은 나도 된장을 담았지만 숙자 누나의 된장은 더 구수하다.

올해는 유난히 무더운 여름을 밥상에 된장 하나로 숙자 누나의 마음을 음미하며 보냈다.

얼마 남지 않은 명절에는 숙자 누나의 수줍은 듯한 웃음이 닮은 볼그스레한 복숭아를

선물로 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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