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법칙
해가 바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해는 바뀌지 않고 있었다.
가까이 사는 이웃이 비어 있는 땅이 아까운지 농기계로 밭을 갈아 주었다.
몇 달 동안 난, 외출도 하지 않고 밭에 마늘, 양파, 참깨, 고추, 들깨, 고구마 심기 등
남편이 했던 과정들을 흉내 내며 천천히 농부가 되어 갔다.
남편의 고향은 냉정함과 따뜻함이 공존했다.
여자 둘이 사는 울타리가 없는 집의 현실이 타인들에게 보였나 보다.
남편이 있을 때와는 달리 마을 사람들과의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날이 갈수록 크게 느껴졌다. 아니, 시골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아직 젊은데 새로 시집가"라는 말을 불쑥하시고, 나를 이방인으로 대하기도 하였다. 어떤 마을분은 지금 살고 있는 시골집을 자신에게 달라고도 하였다.
어떤 이웃은 직접적으로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남편의 유산 중 문중의 땅 소유 지분이 있었다.
문중 땅을 이전하는 과정 중에 마을 어른은 나의 얼굴을 빤히 보며 “대가 끊겼구먼!” 하였다.
난 자식이 있는데...
가슴에 대못이 박혔다.
울타리를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집 주변에 대나무를 꺾어 울타리를 했다.
뻥 뚫린 집의 처마 밑도 창틀을 달고 현관문을 만들어 비밀번호를 설정하였다.
집안에 넓은 베란다가 만들어졌다.
딸도 좋아했다.
엄마가 혼자 있어도 불안하지 않고 방학에 혼자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좋다고 했다.
그래도 따뜻한 마음들이 많아 나를 버티게 했다.
친정 부모님은 날마다 전화를 했다.
남편의 형제들도, 시골 생활이 걱정되었는지 돌아가며 안부를 물었다.
경기도에 거주한 친구는 저녁마다 전화를 해 주었다. 그 친구는 일을 잘했다.
전화 도중 비닐하우스에 관해 이야기하자 내가 사는 지방으로 달려와
찢어진 비닐하우스를 함께 씌어 주었다.
가까이 사는 친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주말마다 놀러 와서 반찬을 함께 만들었다.
이웃 도시에 사는 친구는 쉬는 날 불러서
나의 넋두리를 공감하며 집밥을 하여 주었다.
어느 날 문득, 밭모퉁이에 남편이 모아둔 돌과 펜스가 생각이 났다.
‘집 주변에 담을 쌓으려 하였나?’ 생각하고 굴착기를 불러 돌을 언덕에 쌓았다.
밭에 있는 펜스는 집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옮겨 놓았다.
주춧돌이 붙어 있는 무거운 기둥은 나의 힘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주춧돌을 옮기며 길에 주저앉아 그냥 “엉엉” 울었다.
눈물이 마른 것 같았는데 알 수 없는 온갖 설움들이 밀려와 땅바닥에 앉아 그저 울었다.
울고 나니 정신이 맑아졌다.
큰 어른이 주저앉아 우는 것이 안쓰러웠을까?
경운기를 몰고 지나가던 마을 어른은 말없이 펜스를 들어 옮겨 주었다.
펜스를 치며 나는 생각했다 ‘친구 대하듯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나를 스스로 가두고 있었다.
혼자 할 수 있을 거 같지만 지금의 내가 있는 것, 누군가 옆에 있었다는 것
인정하기 시작하니 나의 해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웃이 온전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