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뿐인 중년, 허투루 살지 말자

중년 인간이야기

by 생각하는 프니

카카오톡으로 결근이나 퇴사 통보하거나 무단 퇴사 하는 직원을 봤을 때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 사람만의 사정이 있겠지.


똑같은 일이 뉴스에 나고 주변에 그런 경우가 많다더라는 말을 들으며 세상이 달라지는 건가 싶습니다.


병원에 드러눕지 않은 이상 회사는 나가야 하고, 쓰러지지 않는 이상 일해야 한다는 생각은 고리타분한 옛날 얘기인가 봅니다.


'아프니까 청춘'은 '아프니까 환자'이며,

젊어서 고생을 사서 하다가는 늙어서 골병든다로 인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자낳괴'라는 말이 유행한다는 말이죠.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란 뜻입니다.


인터넷 방송에서 이익을 위해 도를 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것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올라 이젠 일상 상황에서 농담처럼 사용합니다.


'자신의 신념도 돈 앞에서는 바꿀 수 있는 사람'

'돈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

'돈 앞에서 빠른 태세 전환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하지만 나를 소진하면서까지 일하고 싶진 않습니다.


반면에 자본주의 앞에서는 신념이고 뭐고 없습니다.

이 둘의 애매모호한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지금의 중년은 '아프니까 청춘'의 시절을 견뎌왔습니다.


열정 하나만으로 꿈을 키워가던 청춘이 성공하는 모습을 부럽게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취업했고, 이왕 할 거면 열심히 하자였습니다.


지금 청년 세대는 하고 싶은 일이 없습니다.

먹고는 살아야겠는데 싫은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청춘은 인생에 딱 한 번뿐이고, 원치 않은 일로 자신을 소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중년의 모습에 희망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먹고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묵묵히 해왔지만 그 끝에 남는 건 꼰대입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하는데 여전히 먹고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기성세대를 보며 미래 자신의 모습일지 모른다며 절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중년이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꾸는 설렘이 특정 시기의 특정 세대만의 특권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세상이 좋아졌다는 건 살기 편해졌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앞선 세대가 중년의 위기를 겪으며 늙어가는 모습을 보였다면 우리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중년도 꿈꿀 수 있습니다.

중년이라 불리는 시기도 정해져 있습니다.


인생에 한 번뿐인 중년,

번아웃에 찌들어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5년 10년 후의 목표를 설정해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꿈을 향해 차곡차곡 걸어가는 그 과정에서 삶의 기쁨과 설렘을 복구할 수 있습니다.

중년은 중년의 청춘이 있습니다.


'어떻게?'라고 물을 게 아니라 '무엇을' 할지 먼저 찾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시작한다면 그 길이 중년의 청춘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길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