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중년이란 말에 기뻐하겠습니까
중년인간이야기
물리적 성장은 20대에 끝난다는데 희한하게 얼굴은 자랍니다.
골격이 커진 건지 나이 들수록 얼굴이 넙데데해집니다.
생김 가지고 뭐라 할 처지가 아니니 긴 말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다만 얼굴이 커지고 이마와 눈가에 주름이 지는 사이 정신도 성장하면 좋겠지만 꼭 비례하진 않습니다.
앞자리 숫자가 바뀔 때마다 정신도 같이 세팅되면 좋겠는데 육체적, 법적 나이는 변해도 마음은 멈춰있습니다.
20대, 30대 언저리 한 시점에 말이죠.
인터넷 회원가입할 때 생년월일을 기입합니다.
연도가 나오는 항목을 찾습니다.
예전엔 손가락 한번 휘리릭 하면 나왔는데 지금은 서너 번 돌려야 나옵니다.
그때 나이를 절감합니다.
매년 새해 아침이면 '올해 몇 살이지?'떠올립니다.
그 순간이 지나면 나이를 말할 때가 별로 없습니다.
아니 외면한다가 맞겠죠.
행정 업무를 하러 관공서에 가거나 만 나이를 말해야 될 때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나이의 무게를 느낍니다.
'나는 중년이구나!'
'청춘'이란 말에서 느껴지는 설렘은 더 이상 없습니다.
세상 어느 누가 '중년'이란 말에 기뻐하겠습니까?
'중년'이란 말에 설렘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우리 윗세대를 봅니다.
60,70대의 어르신 중에 '젊은 청춘'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글을 배울 기회가 없던 어르신들이 글자를 배우고 시집을 냅니다.
노인 시인, 혹은 노령 시인이란 말도 새롭습니다.
가장 성공한 노인 작가라고 하면 일본의 시바타 도요 시인이 있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던 시바타 도요는 90세에 아들 권유로 시 쓰기를 시작합니다.
장례비로 모아둔 100만 엔으로 98세에 <<약해지지 마>>를 출간합니다.
일본에서만 무려 1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이뤘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중년의 설렘을 찾고 싶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세파에 휘청이는 삶 대신 정신을 오롯이 세우고 성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청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년이 새로운 시작, 제2의 인생꽃을 피울 수 있는 첫 계단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