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인간의 이야기를 씁니다.

중년인간이야기

by 생각하는 프니

"다 늙어서 앞으로 놀 날이 얼마 없을 거 같아서 사지 멀쩡할 때 놀라고 그랬어 왜~!


내 인생에 봄이 몇 번이나 올것 같애?

몇 번이나 올지 당신 알어?

나 몰라~ 당신이나 나나 언제 어떻게 될지 아냐구!


봄바람 날 날이 얼마 없을 거 같아서 원없이 한번 실컷 놀아보고 그럴려고 그랬어, 왜 그래, 왜?"


예전에 인기리에 방영됐던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91화, 배우 나문희의 명대사입니다.


명품 배우의 목소리 지원이 되는 듯, 사실적인 대사 때문에 지금 봐도 찡합니다.



공원을 걸으며 징글징글하게 퍼져있는 강아지풀을 봅니다.

아침 저녁으로 춥다 여겨질 이 즈음이 그들의 마지막 피날레인가 봅니다.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사건사고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였을 수도 있다.'


어제 죽어간 사람은 알았을까요?


찬 바람 불기 시작할 때 강아지풀이 미치도록 지천에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겨울 초입 같은 쌀쌀한 새벽,

해뜨기 전 하늘에 구름이 시시각각 다른 모양으로 빠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한 시간 지나면 그 구름들 어딘가로 사라지고 청록빛 파랑과 스카이블루 파랑으로 하늘이 채워진다는 사실을.


전 처음 알았습니다.


햇살이 세상을 비추기 시작할 때 출근해 어두워지면 집에 오는 생활을 계속 했습니다.


주어진 24시간 중 내 의지대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1-2시간정도,

그시간마저 피곤에 절어있습니다.


폭염이란 말이 무색하게 여름은 가버렸고 쓸쓸한 낙엽이 길가를 뒹굽니다.


수십 번의 가을을 거쳐오며 알게 됩니다.


가을은,

몇 번의 주말을 거치다보면 어느새 사라집니다.

트렌치코트 꺼내 입는 순간을 제외하고 제대로 느껴보기 전에 가버립니다.


곧 추운 겨울이 올 것이며 손꼽아 기다리는 몇 번의 주말을 거치면 올 한해가 다 가버린다는 사실.


가을이 슬픔의 계절인지 기쁨의 계절인지 가슴으로 안아보지 못한 채 흘려보낼거라는 사실.


브런치스토리에 올라오는 가을 풍경 담은 사진 몇 장으로 이 가을을 넘겨버릴 거라는 사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거울 속엔 지울 수 없는 주름을 간직한 중년 인간이 서 있습니다.



올해는, 이번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봄 볕엔 며느리, 가을 볕엔 딸 내보낸다'할 만큼 눈부신 가을 햇살을 즐겨봅니다.


썬크림 처덕처덕 발라 뿌예진 얼굴 들이밀고 한낮에 공원을 거닐어봅니다.


절로 미소짓게 해주던 꽃은 다 사라지고,

마른 풀잎으로 쌓여가는 바깥 세상을 돌아보며 40대의 인생을 곱씹어봅니다.


목이 칼칼해지도록 하루종일 커피를 달고 살지만 글 쓰는 달콤한 여유를 갖습니다.


내 나이 몇 개? 따위 잊은 채 소소한 가을 정취를 가슴 가득 안은 감성충만 인간이 되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