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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결말이 극과 극인 역사의 에피소드 하나

생각하는 프니 에세이

by 생각하는 프니

좋아하는 추리 소설 작가라면 엘리스 피터스 Ellis Peters, 1913~1995)가 있습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유명합니다.

슈루즈베리 성의 수도원에서 약초를 다루는 업무를 전담하는 수도사입니다.


바깥세상에서 온갖 풍파를 겪고 늙은 나이에 수도원으로 들어온 캐드펠은 풍부한 세상 경험과 냉철한 이성으로 많은 사건을 추리해 냅니다.

12세기 영국이 배경이고 왕권다툼으로 전쟁이 일상인 시대입니다.


금욕적이고 엄격한 규율을 따라 운영되는 수도원의 일과가 인상적입니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 캐드펠은 사건 추리를 핑계로 적당히(?)유연하게 처신합니다.


계절마다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장면이 매우 정겨운 풍경으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내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오늘의 아군이 내일은 적군이 되는 시대에도 수도원에서의 삶은 하루하루 평온하게 흘러갑니다.


우연히 책을 읽다 수도원에 관한 내용을 발견합니다.

자급자족이 목표인 만큼 모두가 합심하여 노동합니다.

고된 노동은 금욕의 수단이기도 하고 복종의 정신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규율화된 노동이 노동 자체의 가치를 높였고 다양한 농업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수도원에서의 노동은 생각지도 못한 기묘한 역설을 불러왔다.


예수의 가난한 생활을 따르는 수도자들이 모인 수도원에서 영혼의 구원을 목적으로 행해진 노동이 본래 의도와는 달리 부를 창출한 것이다."

(<<밥벌이는 왜 고단한가?>> p72, 나카야마 겐 지음, 최연희, 정이찬 옮김, 이데아>>


자체 노동력으로 얻은 잉여 생산품은 다른 수도원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했고,

막대한 기부로 운영되는 수도원의 규모가 커지면서 큰 부를 축척합니다.


종교적 삶에 헌신한 수도자가 속세에서 벗어나 홀로 은둔생활을 하다가 모인 공동체가 수도원입니다.

최초의 의미는 금욕적이고 청빈한 삶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엄청난 부의 축적이 이뤄집니다.


물론 캐드펠 시리즈의 슈루즈베리성에 있는 수도원은 청빈한 곳입니다.

수도원 이야기가 나오면서 예전에 읽었던 유명한 추리소설의 매력적인 주인공이 떠오릅니다.

아울러 시작과 결말이 극과 극을 달리는 역사의 아이러니한 에피소드 하나를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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