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프니 에세이
"책이란, 나의 시간을 졸여서 파는 것.
시간을 들여 정립한 것을 압축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그것을 활자로 바꿔 종이에 얹어 파는 거죠."
(<<인생의 해상도>>중 p198, 유병욱, RHK)
'졸여서'라는 단어에서 영화 한 편이 떠오릅니다.
배우 김태리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입니다.
지친 삶을 편안하게, 가슴 밑바닥까지 따듯하게 정화시켜 주는 요리가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레시피가 있습니다.
바로 '밤조림'입니다.
밤을 물에 불려 딱딱한 겉껍질을 깝니다.
물에 오래 삶아 연해진 밤의 율피(속껍질)에서 단단한 심지를 하나하나 벗겨냅니다.
다시 설탕을 넣고 졸여냅니다.
정성으로 먹는 요리입니다.
나는 내 삶을, 내 인생을 잘 졸여내고 있을까?
설탕을 넣어 제대로 달달한 맛을 내고 있을까,
삶을 때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짠맛투성이 일까,
아무것도 넣지 않아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밍밍한 맛일까,
심지 제거하는 것을 깜빡해서 온통 쓴 맛일까,
덜 익혀 딱딱한 채로 먹어야 할 맛일까...
중년이 되면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나이입니다.
졸여낸 내 삶이 어떤 맛을 내고 있는지 생각합니다.
혹시 제대로 된 맛이 아니라면 아직 바꿀 수 있습니다.
밤조림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입니다.
인생 요리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정석 레시피가 있지만 손맛은 제각각입니다.
다른 사람의 레시피대로 살 필요는 없습니다.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