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기회의 신이 한 번 더 방문할지도 모릅니다
생각하는 프니 에세이
"나도 젊었을 때는 대문에서 벨이 울리기만 하면, '아, 무슨 수가 있으려나 보다'
라고 기대했었지만,
나이를 먹어 인생의 진상을 알게 된 후로는 똑같은 벨소리가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
'아, 무슨 골칫거리라도 생겼나?'
하고 혼잣말을 하게 되었다."
(<<쇼펜하우어 인생 편의점>> 중 P223,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문성, 스타북스)
쇼펜하우어가 살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으니, 대문 벨소리가 모든 소식의 전달통로였을 겁니다.
대문 벨소리를 휴대폰의 진동소리 혹은 카카오톡 알림 소리로 바꾸면 공감가는 글입니다.
누군가의 전화나 문자, 톡을 설레며 확인한 적은 줄고, 골칫거리를 먼저 떠올린 적은 많습니다.
한 번쯤 궁금합니다.
인생에 기회가 세 번은 온다는데 중년이 된 이 시점에 그 세 번을 다 써버렸을지 말이죠.
마음 같아선 마지막 한 번이 남아있길 바랍니다.
기회가 몽땅 남아있으리란 욕심은 부리지 않습니다.
그저 한 번의 기회만이라도 남아 있기를.
나머지 인생 절반의 삶을 위해서 말이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카이로스 Kairos는 제우스의 막내아들이자 '기회의 신'으로 불립니다.
생김새가 기이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앞머리는 길게 늘어뜨립니다.
대신 뒤통수는 민머리입니다.
두 손에는 각각 저울과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발에는 각각 날개가 달려있습니다.
앞머리가 긴 이유는 기회가 다가올 때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혹시 알아차렸다면 재빨리 머리카락 끝을 잡아채야 합니다.
지나가버리면 민머리인 뒤통수를 멍하니 바라만 봐야 하기 때문이죠ㅣ
손에 든 저울은 기회가 왔을 때 정확히 판단하라는 의미이고, 칼은 결단력을 말합니다.
두 발에 달린 날개로 빨리 사라져 버릴 테니까요.
기회와 함께 늘 따라붙는 이야기가 '미리 준비해 놓는 자'입니다.
카이로스가 문을 두드렸는데 '나 지금 바빠!'라며 뒤도 안 돌아보고 돌려보내선 안 됩니다.
준비된 자는 카이로스가 떠나기 전에 붙잡습니다.
해놓은 게 없는 사람은 기회의 신이 친히 문 앞에 와서 두들겨도 못보고 지나칩니다.
그리고 원망하겠죠.
기회의 신이 오지 않는다고.
한 우물만 파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 여러 개의 우물을 파놔야 합니다.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 기회의 신이 대문에 다가와 벨을 누를지 모릅니다
벨소리에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기대감을 갖는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가올 카이로스를 위해 '준비된 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