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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Aug 14. 2024

INFJ는 취향을 위해 떠날게요.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브로마이드라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명한 연예인 잡지를 보며, 엠넷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진행되는 아이돌 프로그램을 보는 게 하나의 "멋"이었던 150CM도 안 되는 무리 사이에서 내가 가진 취향은 비웃음 당하기 알맞은 요소였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오래된 무리에서 벗어나며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형성된 집단에 소속되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학생들이 견디다 못해 자퇴서를 써버릴 정도의 굉장히 엄격하고 규율단속이 높은 학과였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쓴 군대식 다나까를 고치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2년이 걸릴 정도였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학생의 인권이라는 건 찾을 수 없었지만 그 차가운 현실 덕분에 서로가 빠르게 공동체 생활에 녹아들었다.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나의 취향이 확고해질수록 나의 곁에 머무는 사람들 또한 달라졌다. 서로의 취향들을 인정하고 공유하는 호의적인 태도를 가진 친구들이 주는 사랑을 받아먹으며 학창 시절을 버텼다. 대학생이 된 이후 지금처럼 과학처럼 여겨지는 것이 아닌 그저 지나가는 심리테스트처럼 도입된 MBTI 테스트를 해보았다.




"인구의 몇 퍼센트 되지 않는다."

"다수와 대화하기보다는 소수의 1:1로 대화하길 좋아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15분 만에 나라는 사람을 깔끔하게 텍스트로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그 알파벳에 벗어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내향성과 함께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스스로 맞다고 생각했던 학과의 현실은 어두웠고 아무도 나의 존재를 모르고 나를 알리지 않아도 되는, 거리가 유지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애당초 그런 일이 존재할까라며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삶의 권태감에 이기지 못해 학교도 가지 않고 무작정 혼자 후쿠오카로 떠나버렸다.




모든 관계들과 떨어져 있는 유후인의 거리를 걸으며 문득, 일본에서 살아가는 나의 삶이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남몰래 빠져들었던 일본문화 덕분에 고등학교 제2외국어인 일본어 성적은 꽤나 괜찮았다는 사실과  나의 취향의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의미를 부여하며 기회가 찾아왔다고 직감했다.


아무도 날 모르는 곳으로 가자.
그곳에서 나의 취향으로 새로운 삶을 구축해 보자.

젊고 어린 날의 패기는 적어도 미래를 향한 수많은 걱정 중 하나는 덜어주었지만, 가장 나를 막아서는 문제는 부모님의 허락이었다. 보수적인 경상도의 딸로 태어나 휴대폰 검사는 기본으로 연애조차 꿈도 꿀 수 없는 집안에서 그리 쉽게 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사실 어떤 말보다 무서웠던 것은 내가 가진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말들의 무게였다. 일단, 내 실력을 증명해 보이고 말해보자! 대략적인 자격조건은 모두 갖춰질 수 있었고,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언어였다.



"일본만화 좀 봤다 하면 누구든지 일본어 정도는 금방 마스터할 수 있어!”

"오타쿠는 이길 수 없어”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어느 정도 계실지도 모르겠다. 사실 스스로도 어느 정도 그 분류에 속해있고 도취해 있던 사람으로서 현실이라는 회초리가 얼마나 아픈지는 결국 맞아봐야 아는 것이다. 애당초 낯선 사람과 말을 섞기는커녕 개강날 청심환을 먹는 내가 외국 사람과 소통하며 일을 한다는 것부터 기적이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나”가 아닌, 내가 "상상한 나"의 미래를 착각하고 있었다.


그곳으로 간다면, 난 분명히 거대한 사람이 되어있을 거야. 그렇게 당당하게 내뱉을 수 있는 자신감 안에 은밀하게 내포되어 있는 탁하고 낮은 자존감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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