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브로마이드라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명한 연예인 잡지를 보며 엠넷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진행되는 아이돌 프로그램을 보는 게 하나의 "멋"이었다. 150cm도 안 되는 무리 속에서 내가 가진 취향은 비웃음 당하기 알맞은 요소였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오래된 무리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형성된 집단에 소속되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학생들이 견디다 못해 자퇴서를 쓸 정도로 엄격한 규율의 학과였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익힌 군대식 '다나까' 말투를 고치는 데 성인이 되어서도 2년이 걸릴 정도였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학생의 인권이라는 건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 차가운 현실 덕분에 우리는 빠르게 공동체 생활에 녹아들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내 취향이 더 명확해질수록 내 곁에 남는 사람들 또한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고 함께 나누는, 진정으로 열린 마음을 가진 친구들의 사랑을 받아먹으며 학창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된 후, 지금은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린, 한때는 단순한 심리테스트로 여겨졌던 MBTI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 인구의 몇 퍼센트 되지 않는다.
- 다수와 대화하기보다는 소수의 1:1로 대화하길 좋아한다.
-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15분 만에 나라는 사람을 깔끔하게 텍스트로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그 알파벳에 벗어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내향성과 함께 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적성이라고 믿었던 학과의 현실은 내 그림자처럼 어두웠고, 아무도 내 존재를 모른 채, 나 역시 스스로를 알리지 않아도 되는 일—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 일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에 빠져,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삶의 권태감에 휩싸여 결국 학교를 등지고 무작정 혼자 후쿠오카로 떠나버렸다.
모든 관계들과 떨어져 있는 비에 젖은 유후인의 거리를 밟으며 문득, 이곳 일본에서 살아가는 내 삶이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남몰래 빠져들었던 일본 문화 덕분에 고등학교 제2외국어인 일본어 성적은 꽤나 괜찮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나의 취향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왔다는 직감을 했다.
아무도 날 모르는 곳으로 가자.
그곳에서 나의 취향으로 새로운 삶을 구축해 보자.
젊고 어린 날의 패기는 적어도 미래를 향한 수많은 걱정 중 하나는 덜어주었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부모님의 허락이었다. 보수적인 경상도의 딸로 태어나 휴대폰 검사는 물론, 연애조차 꿈도 꿀 수 없는 집안에서 그리 쉽게 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사실 어떤 말보다 두려웠던 건 내가 가진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말들의 무게였다. "일단 내 실력을 증명해 보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자격 조건은 대체로 갖출 수 있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언어였다.
"일본만화 좀 봤다 하면 누구든지 일본어 정도는 금방 마스터할 수 있어!”
"오타쿠는 이길 수 없어”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어느 정도 계실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 역시 어느 정도 그런 분류에 속했었고, 도취해 있던 사람으로서 감히 말씀드리지만, 현실이라는 회초리가 얼마나 아픈지는 결국 맞아봐야 아는 것이다. 애당초 낯선 사람과 말을 섞기는커녕 개강날 청심환을 먹는 내가 외국 사람과 소통하며 일을 할 거라니, 그때의 나는 "나"가 아닌, 내가 상상한 나의 모습을 착각하고 있었다. 그곳으로 간다면, 난 분명히 거대한 사람이 되어있을 거야. 그렇게 당당하게 내뱉을 수 있는 자신감 안에 은밀하게 내포되어 있는 탁하고 낮은 자존감의 존재를 깨닫게 된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