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했던 도쿄의 아침에 느직느직 무거운 눈꺼풀 셔터를 올린다. 빛이 쏟아져 내리는 커다란 창문으로 향한다. 경쾌하게 울리는 딸칵 소리는 오늘이라는 이름의 마라톤의 시작을 알리는 스타팅 피스톨이다.
도쿄라는 땅을 밟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이번주만큼은 여행하러 온 관광객인 것 마냥 여러 곳을 탐방할 생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비효율적인 행위처럼 보일지 몰라도 워킹데이가 아닌, 워킹 홀리데이이지 않은가.
바지와 맞춘 셔켓을 입을지 하늘을 닮은 삭스블루 와이셔츠를 비교하며 신중하게 고민한다.
무겁지 않은 하이웨스트 데님과 한 달을 기다려 겨우 손에 넣은 컨버스 chuck 70 class의 신발끈을 있는 힘껏 조인다.
어깨의 걸친 바닐라크림색 에코백과 함께 떨어지는
바지 밑단과 컨버스의 힐로고의 간격을 확인한다.
"나 안 꾸몄어요..." 라고 수줍게 말하는 도쿄의 패션은 그 겸손함 뒤에 그들만이 아는 디테일들이 숨겨져 있다. 그 디테일을 찾아가고 만들어가는 여정을 여전히 향해 나아가고 있고 여전히 즐겁기만 하다.
아직 적응하지 못한 더운 날씨를 외면하고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하나씩 뜯어보며 천천히 맛본다.
축제를 의미하는 붉은빛의 한자가 적힌 등불들이 무수히 걸려있다. 이미 시작된 축제에 온 사람들 마냥 매미들은 나무에 붙어 서로 환호성을 지른다. 너희들도 축제를 기다리고 있구나.
보리차 색의 구수함이 풍기는 중고 레코드샵에서 나는 향기는 능소화 향기였고,
조그맣게 자리 잡은 소바가게에서는 조그마한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배달을 나갈 채비를 하신다. 구부정하고 위태로워 보일지 몰라도 할아버지가 잡은 메밀그릇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 저녁은 고추냉이를
잔뜩 넣은 메밀국수 먹기로!
하염없이 처음 만나는 길을 마주하는 와중에 향긋하고 두툼한 원두냄새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바가게보다 훨씬 작아 보이는 작은 잡화점에서 나는 향기에 조심스레 열린 문을 통과하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차갑지는 않지만 꽤나 무심해 보이는 네이비 니트가 어울리는 웨트 머리의 사장님은 자신이 입은 니트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신 듯하다. 아이스커피를 주문하고 손에 500엔을 건네는 행동과 동시에 그가 말을 건넨다.
“바지가 이쁘네요, 척테일러와 잘 어울려요”
아아, 전혀 무심하지 않은 사람이었잖아.
오늘의 가장 큰 수확을 서점으로 계획했지만 쉽게 깨져버렸다. 하지만 부서진 그 틈이 열리고
가끔 우리는 예상보다 더 큰 것을 발견한다.
서점 맞은편에 마가렛 호웰 매장을 발견했다.
참새인 내가 방앗간을 어떻게 그냥 지나치겠는가.
자신의 이름을 딴 그녀의 옷들은 패스트 패션(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하는 패션)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색감과 기능을 고려한 공간이 주는 감각에 흠뻑 취해 있었을 때, 모스콧 렘토쉬 안경을 낀 윤기 나는 장발의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모던함이 들어간 어둡지만 화려한 느낌의 흡사 요지 야마모토를 연상캐하는 그가 손바닥을 밑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바지가 참 예쁘네요.”
애써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급히 손으로 가려버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그를 향해 보낸다. 그의 칭찬에 한껏 우쭐해진 어린 나에게 카멜색의 지갑을 선물하기로 했다. 계산을 하는 동안 그와 마주하며 조그맣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에는 놀러 온 거예요?”
“아니요, 워킹홀리데이로 왔어요. 그리고 그건 선물용으로 포장해 주겠어요?”
“아아, 선물하려고 하는구나, 애인에게?”
“ 아니요, 여기까지 오기까지 노력한 저에게
선물해주고 싶어서요."
“ 우와, 대단한데? 엄청 좋은 말이잖아,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은 찾은 거야?”
“아니요, 아직 온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조급해하지 말고 좋은 추억을 만들길 바라,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바지 너랑 정말 잘 어울리는 거 같아”
문 앞까지 배웅해 주는 그에게 받은 종이봉투 안에는 단 한 번의 오늘이 나에게 준 귀한 것들이 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