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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엄마, 안 괜찮은 딸

구순엄니는 구미호

by 정유스티나



오늘도 출근길에 전화를 한다.

"엄마, 굿모닝? 뭐 하셔?"

"엄마, 잘 주무셨어요? 잠자리는 편했구요?"

"엄마, 어제 지아가 얼마나 재롱을 떠는지 엄마가 우리 애들 키울 때도 이런 마음이셨겠다. 생각했어요."

기쁜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엄마께 전화해서 마음껏-진짜 마음껏이다.-자랑질을 한다.

자랑을 하면 적을 만들고 질투를 낳게 하는 인간관계를 가끔 겪기에 이 하늘 아래에서 마음껏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엄마 한 분뿐이다.

"잘 잤지. 우리 딸도 잘 잤지?"

"아이고, 일찍 출근하네? 피곤해서 우짜노?"

"참, 어디서 우리 딸에게 저런 손녀가 왔을까? 이뻐 죽겠네."

엄마와 깔깔대며 한바탕 아침 문안 전화를 마쳐야 하루를 잘 시작한 것이다.

가끔 출근길에 친구의 전화나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거나, 수업 시간에 쫓기다 보면 깜빡 잊고 전화를 안 할 때가 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아참, 전화를 안 드렸구나. 부랴부랴 전화를 한다.

"안 그래도 매일 같은 시간에 하다가 니가 전화를 안 해서 무슨 일이 있나? 걱정했지만 너 수업하는데 지장 있을까 봐 전화도 못해보고..."

"아이쿠, 전화하시지 그랬어요. 그리고 다 큰 딸이-사실은 다 늙은 할머니- 무슨 일이 생긴다고 걱정이세요. 혹시 제시간에 전화 못 드려도 아~얘가 바빠서 못하는구나 하세요."

은근 짜증과 부담이 담긴 목소리로 퉁명스러운 음향을 내고 만다.

살짝 불편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고 나면 5초도 안되어서 후회가 밀려온다.

하루 종일 딸 전화만 기다리고 계셨을 엄마의 모습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나 어릴 때 와야 할 시간에 오지 않으면 대문에 기대어 기다리시던 그 마음으로 안절부절못하셨을 것이다.

부리나케 다시 전화를 누른다.

"이인순 여사~죄송해용~내가 또 성질을 부렸네용~"

"아이고야, 니가 무슨 성질을 부렸다고? 진짜 나는 몰랐데이."

흠, 역시 고수다.

안 그래도 미안한 딸의 머리가 발바닥에 닿도록 하신다.

마음 놓고 투정을 부리고 나 혼자 툴툴대도 깜쪽같이 몰랐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도 이 하늘 아래 우리 엄마 밖에 누가 또 있겠는가.

얼른 하늘을 쳐다본다.

눈물이 땅으로 떨어질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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